행정소송 관련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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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은 '2021수능 정치와 법' 복수정답 행정소송 두 번째 변론기일이다. 준비서면을 오늘에야 완성하여 넘겼다. 잠깐 쉬면서, 소송을 하며 몇 가지 생각한 바가 있어서 정리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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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소송에 1,500만 원 정도 썼다. 논리로는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나 어쨌든 결과는 판사님께 달린 것이고... 승패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비싼 글쓰기 수업 듣는다 여기기로 했다. 소장 쓰고, 피고 주장 분석하고, 또 반박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무척 많이 소모되지만, 어쨌든 평가원과 1:1로 논리싸움한다고 생각하면 영광스럽고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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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은 사실과 논리 두 날개에 의존한다. 사실 오류나 논리 오류가 있으면 그 판단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논리학에서 말하는 논증의 건전성(soundness)은 결론의 객관성으로 바꿔 말해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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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수능 세계지리 복수정답 사건의 쟁점은 사실 오류였다. 그런데 이어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문을 보면, 사실 오류뿐만 아니라 논리 오류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수능시험 객관식 문제의 출제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에 어긋나는 사실을 진정한 것으로 전제하여 출제한 오류가 재량권의 남용 또는 일탈로서 위법한 것임은 당연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어긋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그 문항이나 답항의 문장구성이나 표현용어 선택이 지나칠 정도로 잘못되어 결과적으로 수능시험의 평균수준의 수험생으로 하여금 정당한 답항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거나, 문제 자체에 정답이 없음이 명백함에도 그중 하나의 답을 정답으로 처리하고 이에 기초하여 수능시험의 성적과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 또는 일탈에 해당된다”(부산고등법원 2017. 5. 10. 선고 2016나5504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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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훈 선생님께서 2014수능 세계지리 행정소송을 하지 않으셨다면, 혹은 1심 패소에서 포기하셨다면, 나는 2021수능 정치와 법 행정소송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박대훈 선생님 덕분에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싸우는 느낌이다. 나도 후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판례를 마련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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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면서 전문가 의견서를 받는 게 무척 힘들었다. 평가원과의 소송이라고 하니 다들 실명으로 의견서 내는 것을 꺼려하셨다. 인연이 있는 저명한 국어교육학과 교수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답신해주시기도 했다.
"문의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답신을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이든 간접이든...
수능 관련해서 어떠한 입장을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쪽 돌아가는 사정을 알기 때문에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여튼 이후에는 인연이 있는 분, 없는 분 모두에게 마구(!) 메일을 보냈다.
그러다 모 국립대 정치외교학과 정교수님께서 메일을 주셨다. 아무런 대가도 필요없다며, 장문의 의견서를 첨부해서. 승소해서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렇게 조금씩 힘이 모여서 여러 전문가의 의견서를 받았다. https://orbi.kr/00038157658 에 정리된 것 외에도 아주 독한(?) 의견서가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이번 준비서면에 같이 제출된다. 부디 판사님께서 꼼꼼하게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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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행정소송이든 민사소송이든 다시는 소송을 하지 않겠다. 혹여라도 미래의 내가 잊어버릴까봐 적어둔다. 남의 일은 물론이고, 내 일이더라도 가급적 소송은 피하자. 소송은 드라마로 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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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추5 핵심
행정소송은 여러모로 일개 개인에게는 불리한 소송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소송도 힘들지만 더더욱 힘든 소송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