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원 민주 [801716]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1-05-15 16: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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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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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 위론 화해의 비가 내렸고, 심지어는 가끔은 꽃구름이 흘러다닐 때도 있다

우리 두 사람은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서 가끔씩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볼 때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그의 잔소리가 언제서부터인지 모르게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삶이 타들어가는 번뇌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인지,

혹은 그의 삶이 휴식과 완성의 시기를 원하기 때문인지,

분명한 것은, 천진한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은 아들의 어릴 적 얼굴을 닮아가고

정작 아들의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버지와 닮아있다

난들, 왜 그가 기뻐할 번듯한 세속의 성공과 안정을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만은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멀지 않은 미래에 안겨줄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날 그의 손주뿐인듯 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그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언어들을 순간의 울음소리로 알리리라

그렇게도 나는 나일 뿐이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또다른 그가 되어 주고 싶다

나는 그의 육신을 나누어 받은 자


아이는 열리지 않는 그의 방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칭찬에 굶주리고 대화에 목이 마른 아이였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자, 아이는 망치를 들어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상의 머나먼 끝에서 고독의 눈물이 흐르던 날

아이는, 그가 스스로 방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문을 잠근 적 역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오래 전 박아 넣은 날카로운 못들을 하나씩 빼내자 문짝에선 피가 흘렀고

문을 떠밀자 그 문은 힘없이 열렸으며

그 문의 저편엔 주름과 세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수줍은 아버지와 겸연쩍은 아들은 난생처음 뺨을 맞대게 되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는 먼지가 되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 이 노래는 잊혀지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아들은 아비를 기억하고

또 아들의 아들이 그 아비를 기억하며

그들의 피는 이야기나 노래보다는 조금 더 오래 흐르리라

그리하여, 우리 세상에 잠시 있었던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 하리라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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