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ford 477(고전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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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45년에 한 번 지구 궤도로 진입하는 혜성 Stanford477, H는 그곳에서 왔다.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괴로움 모든 것에 둔한 사내, 그에게는 매일 같은 하루. 이런 H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알로에’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화분이지만 그에게 알로에는 사람이다. 아니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 어떤 것 그 이상이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떨어져버린 지구였기에 혜성 Stanford에서 온 작은 화분, 그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의지하며 살아간다.
H의 직업은 학원 강사이다. 인간들과 살아온 지 어연 300년.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대치’에서 10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삶이라는 것을 흉내 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최선을 다한다.
오늘도 젤리를 먹는 500개의 입과 영혼이 가출해가는 1000개가 넘는 동공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여전히 고된 일이다. 그럴 때마다 ‘알로에’와 함께 혜성 Stanford477를 타고 다시 돌아갈 미래를 그리며 연기를 펼친다.
.
황혼이 어둠으로 덮이는 시각,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교실로 들어간다. 아직 여러 개의 무지한 입과 눈이 H를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하, 이것들 자꾸 selective하게 accept하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질문에 H의 가슴이 답답해져 갈 때 쯤, 그때 앞을 가리는 하이얀 무언가.
“아, 안돼” 알 수 없는 목소리
‘와장창’
H는 소란에 고개를 돌려본다.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학생들 사이 보이는 연약한 이파리. 틈을 비집고 H가 달려간다. 체면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박살난 알로에. 그리고 옆에 떨어져 있는 99.9% 멸균 순면 물티슈. 그리고 달려 나가는 한 아이
H의 손이 떨린다. 이럴 수는 없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된다. 중얼거린다. 떨어진 잎들을 하나하나 매만진다. 흙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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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에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죽음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H, 무한한 생명 속에서 살아가는 그였기에 아직까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마저 이해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새로운 화분에 알로에를 고이 올려놓는다. 흙으로 덮는다.
파릇한 색을 잃어버린 채 노란 빛을 띠는 잎.
“아니야, 아니라고, 이럴 수 없어”
방을 서성거린다.
“그래, 넌 죽지 않았어. 죽었을 리가 없지”
광기어린 표정의 H가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대량의 방부제를 구매한다.
.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버선발로 달려 나간다.
상자를 열어보니 방부제가 가득하다. 양손 가득히 방부재를 들고 알로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뿌린다. 아니 부어버린다. 그러던 H가 잠시 멈칫한다. 방부제 넘쳐 그의 발등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젠 알로에가 더 이상 시들어보이지 않는다. 만족했다.
평소와 같이 H는 알로에를 껴안는다. 끈적한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더 이상 이것을 알로에라 칭할 수 있는가. H에게 그런 윤리적인 판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듯 싶었다. 행복한 표정의H.
.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반.
“여보세요,,,”
H는 한껏 감미로운 목소리를 내며 수화기를 든다.
“네 여보세요. H씨 맞으신가요. 전 법사입니다”
“네? 법사님이요? 법사님이 왜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법사가 아니라 법무사였다. 법무사가 무슨 일이지.
“저희 의뢰인은 국내 최대 포털 5rain company 사장 아드님이신데 H씨께서 멸균 물티슈를 던져 모욕감을 느꼈다고 고소준비 중인 사실을 알려드리려고요.”
“무슨 말이죠? 제가 그런 적이..."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한 장면. 와장창 소리가 나자마자 도망가는 한 아이의 뒷모습. H는 순간 거대한 환멸감에휩싸였다. 분노에 가득 찬 채 전화를 끊어버리고 5rain에 접속한다. ‘대치 1타 강사의 만행’ 5rain 메인에 올려져 있는 글. 수천의 좋아요. 더 이상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그들의 언행. 평소라면 무시하고 넘기는 H였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H는 ‘알로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화분을 머리 위로 올린다. 다시 내린 후 이파리에 얼굴을 가져다 대본다. 차갑고 맨질거린다.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알로에를 품에 안고 냉장고에 간다. 그리곤 셀 수 없이 많은 젤리를 입에 넣는다. 눈물이 흐른다.
“그래 내 혼신의 연기에 대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어.”
처음으로 H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휴강 문자를 전송한다.
.
일요일 저녁 6시, 그 일이 있고 나서 첫 수업 시간이다. 강의실 앞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H. 학생 모두가 경악한 표정.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조명아래 빛나는 머리, 한 쪽 팔에 꼭 껴안은 화분. 마치 마틸다가 아닌 레옹이 화분을 든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소라처럼 작은 목소리로 H가 말한다. 젤리를 먹으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5rain 홈페이지가 불타오르는 듯 했다. 대부분 중립기어를 박지 않은 커뮤니티 회원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아니 잘 기억은 안나지만, 분명 물티슈에 온기가 남아 있었어요.”
반발하는 많은 댓글을 받아서인가. 금방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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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알로에를 닦고 있는 H
`띵동`
닦다 말고 H가 문 밖으로 나선다. 택배가 왔다.
‘멸균 순면 물티슈_알로에베라 추출물 함유’
옆에는 카드가 하나 있었다.
“H,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린 당신의 기분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희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에요. 그렇기에 당신이 어떤 모습이던 저희는 받아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우울한 것을 보는건 견디기 힘드네요. 알로에를 구해 줄 수는 없지만 알로에베라 추출물이 담겨진 이 물티슈로마나 기분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 일요일 미적반 학생 일동”
물티슈를 한 장 뽑아든다. 냄새를 맡아본다. Stanford477부터 지금까지 좋은 추억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방부제 투성이인 지금의 알로에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향기였다.
“그래, 그랬었구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미안, 내 욕심이 지나쳤어. 이제는 보내줄게”
H는 화분을 고이 들었다. 품에 꼭 안은 채 집 밖에 나서 덤불 사이로 들어간다. 흙을 파고 작은 구덩이 속에 알로에를 살포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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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일요일 저녁 6시. 강의실 문을 열었다. 500명의 학생 앞에 펼쳐진 500권의 뉴런. 평소보다 조금 더 큰 소리의 대답으로 학생들은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날, H는 인생 처음으로 연기를 하지 않은 채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알로에가 아닌 학생들을 쳐다보고 심지어는 학생의젤리를 나눠먹었다. 즐거웠다.
밤 11시 수업이 끝나고 H는 학원을 나서며 미소지었다.
‘혜성 Stanford477에서 떨어져 이곳에 온 것은 조금은 잘된 일일수도.’
(- 메가스터디의 한 수강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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