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Y한 독도바다 [1005719] · MS 2020 · 쪽지

2021-05-07 01: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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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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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21세기 한국소설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겨우내 소설이 재미있어져서 무작정 수업을 신청한 것이었고 나름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특히 좋습니다.


다만 2010년대 후반의 작품들을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여성주의 서사의 소설이 범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2010년대 후반에 발표된 작품을 갖고 발표를 하게 되어 준비하고 있는데, 뭔가 이전에 접한 작품을 또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여성주의 서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어떠한 성향이든, 어떠한 사상을 지지하든 그와 상관없이 충분히 재미있고 작품성 있는 소설을 만들 수 있죠. 또 박완서 작가님과 같이 여성주의 서사를 갖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오신 작가도 많이 있고요.

그런데, 제가 접한 21세기 한국의 여성주의 서사 소설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입니다.

주인공은 여성이고, 이제 막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거나, 성숙하지 않은 딸을 갖고 있습니다. 또 그녀는 가족들, 특히 남편의 가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대개 그녀의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남편이 그녀의 고통 자체에 무심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소설의 말미에 가면 그녀는 그녀의 여성 가족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소설이 마무리됩니다.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작품들은 문단에서 고평가받고 있죠. 단적으로 2021년 젊은작가상의 수상자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대부분 여성주의 서사의 소설을 썼고, 모두 문단의 찬사 아래 상을 받았죠. 심지어 2021년 수상작 중에는 남성혐오 표현을 사용하여 논란이 된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의도만으로 결과를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번지르르한 의도로 허술한 내용을 포장한 작품은, 비판하는 수용자를 '적폐', '구시대적 발상', '차별주의자'로 몰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미 그러한 사례는 충분히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현 상황이 살짝 걱정이 됩니다.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요.


21세기 한국 소설이 여성주의 서사로 점철된 것은 아닙니다.

작년 수능특강에 실린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정확히는 2000년에 발표되었지만) 21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소설의 수작이죠. 또 김영하 작가님이나 김중혁 작가님처럼 독창적인 소재로 21세기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는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러한 특색 있는 한국 소설들이 판에 박힌 여성주의 서사들에 묻혀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생각이 들어 밤중에 끄적여 봅니다.

그럼, 다들 좋은 밤 되세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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