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피탈 [755173] · MS 2017 · 쪽지

2021-03-10 03:09:08
조회수 3,935

(군수실패) 망하더라도 얻는 건 있어요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6626815

(약간 스압 주의)

  저는 98년생이고 두 달전 군대에 전역하고 현재 복학해서 학교강의 들으면서 사는 중입니다. 현역때는 공부를 너무 못해서 평균 6등급 성적정도 나와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가 재수해서 3등급 후반까지 올리고 전문대 중에서 탑3안에 드는 곳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1학년 마치고 군대갔다가 이제 2학년으로 복학했는데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한 번 말해볼려 합니다.

  재수를 하면서도 제가 원하던 성적이 나오지 못하고 이름들어본 4년제도 쓰기 힘들다는 현실에 저는 너무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재수학원때 같이 밥도 먹고 힘들땐 집가는 길에 재밌는 이야기나 하던 친구들이 성적좀 잘받아서 서울에 4년제 대학 진학을 하자마자 전문대를 간 저를 천대하는 듯한 말투와 뉘앙스로 대한 경험은 아직도 새록새록하죠. 과잠입고 캠퍼스라이프 낭만을 즐기는 그들은 제 눈에는 곤룡포를 입고 왕처럼 행세하는 그 모습은 아직까지도 저에겐 열등감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네요ㅠㅠ

  저는 우울함을 겨우 떨치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명문대 나와서 자부심 가지고 남은 20대를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군대에서 가족 몰래 수능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군대에서 공부할려면 공군과 의경이 좋다고 해서 둘 다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습니다ㅋㅋㅋㅋㅋㅠㅠㅠㅠ 하는 수 없이 그냥 육군으로 갔었고 그곳에서라도 1년 7개월 동안 자유시간 잘 써가면서 공부하면 될거라는 일말의 희망가지고 공부에 임했죠. 

  군대에선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아침에 일과끝나고 시간 좀 남으면 바로 영어 구문독해 공부 및 영어 지문독해하고 저녁에 완전히 일과끝나면 오르비랑 카톡 10분 정도 보고 바로 사지방가서 프리패스 끊어놓은 인터넷 강의 들으면서 개념정리 하고 문제도 풀고 간부랑 선임 눈치도 살살 잘 봐가면서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공부하고 이랬었습니다. 제가 가고싶은 대학은 고려대학교였는데 이렇게만 된다면 완전 허무맹랑한 목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쭉 밀고나갔죠.

  그런데 웬걸, 코로나19가 딱 저 일병 말쯤에 터져가지고 휴가도 다취소되고 군대에서 인간관계도 점점 안좋아지고 여러가지로 악재들이 터졌죠. 제가 최전방에 있어서 휴가를 한 달에 한 번씩 써주면서 공부를 해야 수능 전까지 최소한 개념이랑 기출 EBS 정도는 무난하게 보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 휴가가 막혔으니 그 방대한 공부량을 해소할 방법도 없고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증폭되어가는 여하튼 최악이였죠ㅠㅠ 그래도 상황이 뭐 이리됬으니 어찌 할 수는 없고 군대에서 최대한 시간 낼려고 휴가통제되자마자 잠도 줄이면서 새벽까지 연등하고 풀뿌리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부에 임했었어요. 

  그렇지만 인생은 뜻대로 안따라 주더라군요. 저는 작년 9월이 되기 전까지 휴가를 5월달에 겨우겨우 얻어낸 7일 휴가 빼고는 전무했습니다. 당연히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도 7일이라는 소리죠. 저는 그때쯤 느꼈습니다. 늦었구나... 고려대는 커녕 인서울 공대도 올해는 힘들겠구나... 정말로 자살하고 싶더라구요.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찾아왔고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안풀리는 거지. 나도 그냥 명문대 가고싶고 명문대가서 훌륭한 네트워크 누리고 싶었고 가문의 영광이 되고 싶기도 했고(제 친가 외가 다 합쳐도 명문대생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만약 가면 진짜 가문의 영광 맞아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건 공부잘하는 사람으로서 대우받고 프라이드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 한 순간에 꿈이 되어버렸네요.

  수능날엔 어찌어찌 시험보러 갔지만 국어랑 수학만 보고 그냥 각서쓰고 교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재거 군대에서 공부한 양으로는 감히 시험지를 건들지를 못하겠더라군요. 교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참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난 뭐때문에 여기까지 온거지... 결국 무시받으면서 자존감 낮은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이 내 숙명인 건가 이런 번뇌로 터벅터벅 집으로 갔습니다.

  전역을 하고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군에서 수능준비했고 올해 어차피 코로나여서 휴학도 많이하고 알바도 구하기 힘든데 1년 쉬는 겸사겸사 해서 수능공부 하면 안되겠냐고 말했는데 "수능이 만만한 시험이냐? 그리고 너 이제 대학가면 취업시장에서 불리한 거 너 스스로 모르니?" 이러시면서 극구 반대하시고 저는 결국 학교로 돌아오게 됬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학교다니면서도 몰래 수능 준비할 생각도 해봤어요. 실제로 인강패스랑 교재는 이미 구매를 해둔 상태구요. 그렇지만 참 가슴아픈 20대 초반이였습니다. 과잠입고 길거리 돌아다니는 사람 볼 때마다 은연중에 어깨가 움츠려지고 알게모르게 자기혐오를 하고...... 

  그래도 그 열등감과 자기혐오는 저에게 굉장한 원동력이 되어줬어요. 군대라는 곳에서도 공부하게 만들었고 지능이 안좋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책도 굉장히 가까이하게 되었고 운동도 일주일에 5번은 하면서 건강과 외모관리도 하게 만드네요. 또한 힘든 군생활조차도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성과 쾌적한 생활 및 윗사람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굉장한 배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열심히 한 공부덕분에 현재 학교공부도 1학년때와는 수준이 다를 정도로 습득력도 빨라지고 중요한 내용과 안중요한 내용도 구분하면서 공부에 강약도 조절하고 여러가지로 현재로써는 혜택을 누리게 있네요.





  지금 이 글을 혹시나 보시는 분들께 제가 감히 뭐라 조언할 입장 절대 못됩니다. 저는 여전히 이 오르비라는 집단에서는 저학력에 속하고 심지어 몇몇분들보단 인생도 덜 살았어요. 그렇지만 이거는 아주 쪼오오오오오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게 도전하는 과정에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어요. 그리고 그 얻은 것들은 다 나중에 자산이 되더라구요. 지금 저처럼 수험을 준비할 지 망설이시는 분도 계실꺼고 이미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도전한 그 자체가 가장 좋은 성과에요 정말 얻는 게 있는 것이니 다들 잘해봅시다 잘되기를 원해요!!!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