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첸코말고세브란스 [580301] · MS 2017 · 쪽지

2021-03-09 00: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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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주의) 더 이상의 수능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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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연대 전전 3학년 다니고 있는 17학번 (25살)입니다. 저는 한 달 전 공군 병장 만기전역을 했고 군대에 있던 기간 중 두번째 해인 지난 해에 군수를 했습니다. 무려 4년 만의 수능 응시(16,17수능 응시 및 연대 17 정시 입학)였고 이를 다시 준비하게 된 연유는 여러분들도 다 짐작하실 만한 이유인 현재 우리나라의 좋지못한 취업 상황, 그리고 추후에 취업을 하게 되었을 시 직업 자체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으며 정년보장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군 입대 첫 해인 2019년에는 수능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고 전공 공부와 영어 공부만 이따금씩 하곤 했는데 확실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공부를 하는 게 하는 것 같지가 않곤 했습니다. 저는 본래 생각과 고민이 많은 성향 (나쁘게 보면 피곤한 성향) 이라 남는 시간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항상 많이 하곤 하는데 고민을 하던 중 의치한, 수능이 계속 떠오르곤 했습니다. 다른 후보로는 변리사, 기술고시, 대학원 석박사 후 연구원 등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장 익숙하기도 하며 가장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루트라고 생각되어 일단 고민을 더 하지말고 의대를 목표로 수능 공부부터 시작하자 생각하여 작년 2월에 이투스패스, 메가패스를 구입하고 제 군수생활이 시작됩니다. 참고로 물1,지1 선택했습니다. (현역,재수는 물1화2 / 화2가 발목을 잡곤해서 지1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공군에서 교대근무로 일을 하고 있어서 밤낮이 자주 바뀌곤 했지만 업무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종종 주어져서 그나마 괜찮았으며 군수라는 전제 하에서 굉장히 좋은 상황이었다고 객관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 군수 생활은 저에게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업무가 항상 널널한 것만은 아니어서 병행하기 참 힘들었고 업무가 끝나도 많이 쉬지 못하고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습니다. 예컨대, 새벽 2시에 근무가 끝나고 당직사관님께 양해를 구하여 5시반에 일어나서 생활관 내의 독서실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 물론 이렇게 하다 몇개월 뒤 상당한 신체적 손해를 입게 됩니다. ) 공부와는 별도로 군 생활에서 오는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힘듦에 불을 지피곤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가장 힘들었던 건, 코로나로 인한 휴가제한의 연속이었습니다. 20년 2월 초에 휴가를 다녀오고 그 다음 휴가를 7월에 나가게 되었는데이마저도 질병으로 인한 청원휴가였습니다. 


청원휴가의 이유는 바로 목디스크였습니다. 불면증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경미한 우울증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6평 성적은 국수영물지 21121 (휴가 제한으로 부대 내에서 봄)이었지만 가을 기간동안 병원을 수십번 넘게 내원해서 9평, 수능을 향해가면서 성적이 오히려 떨어지고 끝내 수능에서 42122가 뜨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수능을 보고난 후한달정도 지난 시점에서 몸이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서 전역하고 다시 수능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군대였으니,  아팠으니, 시간이 부족했으니 이런 핑계로 작년의 실패를 무마하려고 했고 사회에서 공부 더 열심히, 더 많이 하면 의치한갈 수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으로 인해 일단 재종을 접수해야겠다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데, 재종을 접수하기 직전에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oo아 나는 너가 하고싶은 길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원해주고 응원해줄 수 있어.. 근데 이제는 너가 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동안의 축적된 힘듦이 곪아터진 셈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의료인이 정말 되고싶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꼭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었고 정말 솔직하게 수능이 익숙하니까, 의료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테니까, 사회적 명예를 얻으니까 이 생각으로 수능 공부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허나,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다시 이 공부를 9개월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솔직히 못 버틸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9개월만 더 버티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의치한에 가서 하게 될 압도적 학습량과 전문의 취득 전의 과정들을 생각해보니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나이가 25살인지라 늦은 사회진출의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실패했을 때의 상실감과 허무함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하게 되면 그대로 나이만 1살 더 먹게 될텐데 이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저는 사실 전공 공부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고 있는 편이라 이 쪽 공부를 더 하면서 진로를 알아보는 게 차라리 행복할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의 수능을 포기하게 된 첫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냉정하게 의치한을 갈 실력이었다면 군대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잘 하는 사람들은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9개월을 더 공부해도 과연 성적이 올라갈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수능 시험 특성 상 더 많이 한다고 성적이 무조건 더 잘 나오는 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또한 작년 수능 국어를 73점 맞았는데 컨디션이 안 좋고 건강이 안 좋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제 실력인데 그것을 애써 부정해보려 한 것 같습니다. 최근 수능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국어인데 이 정도 실력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작년 수능으로부터 드러난 제 실력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좀 더 먼 미래에는 의치한이 더 행복할거라는 의견이 있을 거 너무 잘 알지만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더 이상의 수능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학기 휴학 후 추후 반도체 및 회로 관련 전공수업들 위주로 수강하며 삼성전자, 하이닉스 취업 혹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틀-의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질문은 무엇이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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