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뻐꾸기 [864236]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1-03-06 03:13:44
조회수 6,111

18살 의대생) 자퇴생의 생활과 심리, 고독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657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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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철저한 입시의 관점에서의 고등학교 자퇴'라는 글을 올렸던 베이비쿠쿠입니다. 저번 글에서 위에 쓴 것처럼 제목을 지었더니 어그로가 안 끌려서 시리즈 제목을 이렇게 바꿔 봤습니다.

 1편은 https://orbi.kr/00036418494 여기서 보실 수 있고요, 이번 2편은 자퇴생의 생활과 심리를 '고독'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글입니다. 이 시리즈 1편을 작성한 이후 약 10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편을 쓰는 데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과 약간의 개인 의견만이 쓰인 1편과는 다르게 2편에서는 심리와 감정에 대해 서술해야 했기 때문에 선뜻 키보드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번 편이 살짝 긍정적이었다면, 이번엔 매우 암울합니다. 저번 글을 보고 나도 그냥 자퇴할까? 하신 분들은, 이 글을 보고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편은 산문, 반말체로 쓰였으며 세 줄 요약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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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퇴를 결정했다면, 하루빨리 근처의 재수종합반 혹은 독학재수학원에 들어가라.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은 주변 학원이 왕복 두 시간 거리라든지 하는 케이스가 아니면 웬만하면 하지 마라. 특히 집 공부는, 너희 집이 와이파이가 안 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마라. 공부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최소한의 규칙적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학교다. 생각보다 너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독학재수학원이냐 재수종합반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비용이라든지 하는 문제는 제쳐두고 보면 일장일단이 있다. 사람들이 다들 아는 소위 '메이저 재종'을 제외하고서는 1편에 쓴 '베이스 있는 학생들'은 독학재수학원을 택하는 것이 순수한 공부의 측면에서 보면 낫다고 보지만... 재수종합반을 선택할 경우 아래 더 자세하게 쓸 '고독'을 정말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종합반을 선택할 이유가 있다. 내가 간단히 기준을 정해 보자면... 집에 돈이 많이는 없거나, 이후 계속해서 언급할 '자퇴생의 고독'이란 것이 뭔지를 깨닫게 될 때쯤 그 외로움을 버틸 수 있다면 독재를, 아니라면 재종을 추천한다. 나는 돈 없어서 달에 40씩 주고 유명 체인점은 아닌 독재 다녔다..

 일단 무슨 학원이든지 들어가고 나면, 평일 동안 너의 생활은 다른 재수생들과 별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학원의 다른 사람들은 너를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독재학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한 대화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학원에 있는 그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나이가 같은, 학교 혹은 학원에서 어딘가 서로 한 번씩은 마주친 아는 사람이다. 원래 친한 친구끼리 오기도 하고, 학원 안에서 더 친해졌다고 해도 원래 서로 알긴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넌 완벽한 이방인이다. 그들과는 친해질 수 없다.

 학원에 친한 친구가 없다고 해서 자퇴한 학교에서 원래 친했던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다. 예전의 친구들이 이제는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너는 좋은 친구고 여전히 너도 그들을 친구로 여긴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 만나기도 매우 힘들 뿐더러 설령 만난다 해도 진정한 공감은 할 수 없다. 그들에게 당신 말고는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말 정말로 잔인한 말이지만, 옛 친구들이 훨씬 가까이 있는 학교 친구들을 뒤로 하고 너와 놀 필요는 없다. 주말이라고 해서 항상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도 가야 하는 학원, 가족들끼리의 약속,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 모의고사 날? 걔들도 학교 친구랑 놀아야 한다. 너에게 신경써줄 이유는 없다. 그래도 어떻게 만났다고 치자. 이야기를 하다가 현재 같이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추억팔이 밖에는 할 만한 게 없다. 추억팔이밖에 할 게 없는 친구는 그저 옛 친구일 뿐이다. 뭐 공부 얘기를 한다고 해도.. 너는 드릴 푸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친구들은 블랙라벨에 교과서 영어 지문 외우는 이야기나 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자퇴했다면,너의 모의고사 등급을 보고, 고1,2 모의고사의 난이도를 생각하며 친구가 너를 은근 무시하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모의고사를 볼 때, 항상 성적표 어딘가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설령 그조차 나오지 않을 성적을 받았다 해도, 그 성적이 유지되지 않을 불안감. 수험생의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감이 있다. 이 불안감이 진정 공감할 만한 친구들을 통해 해소가 되지 않는다면, 내 뇌피셜이지만, 무의식의 영역인 꿈에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다.이런 꿈의 내용은 보통 학교에서 예전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뭐 고등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도 없기에.. 다녔던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그것도 아니면 둘이 합쳐진 신기한 공간.. 이 등장했다. 10월쯤 스트레스가 극대화되었을 때 일주일 내리 학교에 있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탓인지, 이상한 강박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한다. 작년 전반적으로, 나는 자퇴생이므로 꼭 남들보다 어리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올해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라는 내용의 강박에 시달린 적이 있다. 또 손가락 세 번째 마디에 있는 털들을 뽑는 이상한 습관도 생겼다. 이처럼 입시에 성공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등학교 자퇴는 심리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글을 봤다면,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고독과 강박에 버무려진 위 모든 생활을 버텨낼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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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고의머도전 · 1017337 · 21/03/06 03:39 · MS 2020 (수정됨)

    전 지금 18살 의대 가고십은 허수 수시러인데..제 지금나이에 의대라니..인생에 쉬운건 없듯이 정말 힘든 일들을 버티셨군요,,

  • 젖지가 된 오리비 · 834955 · 21/03/06 06:06 · MS 2018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연의외곽슛터 · 906021 · 21/03/06 21:28 · MS 2019

    와 18살 미챴네

  • ㅈ ㅕㄴ · 1030871 · 21/03/06 22:39 · MS 2020

    저도 자퇴했는데 꿈얘기랑 친구들이랑 대화할때 추억팔이만하는거 ㅋㅋ .. 진짜 공감가네요

  • dnpsldnpdl · 1050866 · 21/03/10 22:46 · MS 2021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SiO4 · 1011580 · 21/03/16 02:05 · MS 2020

    잘 보고감

  • 테라4 · 976235 · 21/03/22 21:36 · MS 2020

    버티고싶어요..
    그리고 버틸 수 밖에 없을거같아요..

  • 빅파이가조하 · 1049859 · 21/07/12 21:41 · MS 2021

    중학교 미진학 하고 혼자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17인 지금 어느새 삼수생입니다. 글 대부분을 정말 공감합니다. 요즘 날도 덥고 심신이 풀어진 채 허송세월을 보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귀감이 될 은사님을 만난 듯 반갑고 기쁩니다. 한 큐에 원하는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제 이번 6모 성적이 '초초스압)18살의대생) 베이비쿠쿠 합격수기' 글 본문의 6모 성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ㅋㅋㅋㅋㅋ 어쩜 감사하게도 미천한 저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십니까? 꼭 이번 수능 잘 봐서 또 댓글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 새끼 뻐꾸기 · 864236 · 21/07/12 22:00 · MS 2018

    저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더욱 긴 수험생활을 하셨으니 그동안 정말 외로웠겠습니다
    님도 올해 입시에 성공하고 제가 쓴 것과 비슷한 글을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자퇴 고민을 했을 때 어떤 가이드라인도 나와있지 않아 정말 막막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