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조선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94년이 되는 오늘, 나는 만인에게 아주 끔찍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고발하고자 한다.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이하 '친일 재산조사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알게된 그 이름, 바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하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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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2007년 현판식 모습. |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관련사진보기 |
친일 재산 국가귀속 대상자는 누구였나?2010년 1월 어느 날이었다. 2006년 7월 출범한 친일 재산조사위는 마무리 업무에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 위원회 출범 당시 예정되었던 활동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법에 의하면 친일 재산조사위는 기본 업무 기간인 4년 경과 후 1회에 한해 2년간 기간 연장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것이 어려웠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친일 재산조사위를 비롯한 과거사 관련 기구의 활동 기간 연장을 '사실상'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친일파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1948년 제헌 국회에서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집행하기 위해 설치했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 지 채 1년도 못 되어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강제 해체된 사실이나 이후 '친일 재산조사위'가 연장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을 다 써보지도 못한 채 중단된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해야할 일을 다 했다면 더 운영할 일은 없다. 하지만 지난 36년간 있었던 일제 강점기 동안의 일을 고작 4년동안 모두 처리하라는 것은 발상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당시 친일 재산조사위가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 업무를 한 대상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만이 아니었다. 일제 수탈기관이었던 동척을 비롯하여 해방후 반세기가 넘도록 대한민국의 영토가 일제 강점기 지주였던 일본인 명의 토지로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러한 토지 역시 국가귀속 대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친일파 소유의 땅임에도 전쟁 과정에서 행방불명되거나 그 후손이 끊겨 관리가 되지 않은 토지를 토지 브로커와 지역 주민들이 공모하여 가로챈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친일파의 재산을 조사하여 국가 귀속하는 한편 관련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기에도 4년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해방은 되었지만 친일파에 대해 제대로 단죄된 적도 없었고 정리된 적도 없이 사실상 방치되어 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도 당시 이명박 정부는 그저 종결하라는 것이었다. 참담했지만 지시를 '따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당시 과거사 관련 기구가 대부분 비슷한 실정이었다.
일본 경찰보다 더 악랄했던 조선 순사 '하판락'그때였다. 업무 종결을 앞두고 분주하던 그때 새로 사건이 조사과에 배당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마무리 업무에 바빴기 때문에 뒤늦게 배당되는 사건을 조사관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마무리 업무로 분주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니 좋아할 수 없지 않겠는가. 여하간 그렇게 해서 내가 배당받은 대상자가 바로 '하판락'이라는 일제 강점기 친일 경찰이었다.
이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기초자료로 전달된 '국가귀속 대상 재산 목록'을 살펴봤다. 대상 재산을 전부 다 합쳐도 얼마 되지 않는 평수였고 그나마 하천부지라서 사실상 재산적 가치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크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굳이 이런 사건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하판락의 친일 행각을 확인하면서 부터였다.
191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하판락은 1930년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4년 2월 처음 순사로 일제 경찰이 되었다. 그런 하판락이 사천경찰서를 거쳐 38년 부산 수상경찰서의 순사부장과 경부보로 승진하면서 고등 경찰로서 '고문 귀신'이라는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고문 경찰'의 대명사가 된 자가 '이근안'이라면 일제시대 최고의 고문 경찰은 바로 '하판락'인 것이다. 그 악행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고문하는 귀신'이라는 '고문귀'가 그의 별명이었겠는가.
하판락이 이같은 악명을 얻게된 계기는 1930년대 말 신사 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 수십명을 집단 고문하면서부터 였다. 이 당시 고문당한 김준기씨 증언에 의하면 하판락은 자신 역시 조선인 출신이면서도 '조센징' 운운하며 심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이에 김준기씨는 "같은 동족의 몸에 그렇게도 심한 고문을 할 수 있었던 그의 행동에 대해 나는 심한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차라리 그것은 비극이었다"며 분개했다.
하판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가 막힐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따로 있었다. 그가 한 고문 행위가 얼마나 극악했던가에 대한 또 다른 독립운동가의 고발이었다. 1943년 이른바 '친우회 불온 전단사건'으로 검거된 여경수와 이광우 등 7~8명에 대한 고문이 그것이었다.
당시 하판락은 독립투사 여경수에게 자백을 강요하면서 거듭 부인하는 그의 온몸을 화롯불에 달궈진 쇠 젓가락으로 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전기 고문, 물 고문, 다리 고문 끝에 여경수, 이미경 등 3인이 끝내 절명한 것이다. 또한 그나마 살아남은 이광우 선생을 비롯한 같은 사건 관련자의 운명 역시 크게 다르지 못했다. 하판락의 잔혹한 고문으로 모두가 신체 불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고문받아 만신창이가 된 그들은 이후 재판에 넘겨져 4년 이상의 감옥 생활을 또 겪어야 했다. 한편 이러한 잔혹한 고문 덕에 하판락은 더 높은 자리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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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재산조사위 2주년 기념식장 앞에는 주요 친일반민족행위자 행적 등을 전시했다. |
ⓒ 이철우 | 관련사진보기 |
'착혈 고문귀 하판락'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이같은 죄상이 '하판락의 모든 것'이 아니었다. 친일 재산조사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이 잔악한 친일파의 만행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독립운동가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하판락이 자행한 이른바 '착혈 고문'이 그것이었다.
지난 2007년 사망한 독립운동가 이광우 선생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된 하판락의 고문 행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이광우 선생은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내가 고문당할 순서를 기다리는 것과 또 하나는 다른 이가 고문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광우 선생은 하판락이 가한 '착혈 고문'을 고발했다.
1943년, 하판락은 당시 사상운동 조직 사건으로 체포되어온 이미경 등을 고문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는 이미경의 혈관에 주사기를 삽입했다. 그리곤 혈관을 통해 주사기 하나 가득 피를 뽑아낸 하판락은 다시 그 피를 고문 피해자인 이미경을 향해 뿌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물었고 거부하면 또 주사기로 착혈한 후 고문 피해자의 몸이나 벽에 피를 뿌리는 행위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착혈 고문'이었고 결국 이같은 고문 끝에 여경수 등 독립투사 3명이 목숨을 잃었고 설령 살아남은 이들은 신체 불구자가 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를 만나면 직이뿌라.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인두껍을 쓴 짐승이다."하판락의 고문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폭로한 이광우 선생. 그는 자신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받기 위한 증거 수집차 하판락을 만나러 간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해방후 하판락,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최근 독립운동가의 후손 분들을 몇 번 뵐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 이 나라 현실을 두고 안타까움을 표현하자 그 분들이 하신 말씀중에 내 가슴을 치는 몇 마디가 있었다.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님의 아들 차영조 선생님의 말씀도 그중 하나였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우리 민족이나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씀이셨다. 갑작스러운 말씀에 멀뚱히 바라보니 그분 말씀이 "진짜 해방된 것은 친일파"였다고 덧붙였다.
선뜩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그분은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이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본 놈들 아래에 있었던 거잖아요. 순사도 경찰서장은 일본 놈이었고 관리도 높은 직책은 일본 놈들이 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45년에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나니 그 후에는 그나마 자기들 위에서 지배하던 일본 놈들도 다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친일파들이 차지 했잖아요. 경찰서장이고 장관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진짜 해방된 자들은 바로 친일파 아닙니까"라는 것이었다.
하판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일 경찰 하판락은 '오히려' 더욱 잘 나갔다. 해방후에도 하판락은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여전히 경찰로 근무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인 적산 재산 처리에 관여하며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되었다.
그러한 하판락에게 잠시나마 역사적 단죄가 찾아온 것은 1949년 1년의 일이었다. 하판락이 부산에서 반민특위에게 체포된 것이다. 하판락의 고문으로 사망한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그를 반민특위에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1949년 당시 고원섭이 쓴 <반민자 죄상기>에 따르면 하판락을 체포한 반민특위가 그를 서울로 압송하려 하자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부산시민들이 애원할 정도로 하판락에 대한 분노가 충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서울로 압송되어 반민특위에 의해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으나 하판락은 끝내 자신이 한 독립투사 살해 및 착혈 고문 사실 등을 끝끝내 부인했다. 그러다가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 발생후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하판락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 후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한 재력을 가지고 사업가로 변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았고 2003년 9월까지 향년 92세의 천수까지 누리며 살다가 떠났다. 친일파로서 가장 끝까지 살다가 떠난 이가 하판락이었다.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할 당시 명단에 든 대상자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친일파가 바로 하판락이었던 것이다.
'친일 고문 경찰 하판락' 잊지 말아야용서해야 할 것과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민족은 결코 번성할 수 없다. 94주년 '3. 1 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내려놓은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을 생각한다. 그들이 친일 고문경찰 하판락으로부터 그 지독한 고문을 당하며 죽어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내가 너에게 이렇게 당하지만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그날에는 친일파인 네가 반드시 이렇게 당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네가 한 이 짓을 만인이 알아 네가 편히 살지 못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까지 제대로된 친일파 청산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민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늘 나는 그의 이름을 나무판에 새기듯 고발한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하판락' 그가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에게 가한 '고문 만행'은 역사적 심판을 위해 남기고자 한다. 또한 하판락의 고문으로 숨져간 여경수, 이미경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외 신체 불구가 되어 참담한 생활고 끝에 생을 다한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후손으로서 위로하고 사죄드린다.
끝으로 94주년 3. 1 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마음을 다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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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9476&CMPT_CD=P0000
정말,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과거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친일파의 후손이 판치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더러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3.1절입니다. 모두 조금이라도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근데 왜 이런식으로 깨지죠?ㅋㅋㅋ
대한민국 역사중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가 친일파 청산문제죠.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할 수도 없지만, 만약 우리 나라가 임시정부 요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졌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자주'적이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친일파 딸이 대통령 되서 3.1절에 연설하는 아이러니한 나라 ㅋㅋㅋ
전교죠한테 열심히 수업 받으셨나보네요 ㅎㅎ
FACT 좋아하시는 분들이 왜 그러세요 새삼스럽게 ㅎㅎㅎ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건 팩트죠.
친일파, 일본군 장교에 남로당 간부.
전교조랑 무슨 상관입니까?
....그 당시 일본육사 가서 장교되었다고 친일파라고?
지금 하와이 원주민이 웨스트포인트 입학해서 미군 장성되면 친미파라고 매도할 사람이네...ㅎㅎ
하와이 원주민이 '미국의 하와이 강제 병합'에 대한 비판과 독립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면, 또한 미군과 하와이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서로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친미파'라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지금 하와이가 독립하겠다고 미국과 전쟁하고 있나요?
툭까놓고 말해서, 친일파라는 표현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더 좋은 표현 없을까요.
전쟁이 벌어져 서로 죽이는 상황?....
그당시에 우리 국민들 중 임시정부라는 기구가 있다는 사실 조차 아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었을까요?...0.001%?
더구나 정식 일본군과 전투를 하는 독립군 활동이란 박정희가 일본육사 가기 20년전에 완전 멸종된 단어인데.... 미국에 합병된 지금의 하와이와 다를게 하나도 없을 듯 하네요
임정만 독립운동 기구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이 아무도 몰랐다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넌센스입니다만.
천황에게 충성혈서쓴거 보면 더이상 뭐 할말이 있는지.
추천은 누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먹고 일본 육사 갔는데 나이많아서 입교가 불가능하다 하니까 일본 천황에게 개가 되어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썼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친일파 아닌가요?
저도 protagonist님 말씀처럼 친일파라는 표현은 정말 순화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자기 재산이나 일본을 위해서 헌납했다면 또 모를까
자기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면 혈서야 열번 스무번인들 쓰면 어떻겠수...혈서 썼다고 우리 민족에게 털끝하나 해 끼친게 있으면 말 해 보시고..
깡패들 경찰서 잡혀가서 다신 깡패 짓 안하겠다고 혈서 쓰곤 다시 잘도 하더구만...
자기 재산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을 헌납했죠. 재산 따위와 비교가 됩니까?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쵸 일본의 신민으로 출세하는 목적. 뭐 다른 목적이라도 있었나요?
기가 막히는구만 ㅉㅉㅉ
그럼 친일파라는 말이 왜 있나? 일본이 주인이었을때 일본에 충성했으면 다 애국자지.
그런 일본에 대항한 독립군들은 반역자겠고.
역사공부 이전에 완전 개념이 ㅎ
일본 육사가서 장교되었다고 무조건 일본에 충성한 친일파라면
그 당시 모든 공무원, 회사원 등 전국민의 절반이상이 친일파 소리를 들어야 겠죠...지금 일본 회사에 취직해 있는 회사원들 모두 친일파 이고...
우리가 친일파로서 비난 할 대상은 우리 동포들을 억압,괴롭혔거나 우리의 자주독립에 해를 끼친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람에 한정되어야 할 겁니다
군인하고 공무원하고 회사원하고 다 경우가 각기 다른데 싸잡아서 동일시하는건 무슨 허무개그인지. ㅎ
일본 육사 - 일본군 장교 = 무조건 일본에 충성한 친일파
이 등식의 불합리성을 밝히려고 예를 들은 것 뿐인데 싸잡아서 동일시라니...머리 한쪽만 사용말고 좌뇌 우뇌 모두 좀 사용하면서 삽시다...
예를 멍청하게 든 게 누군데요 지금?
그 예시가 양쪽 뇌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에 의해 나온 거군요. 대단하심.
회사원 드립으로 그 등식을 못 깬다는게 kia님 얘기인데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애초에 다른 거라 그 등식 못깸 이러니까 동일시라 그랬다고 시비네 ㅋㅋ 뭐여 이게
좌뇌 우뇌 풀가동해서 군인하고 민간인도 구분 못하네 ㅋㅋ
ㅋㅋㅋㅋㅋ 사학계에선 논쟁이 끝났는데 뭔 ㅋㅋㅋㅋㅋ
제 생각에는 하판락이 최후의 친일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비하하면서 지금 일본 자민당을 지지하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바로 오선화하고 김완섭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팔아먹어서 살고 있는 신친일파입니다. 예를 들어 일한합방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았고 임진왜란때 이미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앞서있었으며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있는 일본의 속국이라고 주장합니다. 하판락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처형을 못시키는 사람이며 이 사람이 한 행동은 과거입니다. 그러나 오선화와 김완섭은 현재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과거도 완벽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현재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반민족행위법에 적용해야되지 않을까요??
신 매국노라는 말이 정확합니다 ㅋㅋㅋ
대학교 가시거든 사학과 교수님 찾아가서 여쭤보세요 제발
부탁인데
박정희가 일본군이였냐 아니였냐
친일파는 순화된 표현이죠
매국노가 정확한 표현임
매국노에 좌빨짓한 박정희 많이 찬양하세요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려진지 오래니까
그런 인물의 과오는 알겠지만, 사학과 교수님들도 그다지 보편적인 사관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 분들이 많죠.
민중사관이 팽배했던 시절에 교육을 받으신 분들의 시각은 그러한 부정적인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읭 좌빨이면 박정희가 좌빨인가?;; 수꼴이라는 표현이 맞지않나요?
좌빨이면 종북주의자인데 박정희는 종북은 안하지않앗나요?
용어선택 용어에대한 뜻도모르면서 아는척하기엔 정치가 딱이죠?
아는것 없이 비판하는 것은 천박한 짓이죠
박정희 로동당활동 했었는데?
박정희
매국노 - 만주국 소위
빨갱이 - 남로당 군사담당
내란 - 516 쿠데타
그 시대에 저지를 수 있는 죄 트리플 크라운 달성한 사람임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이나 정수장학회는 부록 ㅋㅋㅋ
게다가 자기살려고 당시 홛동하던 남로당 명단 다 팔아재꼈던 기회주의자죠.
박정희가 친일파였고, 한때 남로당에 가담했던 것은 엄연히 팩트죠.
이 후 박정희가 잘한 점이 있는 점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설사 박정희가 성인 급의 업적을 남겼더라도, 과거에 행한 잘못의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잘못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카키 마사오와 기시 노부스케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죠...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을 설계한 a급 전범입니다. 현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이기도 하구요.
역사공부를 일베에서 하는 분들이 있어요 ^^
박정희가 잘한 일이랑 친일파인거랑은 별갠데..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버릴려는 사람들이 있네
여기 글쓰는 애들 선조들 중에 창씨개명 안한사람 있으려나? 일본한테 꿇었다면 창씨개명 이야기도 나와야하는데?
그건 쑉들어갔우 안그류? 혹시 여기 창씨개명 안하고 일본이 주던 배급 안먹었던 선조의 후손있다면 그사람이쓰는글
모두다 추천요정해줄게;; 인증은 필수겠지?
추천 안 해줘도 되고,
박정희가 2번 창씨 개명한 건 아나? '다카기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
둘의 차이 설명 못하면 그냥 사라지기를...
박정희가 일제시대인 1917년에 태어난 건 박정희 잘못이 아니지만,
교사 자리 그만두고 만주군 장교로 들어간 것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박정희가 엄연히 선택해서 간거죠.
제가하는 말은 특정인물이아니고
너의 집안 그렇니까 너의 성이 바뀌었엇나 그걸묻는겁니다
어떤대통령이하던 상관없고 그런말을 하는 당신의 집안이 어떤 상황이었나 묻는겁니다
뭔 헛소리인지.
힘 없고 연약해서 맞아 죽을까봐, 굶어 죽을까봐 시키는 대로 했던 창씨개명을 한 무수히 많은 서민들과
독립군을 때려잡는 일본군의 장교로 자진입대한 사람과 동일선상에 놓는건 무슨 개념이죠?
이건 뭐 길에 침뱉은 사람과 살인자를 같은 범죄자라고 씨1부리는 꼴이네.
'다카기'와 '오카모토'의 차이도 모르는 종자랑은 이야기 하기도 싫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우리집은 창씨 개명 안 했으니 걱정 하지마. ^^
인증은 당신 먼저 하면 해볼께.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그런데 워낙 한미한 집안이라 남은 공식적인 기록 자체가 없는게 함정이겠지...)
당신집은 어느 집 종살이 해서 이름도 갖지 못한 모양이네.... 당시 모든 사람이 다 했던 창씨 개명을 자기만 안했다고 큰소리 치는걸 보니
그리고 어줍잖게 들은 헛지식 하나 갖고 아는척 하는 꼴도 참 역겹구만....공개게시판에서 종자랑은 이야기 하기 싫다니....
가족 드립.ㅋ 신고했습니다. 운영자께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종자는 안 되고 선친을 종으로 만드는 개드립은 되고 ㅋㅋㅋ 개념인증 제대로 하네요 ㅋㅋㅋ 골때린다 진짜 ㅋㅋ
하여간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계시네....한국에서 살면서 우리집 남자들은 모두 군대하고 관련이 없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그럼 당신들 식구는 일본넘들인 모양이네....이게 가족드립인가?
상대방 보고 종자라고 이야기 한 것과 위 표현을 동일시 하다니....정말...골때리네...ㅋㅋㅋㅋ
동일시라뇨? 내가 언제 동일시했다는 겐지... 당신 표현이 훨씬 더 저질인데요. 비교할 걸 해야지 ㅎㅎ
예도 정말 멍청하게 드시고... 군대가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이거도 좌뇌와 우뇌의 콜라보레이션으로만 이해가능한 예시인가?
운영자님 뭐하나요..
그리고 또하나의 문제는 꼭 박정희 박근혜 전두환 이승만 뭐 이것저것 모든 대통령을 까도
김대중 (도요타다이쥬) 노무현은 조금만 잘못을 지적할라 하면 미친척하고 달려드는지 모르겟네요?
정말 중심을 잡는 중도면 그러지 않을 텐데말이죠
단어 선택 보니 어디서 왔는지 보이네...
노무현 말고 노운X라고 왜 안하지...?
ㅇ? 다카기마사오 도요타다이쥬 뭐 다비슷한거 아닌가? 창씨개명 아니냐?
지금 진흙을 뿌리고 계시네요.
지가 무슨 친일베 아바탄가 친일베 비판만 보면 죽자 달려드네
삐에로 저 사람 참... 대다나다^^
저렇게 대놓고 일베티 내기도 쉽지 않은데..
오르비도 진흙탕이 되는군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