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하는 다람쥐 [946871] · MS 2020 · 쪽지

2021-02-10 03: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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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펙타클한 일대기와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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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도 스펙타클한 삶을 살았다고 거의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돈 잘벌고서, 내가 4살 때는 아웃백에서 스테이크도 썰었던 우리 집안의 돈줄은 사실 아버지가 가짜 기름을 판 것으로 번 것이었으며, 그 이유로 우리 아버지는 3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어 지내셨다.


이후 출소하시고부터 아버지께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셨는지 우리 가족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셨다. 내가 직접 본 것은 몇 안되지만, 겨우 한 살 차이나는 누나는 항상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거나 당사자가 되었고, 지금 우리 누나의 머리에는 그때 일로 인해 혹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나는 나도 모르게 죽을 위기도 한 두번을 넘겼다. 출소 이후 억 소리 나는 대출금은 우리 가족들을 휩싸고 있었으며, 그 이유로 아버지께서는 집에 번개탄까지 피우셨지만, 다른 친척의 만류로 지금까지도 나는 살아있다.


이후 어머니께서는 결국 외가로 가시고,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의 집에서 자라면서 많이 맞으며 지냈다. 그리고 아직도 아버지의 정신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런지, 아버지께서 화장실에서 도끼로 자신의 팔을 계속해서 찧었고, 그것으로 인해 붉은 피가 화장실에 잔뜩 튐과 동시에 아버지의 팔이 달랑거리는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런 이유로 결국 초2때부터는 외가에서 살게 되었지만, 외가의 상혀황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2개의 사촌 형제자매와 함께 살고 있는데, 한 사촌의 경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다른 한 사촌은 현재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상황인지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삼촌이 남은 12명의 사람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 그정도로 정말 힘들게 살아왔다.


이런 이유에서인가, 우리집에서 나 이전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모두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바로 취업하였고, 내가 남자 중에서는 최초로 인문계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아주지 않는 그런 공부는 쉽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삼성장학금으로 200만원을 받더라도 다 어머니께 드렸으며, 부담될 것을 생각해 나는 ebs교재마저도 쉽사리 구매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보냈고, 결국은 지금은 공주대학교 법학과에 등록했지만, 나의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2명의 누나가 대학을 다니고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보증금조차 대달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머니께서는 기숙사를 떨어지게 된다면 등록을 취소하고 재수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누군가는 어려운만큼 많이 지원을 받지 않는가라고 말하지만, 내가 지원받는 것은 매년 학교에서 주는 아디다스 상품권 20만원. 당장 우리 식구 4인기준으로 어머니께서 버시는 돈이 200만원이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답이 없다.


국가 장학금이 그나마 나를 돕는가 싶지만, 그마저도 기숙사비나 자취비를 이유로 대학도 못 다니고 재수를 하게 생겼다.


정말 사실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정말 너무 힘들게 한다. 당장의 대학도 기숙사가 안되면 등록을 포기해야 하는 이러한 상황이. 이럴 때마다 결국은 돈인가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한다.


정말 두서 없는 글이지만, 결국은

그냥 새벽에 약간 감성타서 쓰는 그저 푸념글


우리 집이 돈이 많은 가정이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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