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기간에폭주하는컴퓨터과학자 [988802] · MS 2020 · 쪽지

2021-02-02 01:17:12
조회수 5,403

오르비언한테 여친생기는 소설 0화.txt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5838248

나는 오르비언이다.


옮밍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가끔 몇몇 오르비언들이 주변 지인들에게 옮밍을 당했다며 오르비에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이런 댓글을 단다.


"ㄱㅁ"


나에게 있어서, 옮밍을 당할 수 있는 지인이 있는 것 자체가 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기만자다. 나와는 또 다른 세계의 오르비언이다. 


방학이 되면 특히나 대화할 상대가 없는 나는 2평 남짓한 방 한 모퉁이에 처박혀 오르비를 하며 세상과 소통한다ㅡㅡ


"존예 ㅇㅈ"


왜인진 모르겠으나 새벽만 되면 오르비는 인증글로 불타오르고, 대부분 어그로성 인증글이 대부분이나 진짜로 존잘, 존예들이 인증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같은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용모가 다를 수 있는지 감탄하며, 새벽 2시에 또 한번 인생은 쿠소겜이라고 한탄한다ㅡㅡㅡㅡ



요즘 오르비를 하느라 생활패턴이 망가진 내가 "휴르비합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던 것도 한두 번은 아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메신저 아이콘 우측 상단에 "1" 표시가 뜰 일은 없으므로, 오르비 게시글 모아보기 창을 30초 단위로 새로고침하며 

팔로우한 사람들이 올린 글을 즉석으로 확인하는 데에 중독되는 것은 사회와 단절되지 않기 위한 나의 최후의 무의식적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ㅡㅡㅡ


"아, 이제 자야지."

폰을 끄고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눈을 감는다. 

내일을 위해 지금 자야 한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최근에 내가 팔로우한 "허수집합모임"님이 올린 "수*휘 종특.txt"에 내가 단 댓글에 답글이 아직 안 왔잖아?

이것만 보고 자야지.


라며 어두운 방에서 훤한 불빛으로 폰을 킨 나는 밝은 빛에 눈을 찌푸리며 오르비에 접속하고ㅡㅡ

그렇게 새벽 4시 반쯤이 되어서야 잠드는 옯창인생을 반복하고 있다.


10시가 되어서야 일어난 나는 오르비에 접속해 "얼버기"라는 제목과 함께 본문에는 디씨콘을 곁들인 뻘글을 싸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샤워와 양치를 한 후 머리를 대충 말리고 책가방에 시발점 수학1과 워크북, 김동욱의 일클래스와 배기범의 필수본을 넣었다.

유틸리티와 보온 측면에서 활용도가 좋은 후드티를 대충 입고 후드티 위에는 하얀 줄이 두개 그어진 검은 널디를 대충 걸치고 KF94를 썼다. 독서실에 갈 준비가 끝났다.


잠깐만, 이거 후드티 5일째 입고 있네... 아잇...



옷을 입고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나는 가방을 메고 구부정한 자세로 사회를 지칭하는 공간인 "바깥"으로 내 육체를 이동시킨다. 

바깥의 공기는 차갑고 쌀쌀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후드티에 모자가 달려 있어서 망정이지, 없었다면 차가운 바람때문에 덜 말린 머리가 엄청 차가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면부와 후두부를 덜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마스크와 후드티의 이름도 모르는 개발자들에게 감사하며 버스를 기다렸다ㅡㅡ


"잠시 후 **번 버스가 도착합니다."


폰으로 오르비를 보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집중해야 한다. 시야를 잠시 폰 밖으로 향하고, 신호등 앞에서 대기 중인 버스를 응시한다.

오르비를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놓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순간 만큼은 버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또 버스 기사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버스가 올 때 약간 앞쪽으로 걸음을 향해 내가 탑승한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ㅡㅡㅡ결국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철저한 행동 과정을 통해 버스에 탑승하는데 크게 성공하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 만화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아싸가 버스에서 앉을 수 있는 최적의 자리는 두번째칸 안쪽이다.

바깥쪽 자리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의 안좋은 시선이 내게 올 수도 있으므로 안쪽에 앉아야만 한다.


ㅡㅡ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꽉 차 있었다. 버스 카드를 찍고 나서 두번째칸 안쪽 자리에 앉을 수 없음을 확인한 나는 남은 빈자리가 있나 빠르게 스캔했고ㅡㅡ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리는 5번째 줄의 왼쪽 라인의 바깥쪽 좌석이었다. 나쁘지 않은 자리라고 생각하며 가속되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집으며 그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그 자리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비슷한 또래의 여자임을 알아챘다.



아.



나 같은 아싸들은 대개 이런 상황이 닥치면 각 행동 여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 본 후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해 점수를 매겨 최종적으로 그것에 가중치를 부여해 의사 결정 트리를ㅡㅡㅡ


ㅡㅡㅡ어쩌고를 했어야 하나 피곤해서 그냥 앉아버렸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가방을 앞으로 안고 그 위로 폰을 잡은 채 오르비를 보고 있었다. 

오르비를 보고 있으니 옆에 같은 또래의 여자가 앉아 있어도 공포증이 크게 유발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게시글 모아보기"를 탐방한 지 10분 정도가 지나고, 


"이번 정류소는 ***역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


독서실에 도착해 내릴 때가 된 나는 가방을 뒤쪽으로 메고 내릴 준비를 했다.

다만 이 정류장은 경사가 조금 있어서 버스가 감속할 때 쏠림이 심하다. 많은 경험을 통해 배운 나는 또 한번 이 정류소에 내리기 전에 준비된 액션을 취한다.

그렇게 감속되는 버스에서 선 채로 있던 내가 손잡이에 온 힘을 주고 있을 때 쯤, 뒤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얏...!!"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애였다. 급감속하던 버스에서 일어서면서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가방끈에 걸려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떨어트린 그녀는 끈이 좌석 손잡이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바로 앞에 있던 나는 그녀의 가방 끈을 빼내 주고, 떨어진 폰을 주워 주는데...


'어?'


주우면서 흘끔 본 화면은 오르비 글쓰기 화면이었으며 제목은


"지금 버스 옆자리 앉은 사람 오르비 하는중임 ㅋㅋ"


뇌 속에서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나는 버스 카드도 찍지 않고 내려 버렸다. 그 여자애도 같이.


"저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


"아까 폰 화면.. 혹시.. 보셨어요...?"




"....."






그때부터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반응 좋으면 더써야지 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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