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초코라떼 [997837] · MS 2020 · 쪽지

2021-01-25 02: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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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문항으로 알아보는 국어 뇌절의 사례와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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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뇌절' 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수능과 같은 시험에서, '뇌절'은 냉정하게 접근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을 문제를 긴장 등의 요인으로 잘못 접근하여 시간을 날리거나 틀리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해당 과목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하지 않았다면 '뇌절'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뭔가 아는 건 많은데 그 지식과 경험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아 뇌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예시문항에서의 저의 뇌절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어 지문을 읽을 때 가지면 좋을 태도에 대해 제가 생각한 내용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2. 지문

이 글은 2022 수능 예시문항 국어 비문학 '정신에 대한 두 견해와 동일자 식별 불가능성 원리' 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시문항을 풀어 보지 않으셨다면 풀어 보고 오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3. 나는 어떻게 뇌절을 했는가


뇌절해서 문제 틀린 게 뭐가 자랑이라고 공유하냐? 라는 말을 들을 것 같긴 한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쓸데없이 과도하게 추론하려다가 망하기 쉽다' 라는 내용입니다.


우선 위의 지문을 모두 읽고 오셨다는 것을 가정하고 중간의 단락을 보겠습니다.




해당 단락에서는 이 지문의 중심이 되는 '동일자 식별 불가능성 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당연한 내용입니다. 라이프니츠가 제안한 내용은, X와 Y가 동일하다면 -> X와 Y는 '똑같은 특성'을 갖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똑같은 특성'이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자료를 이용해 추가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주장의 주요 부분만 요약한 것이라, 이미지만 보고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텍스트를 읽으시면서 이미지를 곁들여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똑같은 특성'이라는 단어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냐면,


특성을 집합의 원소로 보았을 때 


(1) 처럼 X와 Y가 아예 동일한 집합이라서 가지고 있는 특성(원소)가 모두 동일한 경우,


(2) 처럼 X와 Y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교집합이 존재해 어쨌든 '똑같은 특성'을 가지는 경우


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X와 Y가 동일하다면 -> X와 Y는 '똑같은 특성'을 갖는다. ' 이 문장만 보았을 때는 당연히 위와 같은 중의성이 발생합니다.


평가원은 이런 중의성을 해소하기 위해, 뒤에 부연 설명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떠한 물리적 대상도 갖지 못할 성질을 정신이 가진다면 -> 정신은 물리적 대상과 다르다.'


이것을 잘 생각해 보면, 당연히 (1)처럼 해석했을 때 말이 됩니다.


(2)와 같이 문장을 해석할 경우, (물리적 대상 = X, 정신 = Y로 치환했을 때) 이미 X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X도 갖지 못할) 원소를 Y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순입니다.


이는 ' X와 Y가 동일하다면 -> X와 Y는 '똑같은 특성'을 갖는다. ' 의 대우, ' X와 Y가 '똑같은 특성'을 갖지 않으면 -> X와 Y는 동일하지 않다. ' 라는 명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굵게 표시된 두 문장이 결국 같은 뜻입니다)


또, (1)의 뜻으로 해석한다면 '동일하다'와 '똑같은 특성을 갖는다'는 정확히 같은 뜻이 되므로, 두 조건은 서로 완전히 동일합니다.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뇌절할 포인트가 없고, 당연히 뒤의 문장을 읽는 순간 대부분의 독자가 (1)의 뜻이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10번 문제에서, d 부분을 '똑같은 특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평가원 문제에서는, 한자어 바꾸기와 같이 단어의 뜻에 집중해서 어휘 문제를 내는 경향이 짙었는데, 이건 어휘 문제라고 보기도 애매한 것 같습니다. 지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해서 바꾸어 쓸 수 있는지 자체를 묻는 것이니까요.)


역시 아래의 이미지를 통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역시 텍스트와 이미지를 같이 보시면 이해가 수월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직전에 '똑같은 특성'이라는 단어를 이 지문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똑같은 특성'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 방금 논의한 대로 해석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두 문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고, 10번 문제가 지문의 마지막 문제이다 보니 우리가 문제를 풀면서 해당 단어의 뜻에 대해 되새겨 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문제를 풀 때 애초에 아까 한 (1), (2)의 고민을 하지도 않구요..


해당 문장을 짚어 보면, '육체'는 '의심 가능하다'라는 특성을 갖지만, '정신'은 '의심 가능하다'라는 특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두 대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논지입니다.


우리가 (1)의 해석을 기억하고 있다면, 'X와 Y가 동일하다'와 'X와 Y가 똑같은 특성을 갖는다'는 서로 완전히 동일한 서술이므로, '동일하지 않다'를 '똑같은 특성을 지니지 않는다'로 치환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1)의 해석을 시도해 보지 않았거나, 지문을 독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잊어버렸다면, 이 부분에서 굉장한 혼란을 마주하게 됩니다.


'똑같은 특성'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동일하지 않다' = '똑같은 특성을 지니지 않는다'? 이건 고1때 집합만 배웠어도 정말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바나나와 사과를 봅시다.


두 대상은 '과일이다.'라는 '공통인 특성'을 가지지만, 바나나는 노랗고, 사과는 빨갛습니다.


바나나와 사과는 당연히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나나와 사과가 똑같은 특성을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과일이다.' 라는 동일한 특성을 지니잖아요?


즉, 제가 뇌절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조금이라도 공통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면, 위와 같이 치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위의 3번 선지도 영 이상해서 3번과 4번만 남겨 둔 상태였는데, 4번은 논리학적으로 영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4번을 찍었지요.


틀리고도 영 이해가 안 돼서 고민하다가, 찬찬히 읽으면서 분석해 보니 '똑같은 특성'이라는 단어를 이 지문에서 정의하는 특수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국어 시험, 특히 비문학에서는 '지문에 제시된 내용'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고 당연히 저도 알고 있었지만, 보기 좋게 낚였습니다.


4. 그래서 어쩌라고?


비문학 독해를 할 때, 위에서 말한 '뇌절'이 오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대처는,


(1) 시간에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나름대로 추론한 내용'하고 '완전 이상해 보이는데 지문에서 근거는 못 본 내용' 중에서 틀린 걸 찝어야 할 때 후자를 찍는 것이 앵간하면 낫습니다.

물론 심하게 뇌절할 때의 얘기이지, 일반적인 문제풀이 방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문제가 안 풀려서 시간을 상당히 지체한 상태이면, 대개 긴장으로 인해 선지의 근거가 되는 단어를 지문에서 찾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2) 시간에 여유가 살짝 있다면, 선지에서 언급된 단어만 지문을 빠르게 훑으면서 찾아 봅시다. 처음 읽을 때 지문을 잘 읽었다면, 단어를 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길어야 15초?) 그 단어가 언급된 부분을 진정하고 읽어 보면서 내가 정의를 잘못 이해하지는 않았나? 내가 놓친 부분은 없나? 내가 한 추론은 지문을 바탕으로 한 건가? 아니면 원래 내 배경 지식을 어설프게 덧씌운 건가?

이렇게 다시 한 번 보다 보면 대개 내가 선지의 특정 단어를 못 봤거나, 혹은 지문에 나온 단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 지문에 언급되지 않은 단어를 내가 추론한 선지에서 사용했다면, 이 경우에는 상당히 선지가 안전하게 구성됩니다. 만약 '똑같은 특성'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선지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논란이 되었을지 모르는 문제입니다. 단어를 변형하는 순간, 단어마다 미묘하게 다른 용례와 뜻 때문에 굉장히 한정된 방식으로 선지를 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정말 당연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네요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해서 썼는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댓글로 피드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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