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23학번가자 [1026399] · MS 2020 · 쪽지

2021-01-05 15:41:38
조회수 2,386

나는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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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 명제에 반박 시도조차 못한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빡센 학교를 가서 내신 성적을 노력에 비해 잘 받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유일한 불이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나와 동생, 우리 가족은

이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 혜택과 편익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누리고 받아온 축에 속한다.


내가 살면서 그동안 일궈온 것의 90% 이상은 (라고는 하지만 실상 거의 100%에 수렴한다)


처음부터 가정환경이 유복하고 화목하며 주위 상황이 안정적이었던 것

의사 부모님 두 분의 딸로 태어난 것

돈에 대한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고 갖고 싶은 거 웬만해서는 전부 다 가질 수 있었던 것

해외여행을 갈 때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그래도 이코노미를 탄 적이 훨씬 많다

6년 내내 그 비싼 학비가 얼마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던 것

사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는 대치동에서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일반고일지라도 모두가 인정하는 수준 높은 명문고를 다니고 졸업할 수 있다는 것 -


요약하자면 대강 이러한, 수많은 특권들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이런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위 말하는 '꿀 빠는' 지방 일반고 학생들을 부러워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그렇게 우기면서 애써 스스로 합리화해도,


나는 이 사회 전체로 놓고 봤을 때 명백히 '부모 잘 만나서 꿀 빨고 있는 금수저' 가 맞다.



이러한 나의 성장 배경은,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혹은 아예 알지 못한 채 살아온

그 특권과 혜택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만 하는 이유와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왜 나만 이러한 편익을 누려야 하지? 내가 뭘 잘했기에? 뭐가 그리 대단해서?


나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가난한 환경, 부족한 여건에서 태어나 자라온 사람들도

멀리 갈 것 없이 분명 대한민국에도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할 텐데


내가 과연,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는가? 더 간절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왔는가?

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인가? 더 잘난 사람인가? 인격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인가?


놀랍게도 지금의 나는, 이 질문들 중 어느 하나에도 긍정할 수 없다.



그래서, 바꿔보고자 한다.

꼭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바꾸고 싶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큰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사회의 공평함과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해 보고 싶다.


뻔한 말보다, 거창하고 화려한 꿈보다 마음가짐과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현재로서 내 삶의 목표는

'적어도, 내가 살면서 이 사회로부터 받아온 만큼의 혜택과 편익이라도 그대로 사회에 환원하면서 살아가자.'

굳이 정리하자면 이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이 나라에, 그리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빚은

정말로 벅찰 만큼 너무 너무 많다.


이미 지불하고 환원해야 할 것들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노력해야겠다.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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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2 · MS 2020

    반대로 생각해보셈 님이 지방 ㅈ반고에 다니고 지금 지방 ㅈ반고 다니는 학생이 님이었으면 그사람들이 님처럼 생각했을거같음?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3 · MS 2020

    나는 옛날에 그래 사회에 환원 좋지 이러던사람이었는데 요새는 그냥 다 뒤지던 말던 나는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함

  • 내럄 · 947641 · 21/01/05 15:44 · MS 2020 (수정됨)

    그건 본인 생각이고 글쓴이의 생각에 굳이 비꼬면서 반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이 글쓴이가 여기서 타인의 의견을 물어본게 아니잖아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5 · MS 2020

    비꼬는건 절대 아님 그냥 나는 '책임'이 없는 일에 괜히 책임을 지려다가 주위 소중한것들 놓치지 말라는거임 내가 그것때매 밀려났던사람이라서

  • 내럄 · 947641 · 21/01/05 15:47 · MS 2020

    글쓴이가 당장 먹여살려야하는 가족이 있으면 몰라 창창한 청년의 포부에 대해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50 · MS 2020

    제가 딱 1년전까지 저런마인드였는데 1년만에 생각이 확바뀐케이스임 그래서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이다 라고 말하고싶었어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4 · MS 2020

    어줍짢게 남 챙기려다 그사람들한테 피해끼치는게 더 못할짓임 강남에서 태어난게 무슨 대통령 국회의원같은 직업마냥 국민한테 봉사의 의무가 있는것도아니고

  • winsugar dl · 1017862 · 21/01/05 15:46 · MS 2020

    ? 제목이 좀 재수없긴 하지만 글쓴이의 마인드 자체는 감사하고 환원하려 노력하겠다는 의미가 더 강한게 아닐까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6 · MS 2020

    멋진 마인드는 맞음 근데 꼭 그래야할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을뿐임

  • winsugar dl · 1017862 · 21/01/05 15:48 · MS 2020

    ...넹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8 · MS 2020

    이게 무슨 롤즈의 무지의 베일마냥 저분이 자기가 어디서 어느 계층으로 태어날지 모르는것도 아니고 이미 잘 태어나놓고서 과연 내가 빈곤하게 태어났으면 어떻게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거임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감 힘을 가졌으면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쓰면 되는거임 그 소중한 사람들의 범주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충분히 있을수있음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5:46 · MS 2020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 꼭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제 의지/노력과 관계없이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입장이기 때문에
    제가 받은 만큼이라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재이재이님의 의견에 반박할 의향은 없습니다. 해주신 말씀 줄곧 명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49 · MS 2020

    ㅇㅇ 힘내요 멋진사람이네요 정말

  • 아​린아 의대가자 · 840634 · 21/01/05 18:35 · MS 2018

    조금 많이 꼬이셨네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8:55 · MS 2020

    제가 조금 강하고 꼬인듯 말을 하긴 했습니다

    저도 1년전까지 지금 글쓴이분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동질감이 들어서 더 강하게 말을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했던건

    글쓴이분이 어떤 삶을 사시던 그 본질적인 동기는 글쓴이분이 진짜 진심으로 원해서, 하고싶어서여야만 한다는겁니다

    괜히 사회로부터 남들보다 받은게 많으니 사회에 환원해야한다 이런 동기로 앞으로 몇십년의 삶의 방향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들 앞으로 글쓴이가 사회로부터 받은걸을 환원해야만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삶의 방향을 선택했을때 어떤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고 멋지다고만 말해주는데 한명쯤은 이런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확실히 제가 약간 오바하긴 했어요

  • 홍훌입니다 · 868448 · 21/01/05 15:43 · MS 2019

    그럼 덕코좀주세요

  • ㅇㅇ134 · 1005085 · 21/01/05 15:49 · MS 2020

    ㅋㅋㅋㅋㄱㅋㄱㅋㄱ

  • 연의생 흑염소 · 914581 · 21/01/05 19:49 · MS 2019

    틈새시장..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9:50 · MS 2020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9:50 · MS 2020

    암튼 드리긴 드렸읍니다

  • 홍훌입니다 · 868448 · 21/01/05 23:54 · MS 2019

    베푸는삶 감사합니다

  • 내럄 · 947641 · 21/01/05 15:43 · MS 2020

    자세가 멋지네요

  • winsugar dl · 1017862 · 21/01/05 15:43 · MS 2020

    마인드 ㅈㄴ 머싯...

  • winsugar dl · 1017862 · 21/01/05 15:44 · MS 2020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죠
    당연한건데 자꾸 잊게 되는듯
  • 치솟비 · 1002283 · 21/01/05 15:44 · MS 2020

    박애정신 응원합니다

  • 오르비는질병이다 · 1012074 · 21/01/05 15:45 · MS 2020

    롤스가 좋아할 인간상

  • 오영택 · 877896 · 21/01/05 15:52 · MS 2019

    그러한 고민을 해볼 여유를 가진 것 자체에 부러울 따름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5:53 · MS 2020

    ㅇㅇ 진짜 힘든 사람들은 저런 고민조차 못함 이게 팩트

  • 広瀬すず · 1009173 · 21/01/05 16:14 · MS 2020

    저도 강남8학군 일반고 졸업했는데 글쓴이 말에 공감되네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6:27 · MS 2020

    23학번 서울대 의대 지망이시면 글쓴이분은 이제 막 고2가 되시나요?
    궁금한데 나중에 대략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사회에 봉사하시겠다는거에요?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6:28 · MS 2020

    의대 지망인 이유가 그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중에 전국적으로 의료봉사를 다니고, 국경 없는 의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6:34 · MS 2020

    슈바이처처럼 가난한 빈국의 아이들을 무상으로 치료하겠다 이런건가요?
    그것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혹시 그 열정을 조국을 위해 사용하거나 그래볼 생각은 없으심? 약간 뉘앙스가 이상하긴 한데 절대 비꼬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묻는겁니다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6:35 · MS 2020

    전국적으로 의료봉사를 다니고 -> 일단은 국내 사정부터 좀 어떻게 해보고 ㅇㅇ
    국경 없는 의사회는 어차피 의사국시 패스하고 프랑스어 공부해야 갈 수 있어서 좀 더 나중에 들어가려고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6:39 · MS 2020 (수정됨)

    의료봉사도 좋지만 저는 지금 이 나라의 의료 전반을 개선하는게 의사 한명으로 가능할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묻는건 이 나라의 의료제도 자체를 체질적으로 개선해볼 생각이 있으신지 묻는거에요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6:51 · MS 2020

    저 또한 이 나라의 의료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의사 한 명만의 노력으로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네, 이 나라의 의료 제도를 체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네, 의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제가 혼자서 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울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 볼 의향이 있습니다.

    저 한 명으로 뭔가 크게 달라지거나 바뀌지는 않더라도,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것의 시작이 부족하게나마 제 노력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도록요.

  • 재이재이 · 1001257 · 21/01/05 16:55 · MS 2020 (수정됨)

    그렇다면 저와 당신의 이해관계는 일치합니다

    위에 저런 말을 써놓은 인간이라 약간 모순적일지는 몰라도

    부디 지금 이때의 열정을 계속 간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님한테 노력하라 뭐라 말할 이유도 없고 그럴 짬도 안되지만 부디 최선의 노력을 다해 훌륭한 의사가 되어주십시오.

    한명이라도 더 당신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사회는. 저도 그렇고요

  • 치즈감튀 · 946154 · 21/01/05 16:36 · MS 2020

    ㄷㄷ멋있네여 나도 베풀고싶다 근데 전 제 코가 석자라ㅠ

  • 대학간다! · 889382 · 21/01/05 16:38 · MS 2019

    형님 오픈카톡으로 메로나 하나만 사주십쇼

  • 서울공대 송우기 · 971617 · 21/01/05 16:47 · MS 2020

    님 여르비였음?
  • 설의23학번가자 · 1026399 · 21/01/05 16:54 · MS 2020

    그거에 되게 충격 많이들 받으시더라고요 여르비 수가 적어서 그런가

  • 서울공대 송우기 · 971617 · 21/01/05 17:02 · MS 2020

    그거랑 별개로 생각 정말 깊으신 듯 하네요 배우고 감니당
  • 행운나무1111 · 975373 · 21/01/06 12:51 · MS 2020

    헐ㄷㄷ

  • 융합형인재 · 823337 · 21/01/05 16:55 · MS 2018

    존경합니다.
    그리고 꼭 글쓴이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지 않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더 아랫부분에 위치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빵떡 ⸝⸝ʚ̴̶̷̆ ̯ʚ̴̶̷̆⸝⸝ · 966444 · 21/01/05 17:03 · MS 2020

    의사부모님 ㅗㅜㅑ,.,.,
    설의가십쇼
  • No.99 Aaron Judge · 919199 · 21/01/05 17:26 · MS 2019

    존경합니다
  • 참치마요참지마요 · 1011785 · 21/01/05 17:50 · MS 2020

    오.. 저도 거의 비슷한 환경이고 고2쯤부터 이런 생각으로 살고있네유 비슷한 생각을 가진분이 있어서 좋네요!

  • 서울대학교. · 988344 · 21/01/06 10:59 · MS 2020

    부럽다...좋은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