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1-01-02 20: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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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닌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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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여기서 말한 '정의'는 'justice'입니다.




 오늘 글의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저도 고등학교때 독후감상문 쓴다고 좀 읽어봤었습니다) 마이클 센델 교수가 한 말입니다. 하버드에서 정의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우리에게 여러가지 신선한 충격을 준 것으로 유명하죠.
















 제가 여태 쓴 글들 중에서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은 '미군은 겁쟁이이고 우리의 기습적인 작전(미드웨이 해전)을 전혀 모를 것이다' 라고 '확신'을 하고 전투에 임했다가 일본의 가장 강력한 주력 항공모함들을 잃어버렸죠. 실제 일본군의 '편견'과는 달리 미국은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서 미드웨이 전투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가끔 본인 스스로를 완벽하고 매우 논리적이라고 확신하고, 스스로가 논리적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편견'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전부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끝이라고 '확신'하는 것이죠.




 지금은 히틀러가 인류 최악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정말 그야말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인류사에 큰 오명을 남긴 악마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당시 히틀러의 연설과 독일인들의 반응을 보면, 지금의 평가와는 전혀 다릅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확신'했으며, 우생학적이고 비윤리적인 강제수용소와 집단 학살, 유태인 학살을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자신의 생각이 곧 정의이며 인류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하는 일을 악행이라고 인지했을까요? 전혀요. 그들은 거꾸로 자신들의 행위가 매우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그런 일들을 벌였었습니다.

https://issuetoktok1177.tistory.com/60)








 한반도를 점령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연달아 일으킨 일본 제국도 비슷한 '편견'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계는 서양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지화하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하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곧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 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들의 이런 정의를 우리는 '대동아공영권'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은 단지 명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이러한 행동이 아시아를 위한 행위라고 생각했고, 타 아시아 국가는 물론 자국민까지 학살하는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일본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이 오키나와가 미군에 의해 점령 위기에 처하자, 민간인들에게 직접 '자살하여 명예를 잃지 마라'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미친소리라고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을 껍니다. 그런데 당시 오키나와 민간인들은 스스로 자살하기도 했으며(미군에게 점령당하면 온갖 수치와 착취를 당한다는 세뇌), 또는 반강제적으로 학살당하거나 떠밀려서 단체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군이 점령하니까, 일본군의 선전처럼 미군이 착취와 살해를 일삼키는 커녕 구호물품과 식량을 나눠주고, 또 미군에게 제공한 노동에 대해서 공정한 댓가를 치뤄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딸이 욕보일 것을 두려워서 딸을 죽이고 나중에 미군에게 사로잡혔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리 각종 의료품들을 받은 한 남자는 그 물건들을 딸의 시신 옆에 두고 펑펑 울었다기도 합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나아가면서 우선 한반도를 병합하고 주권을 빼앗은 근거도,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하고 발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정의관에 입각해서 아시아 국가를 정복했습니다.

https://namu.wiki/w/%EB%8C%80%EB%8F%99%EC%95%84%20%EA%B3%B5%EC%98%81%EA%B6%8C)







 제가 아직도 존경하며 연락을 하는 중학교 세계사 선생님이 한분 계십니다. 그 분의 수업이 정말 재밌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의 수업 중에서 한 수업은 시사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당시 이슈가 되는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양 측에서 주장하는 뉴스를 보여주신 뒤에, 학생들에게 여러 의견을 발표시키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수업 중이나 이후에도 결단코 자신 스스로의 성향을 드러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되서야 친해지고 이것저것 민감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도 어렴풋이 선생님의 성향을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이때 이 선생님께 이런 수업을 들었던 것은 제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오르비를 보면 정치글이 헤드라인으로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도 일부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리고 다른 성향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글들도 꽤 보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저는 앞서 설명한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이 생각납니다.




 벌써부터 학생들은 저런 '편견'이라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미래이고 나중에는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는 주도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사람들이 이미 어릴 적부터 '편견과 확신'에 갇혀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못본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국 하고싶은 말은, '확신에 가득하여 편견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지금의 정의관으로 보았을 때 정신나갔고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런 편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질렀었습니다.






https://news.hmgjournal.com/TALK/reissue-prejudice-survey







 어느 쪽 정치 성향은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항상 음모를 꾸미고 있을 꺼야. 나와 반대되는 사람들은 나를 해치려는 이기적인 존재들이야 와 같은 편견과 확신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설명한 두 사례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었기 때문이죠.




 세상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다양합니다. 아직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제도권에 머무는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파편적인 정보들만 얻고 있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편견에 갇혀서, 자신의 정의관을 확신하며 행동하는 것은 때론 스스로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근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기본 전제는 마이클 센델 교수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신'하는 정의는 절대로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여태 정의는 항상 변화해왔으며, 그런 변화를 거부하고 편견에 갇혔던 정의들은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왔었습니다.










 좀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으니 쉬운 실제 사례를 하나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느 화학과(순수과학) 교수님과 그 밑에 화학공학(공학) 대학원생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A와 B라는 물질을 합쳐서 C가 나오는데, 화학과 교수님은 A와 B가 합성되는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했고, 화학공학과 대학원생은 C가 최대의 효율로 뽑히는 A와 B의 조합 비율만 알아내면 된다고 했었죠.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시각, 관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두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우선 순수과학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그것을 밝혀내어 이후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도모합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A와 B가 합성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알아내면, C가 최대한 많이 나오는 최적의 비율도 알아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학공학은 당장 현실과 경제성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A와 B의 합성 과정을 규명할 필요도 없이, 결과적으로 싼 값에 C를 많이 뽑아내는 것이 공학적인 성공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 재밌었습니다. 둘다 비슷하게 '화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렇게나 관점에서 큰 차이가 나듯이, 이 세상은 다양한 관점과 수많은 정의 이론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딱 한 개만을 골라서 그것이 완벽한 정의라고 확신하는 순간, 그것은 정의가 아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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