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ant [656176] · MS 2016 · 쪽지

2020-12-12 20: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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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시한부판정을 받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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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청 자기 주장도 강하시고, 말도 거침없이 하시던 분이셨어요. 무서우신 분이지만 저한테는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특히 할아버지 댁에 놀러갈 때마다 한자와 역사 공부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어요.


 할아버지는 여태껏 자기관리를 엄청 철저히 하셨고 올해 86세신데, 1950년도에 대학교 들어가셔서 저희 지역의 건설회사 부사장까지 하실만큼 무서우시지만 존경하실만한 분이라 생각했어요.


 그랬던 할아버지가 2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점차 심해지시더니 몸도 급격하게 안좋아지셔서 잘 걷지도 못하시고 작년부터는 할머니 없이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네요...


 원래 오늘 토요일은 할머니 생신파티를 하려고 가족들과 친척들이 할머니 댁에서 모이기로 한 날이에요. 그런데 어제 새벽에 의식 잃으시고 쓰러지셔서 다들 병원 응급실에 모였네요. 갑자기 폐렴이 심해져서 가래가 기도를 계속 막는대요.


 아까전에 할아버지 뵙고 오는 길이에요. 이제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지셔서 어쩌면 이제 못 뵐 수도 있대요. 이제 목을 뚫어서 호스를 꽂아 연명치료를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길어도 두 달 정도 남았다네요.


 할머니께서 일주일전부터 할아버지가 저를 계속 찾으셨대요. 그리고 어릴 때 제가 공부를 참 잘했다는 말씀을 계속 되뇌이셨대요. 저는 아직 할아버지께 제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엄청나게 무기력함을 느꼈어요. 


 오르비를 고등학생 때 처음 알게되고 이제 24살이 됐네요. 24살이면 어른이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생각이 어린가봐요. 감정을 컨트롤 하는게 생각보단 쉽지 않네요. 2년전에 외할머니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이제는 덤덤하겠지 싶었는데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겠죠? 앞으로 잘 하는 모습들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오늘은 몸은 따뜻한데 마음이 추운 날이네요.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건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속 왔다갔다 하시면서 건강 체크 하시더라구요. 힘들겠다는 생각과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주시는 모든 의료인분들과 올해 입학하게 될 예비 의료인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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