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선 [927839]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12-02 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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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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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수능이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수험생 시절, EBS 고3 다큐멘터리에서 흘러나왔던 <Somewhere only we know>를 매일 아침 들으며 수험장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제 그것도 지난 일이 되어버렸네요.

마지막 수능을 보던 날, 수험장으로 들어갈 때 새벽하늘에 별 하나가 밝게 떠있었어요. 그때 참 좋았어요. 이번 수능은 잘 볼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수능을 잘 봤답니다. 그때 그 별빛을 받으며 이 시(詩)를 생각했어요.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여러분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구름 때문이 아닙니다, 불운 때문이 아닙니다.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이라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마세요.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여러분에게로 빛의 속도로 오고 있으니까요.

저도 생각 못 했는데, 수험생 시절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더라고요. 때때로 치열히 살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기도 하고요.


공부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말 힘들었는데, 유난히 어려운 시간을 견뎌낸 여러분 모두 수능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가치 있는 사람,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수험생 시절 쓴 네 편의 일기를 여러분께 보냅니다.

옷 따뜻하게 입고 마음 편하게 수능 잘 보고 오세요!

지금도 빛나는 여러분의 수능 대박을 응원합니다 :D




2018.11.14.

오늘은 하루 종일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던 하루였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혼자 걷는 기분이 어떤 건지.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야 하고 멈출 수 없고, 빛이 있을 거라 믿으며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마음과 몸으로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그저 내 앞에 놓여있는 길이라고,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다고 나 자신을 달래 보아도 외롭고 힘든 길이었다.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다. 이 길의 끝이 없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면서 여기까지 왔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알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었지만 정신과 몸은 점점 약해져가고.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또 살다 보니 다시 어찌어찌 살아지더라.


다시 1년을 버텨서 여기까지 온 나 자신. 살아 있는 나 자신.

시험은 잘 못 쳐도 괜찮다. 살아있으니까. 그래 그거면 됐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니까.

수능을 망치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처럼 죽기만을 바라며 누워있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몸을 생각해서라도 3번째 도전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

고생했던 나 자신. 이제 쉬어도 돼.

불쌍한 나 자신. 이제 행복해도 돼.


Today, I close the door of my past, open the door of future.

Take a deep breathe and step to a new life.




2019.11.13.


이제 조금 뒤면 나의 마지막 도전이 끝이 난다. 도전이라고 해야 하나. 시도! 나의 마지막 시도가 끝이 난다. 열심히 하지 않았고 피곤했고 게을렀고 나태했다. 결과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으려 한다. 열심히 하지 않은 나 자신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결과. 가혹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원망스러운 것도 많다. 내가 정말 열심히 하지 않았나? 똑같은 input에도 output은 다르다. 누군가가 가진 환경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질투 났다. 그래서 힘들었다. 나의 조건을 비관할수록 더해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마라토너는 마라톤이 끝날 때 조금의 힘도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도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다. 그동안 고생한, 20대의 인생을 바친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다. 이제는 나를 안아주어야겠다.


눈물을 참기 힘들었던 하루. 내일이 진짜 수능인가 보다. 수능 전 날에는 이렇게 눈물이 난다. 시험 못 봐도 건강만 하라는 그 말이 마음에 덮인다.


This could be the end of everything.

So why don't we go?

Somewhere only we know.


이젠 정말 끝.

나 자신 파이팅!




2019.11.14.


나의 마지막 수능.

결과가 어떻든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알바와 병행하면서 여기까지는 누구도 못 올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3년 간의 마라톤을 완주했고 도착하자마자 픽- 쓰러졌다. 이제는 달리기를 그만하고 나만의 속도로 걸으려 한다.




2018.12.11.


합격.

이 두 글자를 보기 위해 일 년을 바쳤다.

나에게도 이 두 글자를 보는 날이 오는구나.

정말 끝이 없는 터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무간도로 들어갈 테지만.

일단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하나의 phase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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