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수생이 수험생에게 전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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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이과 체대, 재수 문과 체대, 삼수 문과로 다사다난한 수능을 친 제 동생에게 수능이 일주일 남은 지금, 수험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하 글은 동생이 써준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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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상초유의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학업을 마무리하는 모든 수험생에게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코로나는 수험생의 라이프사이클을 무너뜨리고, 시험 환경을 부수며, 수능 일정까지 바꿨습니다. 감히 마마라 불릴 법한 질병에 맞서 자신의 길을 걸어간 여러분의 앞에 꽃잎이 뿌려지길, 환한 빛이 내려지길 기도합니다.
저의 경험을 이야기할까, 수능 시험 팁을 알려줄까, 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떻게 쓸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능 일주일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떠올려보며 그때의 저에게 말하듯 글을 써 내립니다.
1. 핑계와 뒷심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심정일 시기입니다. 공부할 내용은 다 한 것 같고, 같은 내용을 다시 보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능 끝나면 뭐할까 생각도 해보고, 더군다나 거리두기 2단계가 적용되기 시작한 지금의 불안한 심정까지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집중력이 떨어지기 충분한 시기입니다.
“제발 상황 탓 주변 탓 남 탓 문제 탓 할 시간에 공부를 더해서 남한테 자랑해라 느그들은 핑계 대느라 성적 못 올릴 때 나는 성공했다고.” 제발 핑계대지 마세요. 2017수능 국어 비문학에서 가루되고 2018수능 지진 때문에 일주일 미뤄져서 새벽에 학원 쓰레기통 뒤져서 공부했던 책 찾아오고 2019수능 또다시 국어 비문학에서 수학에서 가루가 되도, 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저만 겪은 상황이 아닙니다. 그때 모든 수험생이 겪은 상황입니다. 물론 지금 어떤 디테일한 고난을 여러분이 겪고 계신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해결법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힘든지 따위의 생각에 잠기지 마시고 “마무리 공부 하세요.” 오히려 남들 집중력 떨어진 지금이 뒷심을 발휘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2. 변수
1번은 모두가 겪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럼 ‘변수’라는 것도 있습니다. ‘나만’ 겪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들. 도시락을 깜빡할 수도, 핸드폰을 안 낼 수도, 아침에 예상보다 늦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넌 그런 적 있냐고 여쭤보신다면, 예. 있습니다.
2018수능 당시 버스가 막힐 걸 생각을 못하고 수능 시험장으로 향한 저는 제 기억에 입실 종료 1분도 채 안 남기고 도착했습니다. 버스가 한 정거장을 가는데 15분이 넘더군요. 도착하기도 전에 경찰서에 내려서 물어봤지만 경찰 오토바이도 없었습니다. 패닉 상태가 돼서 숨도 쉬기 힘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버스를 타서 뛰어 들어가긴 했지만 제가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렀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국어 시험을 보는 내내 심장이 뛰었고, 거기서 말려버린 저는 수학, 영어까지 깔끔하게 망쳐버렸습니다.
어차피 늦은 거 같으면 포기하라는 게 교훈이 아닙니다. 이 ‘변수’를 피하세요. 시험장에 입실시간보다 최소한 30분을 일찍 가서 그 시험장의 공기에 익숙해지세요. 항상 가방에 필요한 게 다 들어있는지 오늘부터라도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공부할 때 주변에 핸드폰이 있나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습관은 루틴이 되고, 루틴은 사이클이 되어 실수를 줄이게 합니다. 지금이라도 수능 시험장에서 할 법한 행동을 습관화하세요.
3. 복합적인 요소
남은 일주일 열심히 공부하셨다고요? 좋습니다. 루틴도 다 익숙하다고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수능 무조건 성공할 거냐고요? 저야 모르죠.
지금 제가 위에 적어놓은 내용들은 ‘노력’입니다. 모든 성공의 뒤에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다수의 실패 뒤에도 노력은 분명 존재합니다. 노력이 모든 걸 좌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 2018수능 때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럼 그 해 상위 15퍼센트로 수능을 마무리한 건 오로지 시험장에 늦었기 때문일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연애와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몇몇 학생은 연애와 병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재수학원 내에서 연애였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걸 보면 저에겐 플러스 요인은 아닌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변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8월 달 쯤에 그만 만나기로 한 걸 보면 변수보다는 그냥 결과에 영향을 미친 ‘요소’가 맞는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 결과에는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든, 할 수 없는 것이든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수능을 잘 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확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잘 볼 거라 확신하지 말고 텐션을 유지하세요. 시험 중간에 망했나 생각이 들더라도 텐션을 유지하세요.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끝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4. 깔끔한 마무리
일주일 뒤 수능 시험이 끝나고 잘 본 사람들은 뭐, 잘 지낼 거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수능 후에 제가 그랬듯이. 다만 이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수능 성적이 좋은 것과 입시 결과가 좋은 것은 천차만별이라는 겁니다. 수능을 잘 봤다면 입시까지 집중 잃지 마시고 성적보다 더 좋은 학교 꼭, 입학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못 본 사람들은 그냥 집에서 인생 포기하고 잠이나 자야 되나요? 이딴 식으로 얘기할거면 이렇게 길게 쓰지도 않았습니다. 수능 성적 나오기 전까지 확신은 금물입니다. 성적이 더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 지인은 국어 가채점 결과가 4등급이었는데 실제 성적은 2등급 후반이 나와서 논술로 성균관대 입학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만큼 혹은 보다 안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수시가 망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정시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수능을 다시 볼 생각을 하더라도 입시는 끝까지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다시 볼 건데 왜 해야 하냐고요? 경험 때문입니다. 재수해서 시험 잘 보면 그때도 입시 신경도 안 쓰고 성적보다 낮은 학교 입학하는 게 천만원에 육박하는 돈 쓰고 원하는 결과는 아닐 거잖습니까? 입시 경험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5. 실패와 그 가치
이제 입시까지 말했으니까 다 말했다 싶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올해 수능을 실패했다고 해서 여러분의 노력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1년이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실패의 경험은 훗날 성공의 밑거름으로 가장 적합한 재료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삼수 결과만 보고 천재, 수재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개소리하지 마세요.” 제가 천재라서 삼수를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현역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실패한 저는 재수 때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재수 때 연애하고 시험장에 늦어서 실패한 저는 삼수 때 연애도 안하고 시험장도 1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삼수 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연애도 안하고 시험장도 1시간 일찍 도착한 저는, 현역 때의 상위 44퍼센트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인 상위 0.4퍼센트를 달성했습니다. 저의 삼수는 현역과 재수의 실패가 만든 결과입니다.
성공은 특별한 것이고 실패는 평범한 것입니다. 당신이 실패했다면 그건 다음 도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다음에 어떤 도전을 하더라도, 수험생 경험은 분명 큰 양분이 되어 작용할 것입니다.
6. 끝.
짧게 쓰려고 한 글인데 이렇게 길어져서 가독성이 떨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부디 이 글이 일주일 뒤 여러분이 결실을 맺는 데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수능 날은 추웠습니다. 12월의 수능은 얼마나 추울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꼭 따뜻하게 입으시고, 방역 수칙 잘 지키면서 안전하게, 사고 없이, 본 실력을 다 보여주고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 저의 미래 후배님이 있기를, 저보다 좋은 학교 가신 분이 있기를, 과거에 삼수생이었던 대학생이자 군인이 간절히 기도하며, 글 마무리 짓겠습니다.
자. 여기까지 보셨으면, 당장 끄고 공부하러 가세요.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의 웃음을 기원하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학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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