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da [902557]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11-25 11: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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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옯문학] 2020년, 어느 수험장에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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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청년의 옆자리에 앉은 사반수생은 눈길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는지 몰랐다. 

자칫하다가는 그자와 눈길이 부딪칠 것이다.

부딪치면 귀찮아진다. 

수학 행동강령을 적어놓은 노트를 보다가 눈길이 그쪽으로 가다가도 깜짝깜짝 겁에 질려서 되돌아오곤 하였다.

이러다가 드디어 어느 서슬에 눈길이 따악 부딪혔다. 

나이든 주제에 나잇값을 해야지, 급하게 외면을 하기도 민망스러워서 멀뚱히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자 청년이 또 왈칵 물었다.


"왜 수능을 또 봐요?" 

"저 말입니까?" 


얼굴이 꽤나 삭은 사반수생도 옆 자리의 현역 청년을 건너다보며 퀭하게 되물었다.


"그렇소, 왜 또 보느냔 말요?" 


청년도 옆을 보며 또 되물었다.


"녜에, 그저 어쩌다 보니 또 보게 되었군요."


사반수생도 비죽이 비굴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렸다.


"웃기는, 누가 웃으랬소?

"......"


사반수생은 또 허줄그레 웃었다.


"넉살이 엔간 아니군. 도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보다시피 사반수하는 사람이오."


사반수생은 오랜 수험 경험으로 삼반수 이하의 경력인 사람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털털하게 대하고 

되도록 늙은이 행세를 하는 편이 관대한 대접을 받는 것을 알고 이렇게 일부러 넉살로 대답했다. 


"사반수하는거야 얼굴 상판만 봐도 알겠고,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오?"

"그냥 휴학하고 지냅니다."


사반수생은 또 일부러 정승제 말투를 내며 능청 섞어 대답했다. 

뒷문 쪽에서 현역 소년들이 킬킬 거리고 감독관인 배씨,현씨도 가만가만 쓰겁게 웃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이래 가지구야. 아무리 공교육이 좋다지만, 그 꼴이 뭐요, 교과서나 펴고 앉아서, 좀 드릴 위주로 봐요, 드릴 위주로. 뉴런, 킬링캠프 오답노트도. 오반수하러 강대에 들어가더래두 3합4는 가져가야지."


옳은 소리일 것이었다. 

사반수생은 이르는 대로 화닥닥 교무실에 가서 공용 컴퓨터에 다운 되어있는 드릴 pdf로 프린트를 뽑은 뒤 

화닥닥 가슴을 뒤로 젖히고 앉았다.


"옳지."


말 잘 듣는다 하듯이 청년은 한결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다.

사반수생은 대학생 체통에 조금 안됐다는 생각을 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자격지심에 맹렬히 반발을 하였다.

요즈음 세월에 재삼사수 구별이 있나. 광탈하면 별수없이 하는거지.

결국 저런 청년은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둘밖에 없었다. 수능포기각서를 쓰는 것을 마친 학생 하나가 나갔다.

목이 구부정하고 코가 큰데다,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던사람이였는데, 

감독관에게 서류를 건네고는 납득이 안된다는 듯 표정을 짓고 후덕후덕 도망을 하듯이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현역 소년이 웬 장클래스 연필통을 들고 나갔다. 

교실 문 앞에서 건네어 주자 코가 큰 그 학생은 쓰디쓰게 웃으면서 

길 건너편으로 


"이 바보."


라고 속삭이고 뛰어 건너갔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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