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71에서 중앙대까지의 기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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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았던 6평이 끝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부모님은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불같이 화를 냈고, 작년 11월부터 6월까지의 잃어버린 7개월과, 필자에 대한 투자, 그동안 다녔던 학원에 대한 문제점, 공부 환경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학원을 바꿨고, 풀던 문제집도 바꿨고, 심지어 필자의 방의 책상 위치까지 바꿨다. 그래도 6월 모의고사 말아먹은 고3치고는 많은 것이 바뀌진 않았다. 그 이유는 필자의 집안 사정 때문이었는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페미니즘을 수용한 우리 집은 엄마의 힘이 최강이었고, 정작 그 어머니가 악명 높은 그 대치동 아줌마치고는 교육열에 그리 열을 들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회사원이었다). 즉 자율주의적인 부분이 굉장히 강했지만 선을 넘으면 그야말로 지옥을 보여주는 뒤끝 없는 엄마였다. 엄마는 고3 들어갈 때부터 선을 제대로 그었는데, 고3 망하면 그냥 대학 바로가라, 대학 졸업하면 독립해라. 딱 두 가지였다. 그래서인지 그 때 엄마한테 많이 혼나진 않았다.
6월이 끝나면 학교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몇몇 선생님들이 서서히 스카이급, 서성한급, 중/경외시급(중경외시가 아니라 중/경외시다), 인서울급, 지방급, 재수급, 포기급으로 학생들을 구별하기 시작하고, 몇몇 학생들도 급을 나누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은 필자에게 위로와, 지금부터 해도 충분하다는 말들을 하곤 했지만 속마음은 아마 아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필자는 정줄을 놓았다.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다가도 다양한 감정들이 피어나곤 했다. 뭘 해도 난 안된다는 자괴감도 들었고, 꾸준히 성적 잘 받던 친구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도 생겼고. 시험 하나가지고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억울함과 공부에 대한 증오, 그 모든 건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생긴 죄책감. 참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머릿속이 소용돌이쳤다. 친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위로했고, 몇몇 친구들은 자조적으로 본인의 처참한 성적을 들이대며 친구들에게 웃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개그를 시전하기도 했다.
밑바닥으로 떨어졌으면 올라오려고 발버둥이라도 쳤어야했는데 한 번 제대로 엇나간 고3 생활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7월부터 친구들과 주중에 한번은 술을 마셨고(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PC방에 가는 날이 더 많아졌고, 책을 산다고 하고 만화책을 사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치동 밑바닥 중에도 밑바닥 인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6월이 지나가고 7월이 되었다. 아마 수험생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3 여름방학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8월이 되었다. 딱히 한 게 없으니 7월 부분은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8월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던 건 어느새 9월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게 6월 때와 다른 부분은 없었다. 다만 학생들이 좀 더 초조해하고 있었다는 건 분명히 느껴졌다. 5달이 남은 것과 2달이 남은 건 차이가 매우 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학생들을 괴롭힌다. 선생님들도 두 번 말해 입 아플 정도로 수업시간에 2번씩은 9평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고, 부모님과 학원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물론 6월 때 제대로 쓴 맛을 봤고, 그렇다고 9월 대비를 제대로 한 것도 전혀 아니었으므로 6월 때보다는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만약 필자가 수험생활 시절의 필자에게 딱 한번 화를 낼 수 있다면 아마 이 때를 고를 것이다. 공부도 더럽게 못한 주제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못했으니까 망쳤던 시험 한 번에 멘탈이 박살나 1년을 그냥 포기해버린 셈이다. 어쨌든 그 때의 필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시간만 날리고 있었고, 어느새 시간은 필자를 내버려둔채 8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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