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 1%에서 의대 합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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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오히려 꿈만은 더욱 커야한다. 꿈만 꾸는 건 망상이다. 힘들어도 실천에 옮기자. 당장 집과, 옷을 바꿀 수 없어도 공부 성적만은 바꿀 수 있다.가난하단 이유로 애초에 안 될 것이란 것은 결국 하기 싫어서 포기하는 핑계다.-
제가 공부하면서 항상 마음에 두었던 생각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항상 마음에 두었던 생각입니다.
저는 ebs가 없었다면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사람입니다. 정말 ebs에 감사하고 살아가던 중에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감사인사 드리고자 합니다.
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100일 후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본 적도 없고, 할머니께서 사진을 다 태우신 바람에 어머니 얼굴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가 저를 맡았지만 갓난아기를 당연히 돌 볼 수 없어서 고모 댁에 맡기셨습니다.아버지가 고모에게 양육비를 따로 주시고 저는 고모 집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9살쯤에 아버지는 힘들게 삶을 전전하시다가 어떠한 일로 교도소를 가시게 되었고, 전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엔 친척들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교도소를 가셨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된 내용입니다.
양육비를 더 이상 받지 못하던 고모는 더 이상 저를 키우기 힘들어 하셨고, 친척들끼리 저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시다가 결국 할머니께서 키워주시게 됐습니다. 당시 80세가 다 되신 저희 할머니가 저를 10살부터 키워주셨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당장 할머니와 제가 생활하기에 힘들었습니다.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못 떼고, 밤에도 전기 아끼시느라고 촛불을 키고 지내시고, 물도 한번 담아두고 며칠 씩 썼었습니다. 쓰레기 버릴 때도 폐휴지는 팔아서 몇 백원이라도 벌기 위해서 따로 빼놔서 차곡차곡 모아놨던 그 기분을 경험해보진 못 한 사람들은 차마 이해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학업에는 당연히 열중할 수 없었고, 낮에 학교 다니고 밤에 고기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고등학교 학비와 급식비를 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제 나이 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당장 공부를 해서 미래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책살 돈도 없어서 공부 못 해본 심정을 아냐고요. 또 한 겨울에 가스가 끊겨서 보일러도 못 키고, 촛불에 손을 대고 있는 심정을 아냐고요. 당장 내가 일을 안 하면 밥도 못 먹고, 저만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는 연세가 80세가 되신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혼자 계십니다. 저는 아무도 안 받아준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앞으론 제가 할머니를 지켜야 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었기에 저는 학교 선생님에게 상담을 했고, 이러한 사정을 아시고는 구청 쪽에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사무소에 가서 상담을 하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동사무소에서 쌀도 가끔 주시고, 생활비도 지원해줬기에 그 전 보단 훨씬 살기 좋게 됐고, 저도 고3에는 공부에 열중은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교를 가려는 2009년도에는 지금 활성화 돼있는 국가장학금이라던가 그런 것이 없었고, 저 또한 대출금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집에 돈이 없으면 대학을 못 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대학에 합격은 했었지만, 등록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거의 2년 동안 편의점 알바, pc방 알바도 하고, 주로 공사장 인부 일을 했습니다. 2011년에 저는 공사장 일을 하다가 넘어져서 왼쪽 턱이 부러졌습니다. 수술을 해야 해서 아주대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병실에 누워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수술비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생각이 든 게 이대로 살다가는 저는 평생 이렇게 다치면서 일하다가 인생을 마감할 것 같았습니다. 참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퇴원을 하면 당장 공부를 해서 대학교를 가자고 맘먹었습니다. 당장 이러한 생활을 탈출해서 인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돈 문제로 하루빨리 퇴원을 하고 싶었으나 다행히 아주대 병원에서 저소득층은 100만원까지 병원비가 지원이 된다고 해서, 수술하고 며칠 회복시간도 가졌습니다. 4일후 병원비 한 푼도 들지 않고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고, 병원에서 가진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당장 공부를 무엇으로 해야 할 지 너무 막막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는 열심히 했었지만 많이 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근데 들려오는 소식에 ebs만 열심히 공부하면 학원이나 비싼 인터넷 강의를 안 들어도 성적을 많이 올려서 대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막 ebs 반영 70%, 만점자 1% 유지로 사교육을 약화시키려는 운동이 일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에겐 천운이라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ebs 를 끝내면 희망이 있다.’ 란 말이 없었으면 전 결코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렴한 ebs 교재 값과 인강이 무료였기 때문에 저에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고 약간의 희망이라는 것이 생겼었습니다.
당연히 1년으로는 대학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2년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목표는 의과대학에 가서 정형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희 집은 겨울엔 매우 춥고 여름엔 너무 더워서 거의 집에 있지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기 힘든 대부분을 할머니가 다니시던 노인정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저는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팔이 아픈데 병원이 주변에 없어서 병원을 가시려면 30분을 버스를 타고 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연세가 80세 되시는 혼자 사시는 분들이 버스를 탄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듭니다.
어느 날은 어떤 할머님이 집에서 넘어지셔서 어깨가 부러졌는데 도저히 병원을 못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일어나기도 힘드셔서 노인정에 전화가 왔는데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가서 택시 타고 할머니 모시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왜 119에 전화를 안 했냐고 여쭸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이 하시던 말씀이 전에 응급차 타고 응급실을 간적이 있었는데 돈이 몇 십 만원이 들어서 그거 갚느라 밥을 몇 달 동안 노인연금을 모아서 겨우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급박하게 아프신데도 응급차를 못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제가 이 의료사각지대에 정형외과를 꼭 지어서 이러한 어르신 분들에게 도움이 꼭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주변만 해도 이러한 분들이 많은데 전국적으로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 이후 의대를 향해 마음먹고 계획을 철저히 세웠습니다.
일단 수능이 1년 남았을 때 3달 정도는 돈을 가장 많이 벌수 있는 공사장일을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할머니께 생활비도 드리고 앞으로 남은 수험기간에 공부하려면 적어도 100만원을 필요했기 때문에 힘든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인력사무소에 가서 작업화를 신고 일터로 떠나곤 했습니다. 전날 배운 ebs 수능특강 적분 문제를 떠올리고, 틀렸던 확률문제, 예전에 수험사이트에서 나눔으로 공짜로 받은 5년도 더 된 단어장으로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봤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침부터 일을 하고 무거운 것 낑낑대고 옮기고, 나보다 나이 어린 인부감독 알바생 들에게 무시당하다 보면 하늘만 바라보게 됩니다. 해가 져야지만 제가 일을 끝나고 집에 갈수 있기에 해가 뜬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하늘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차라리 공부를 죽도록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번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보통 5시에 끝납니다. 그 이후부터 너무 피곤하지만 11시까지 꾸준히 공부했고, 저의 약점은 수학이었기 때문에 수학을 중점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이후로 4월 봄부터는 형편상 도저히 공부에만 열중할 수는 없었고, 일하면서 공부했습니다. 피곤이 너무 심한 인부일은 하지 못하고, 돈 좀 적게 벌더라도 체력이 많이 소모되지 않는 도서관 일을 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반납된 책을 책장에 꽂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어듣기였습니다. 다행히 수능에는 영어듣기도 많이 나오고, 거의 ebs에만 반영되기에 저만 열심히 한다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매일 3시간이상을 영어듣기 들었습니다. 듣기 싫어도 그 시간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해야만 했습니다. 수능 전 주에는 거의 문제 보기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영어듣기 책2권을 50번씩은 듣고 시험장에 간 것 같습니다.(결과는 영어듣기 22문제 다 맞았습니다. 문제만 봐도 내용이 다 기억나더군요.)
도서관 책을 다 꽂으면 앉아서 대출만 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전 그때 수학 기출 문제를 많이 풀었습니다. 국어나 영어는 내용이해이기 때문에 흐름이 중요해 도중에 누가 말을 걸으면 흐름이 잘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수학이 약점이었기에 더해야할 필요성도 있었습니다. 수학 기출 문제집 2500문제사고 그 시간만큼은 수학만 풀기로 다짐했습니다. 수능 전 까지 3번씩 풀게 됐습니다. 일이 끝나면 6시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안 됐던 수학 문제는 빨리 ebs 인강을 봐서 해결했습니다. 일이 끝난 후 한 시간 까지 얼른 헷갈렸던 수학문제를 다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밥 먹으러 갈 때는 무조건 수능특강 영어단어와, 과학탐구 수능특강을 들고 가서 개념을 보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니 모든 짜투리 시간을 쓰게 되고 밥 먹을 때도 무엇인가 안보면 불안할 정도로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영어와 국어를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국어와 영어는 좋아했고, 국어와 영어는 ebs에서 문제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ebs를 공부할 때는 항상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만의 약속은 밤 1시전까지는 절대 집에 안 가는 거였습니다. 공부가 되든 안 되든, 힘들든 피곤하든 절대 1시 전에는 집에 가지 않았고, 수능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거의 180일 동안 저와의 약속을 지킨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수능 10일전이 되니 정말 불안했습니다. 남들은 지금 공부에 엄청나게 열중할 때인데 저는 오전에 법전을 꽂고 오후에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며 굉장히 불안했고, 공부를 더해야한다는 강박증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차마 일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수능 날 까지 묵묵히 평소대로 공부했습니다.
과학탐구는 ebs도 공부하고 다른 문제집도 몇 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국영수는 전부 ebs와 평가원 문제집밖에 안 풀었고, 다른 것을 풀 여유도 안 됐습니다. 모의고사도 9월 평가원 모의고사 한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연계교재를 최소한 3번씩은 다 봤습니다. 특히 수학은 추가로 기출문제 4000문제를 3번씩은 풀었습니다. 풀 책이 그것밖에 없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 ebs만 믿으면 수능에서 최소한 배신을 안 할 것이란 믿음 하나로 ebs 만 믿었습니다.
결과는 ebs 는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국어 98점, 수학85점, 영어 94점, 과학탐구50점이 나왔습니다. 남들에겐 낮은 점수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정말 분에 넘치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특히 수학을 제일 못 봤지만 저에겐 2등급이라도 나와 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작년에 공부 처음 시작 할 때 모의고사에서 50~60점밖에 안 나왔었는데 수능에선 정말 잘 본 거였습니다. 전부 ebs 덕분입니다.
채점한 순간 제가 힘들게 공부했던 일들이 하나처럼 지나가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리고 성적표가 발표되고 이틀 후 제가 수시 지원한 서남대학교 의대에 합격했습니다.
비교적 낮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제가 합격한 이유는 면접 때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와 제가 공부했던 환경을 교수님들이 잘 이해해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순천향대학교 의대는 아쉽게 예비 1번에서 마감 됐지만 저는 아쉽지 않습니다.
한 곳만 저를 받아주면 됐고 전 그곳에서 꿈을 이루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할머니가 올해로 90세이신데, 연세가 많으셔서 하루 빨리 의사가 되어서 제가 할머니도 치료해드리고 동네에서 도움을 받은 만큼 다시 보답해드리는 것이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저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신 할머니께 꼭 보답해드리고 싶습니다.수능이 ebs만으로 준비가 안 됐다면 저는 도전을 차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활조차 힘든 환경에서 너무나 막막하고 무엇부터 준비해야할지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 ebs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고, 저 같은 저소득층에겐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저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학생들 제 글을 보고 희망을 갖길 바랍니다.형편상 대학가기가 정말 힘들어도 지금은 ebs 라는 가이드라인이 있고, 홈페이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10년 전 20년 전만해도 꿈도 못 꿨을 세상입니다.
힘겹게 생활해온 몇 년 동안의 이야기를 단 몇 장에 요약하다보니 참 슬퍼지고 말 못하는 점이 많은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스스로도 뿌듯합니다.부모님 없는 삶속에서 저는 나름 최선을 다했고 목표를 이뤘기에 위안이 됩니다.
요약해서 말하느라 생략된 것도 있고, 말하기 힘든 사생활적인 이야기는 배제했습니다만 이 내용에서 제가 말한 사실에서 한 치의 거짓은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열심히만 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이고 ebs, 구청사이트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공부를 많이 도와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인터넷 같이 공적인 곳에 말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여러 번 생각하고 할까 말까하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다 결심해서 쓴 글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어려운 학생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꼭 실천에 옮기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그리고 ebs.. 제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또한 저는 부모님 없이 자랐고, 오로지 국가에서 도와주는 지원금 덕분에지금까지 살았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결국 국가에서 저를 의대 합격하도록 도와준 것입니다.그러므로 저도 사회에 나가서 저같은 학생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것이고,무엇보다 국가에서 저처럼 힘들게 사셨던 의료혜택 사각지대 분들을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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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싸졌나
참 좋은 글이라 공유합니다
지렸다...
서남대 사라짐 ㅜㅜ
그래서 전북대 의대 졸업하고 의사되심 ㅋㅋ 건너건너 아는 분이라..
근데 서남대 폐교됨 ㅋㅋ
그래서 전북대 의대 나와서 의사되셨음 ㅋㅋ 의대 내에서 CC도 하시고 엄청 잘 지내셨다고
해피엔딩이내요 ㄷㄷ
노력도 노력이지만 서남코인 잘타서 운 좋았던것도 멋있네요
와.. 정말 치열하게 사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첫 문장 '김현근' 님의 책 제목...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말
헐 박진영님 세바시 강연보고 진짜 감동적이었는데ㅠㅠ 공부하다가 지치거나 나태해질 때마다 영상보고 힘을 얻습니다. 좋은 수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우 대학 들어가서도 복이 터졌었네요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다
넘 감동받았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참된 의사 한분은 추가 되었다 생각이 들고
노력하는 모든 분들이 다 꼭 꿈을 이루시길 같이 응원합니다.
"실제 의사가 그린 의사 현실"이란 글을 보고 옵니다 - "내과박원장"이란 웹툰
의사의 자살률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더군다나 소득하위시면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대나 공무원 준비를 추천드립니다!
진짜 생명을 살리는
인류애를 실천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국경없는 의사회나
슈바이처박사님이나
이태석신부님처럼
아프리카나 중동,남미로 가서
한평생 의료봉사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니나 하셈
알아서 할게요
교ㅋㅋㅋ대ㅋㅋㅋ나ㅋㅋ공ㅋㅋ무ㅋㅋ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