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르비부끄 [907243] · MS 2019 · 쪽지

2020-07-05 02: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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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해좀 시켜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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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인데도 더웠다. 텁텁한 공기를 가르며 걸으면 습기가 팔에 달라붙었다. 새벽이라 길에 사람이 없어서 아주 작은 진동으로도 귓가가 울렸다. "나 어제 아는 후배한테서 고백 받았어." "..." "근데 나는 아직 네가 좋아." "..." "나 그래서 이제 확실히 하고 싶어. 이번에도 똑같이 대답해도 괜찮아. 하지만 오늘 이후로 다시는 너한테 고백 안 할거고 너 좋아하는 마음도 접을 거야. 이번에 하는 고백이 진짜 마지막이야. 너 정말 나랑 사귈 생각 없어?" "응." 


정말, 정말 야속하게도 대답은 칼같이 돌아왔다. 나는 그의 이런 점을 좋아했다. 꿋꿋함과 담담함. 나의 감정은 늘 해일처럼 출렁거렸지만 그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처음 내가 사귀자고, 차였을 때의 뻘쭘함을 대비해 조금의 장난기를 섞었지만 나름대로 진심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말했을 때, 그는 잠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심드렁하게 '뭐라는거야' 이랬다. 시덥잖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항상 뿌리고 나오는 향수의 청량함, 내가 추워하면 벗어주던 외투에서의 체향, 씻고 나온 직후의 포슬포슬한 머리카락, 예쁜 손으로 내가 잘못 차서 풀지 못하던 손목시계를 풀어줄 때의 다정함이나, 술자리에서 가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일 때의 목소리와 숨흐름이, 웃을 때 살짝 고개를 숙여도 보이는 예쁜 미소가 모두 좋아서 너에게 정말 쉴틈없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너는 그때마다 담담하게 내 칭찬을 듣기만 했다. 추호도 여지를 주는 법은 없었다. 


항상 '사귀자'고 고백하면 대답은 '싫어'였다. 인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친구로서의 누나를 너에게서 빼앗는 느낌이었다. 너는 친구인 나를 잃기 싫어했고 나는 너를 독점하고 싶어했다. 진정 좋아한다면 너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고백받은 적은 없었다. 아직 네가 좋다는 말은 진짜였다. "미안해, 누나." "그래, 알았어." 목에도 습기가 들어찼다. 물은 눈에서 흘렀다.


마지막에 너는 누구야 뭔소리야 나만이해못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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