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준 [889986] · MS 2019 · 쪽지

2020-05-28 22: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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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식 고려대 출교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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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2006년의 출교 사태에 대해 이상한 기사를 내놨길래,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글을 씀. 기사만 보면 아무 짓도 하지 않은 학생을 억울하게 출교시킨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들의 '감금행위' 자체는 사실이 맞다.

 

*링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9478.html 

 

 

 

 

2006년의 고려대 출교사태는 표면적으로는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의 학생들에게 ‘고려대학교’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주어야 하냐는 논쟁에서 시작하게 됐다. 보건과학대학은 현재는 의과대와 같이 고려대학교 의료원 소속의 4년제의 보건과학대학으로 고려대학교에 소속되어 있지만, 2006년 이전에는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이란 이름으로 4년제 종합대학인 고려대학교와는 다른 3년제 전문대학교로 존재하고 있었다. 2005년에 병설 보건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통합이 승인되고, 2006년부터 새로이 4년제 보건과학대학으로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기존의 ‘병설 보건대’로 입학한 학생들은 ‘고려대학교’로 입학을 한 것이 아니라 고려대학교 학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는 점. 속된말로 그냥 붕 떠버리게 됐다.

 

이에 대해 학내 운동권단체들은 ‘병설 보건대 학생도 고려대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총학선거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학교 본부 측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을 했다. 학생들 내에서도 꽤나 이견이 갈렸었고,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고 학생들이 뭉치기도 했다.(훗날 이 그룹이 고대공감대 총학생회로 이어진다) 당시 운동권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에서 주장했던 것이기에 일부에서는 ‘그 사람들에게 표를 주고, 자신들 표로 끌어오려는 계산 아니냐’는 식의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고.

 

어찌됐건 총학 선거는 시작됐고, 투표 이틀째인 2006년 4월 5일에 선관위원을 비롯한 일부 선본원들은 본관에서 열리던 교무위원회에 투표권 인정을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하러 갔다. 교무위원들이 해당 문서에 동의하건 말건 일단 수령이라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건데, 학생처장을 비롯한 교무위원들은 문서의 수령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에 분개한 학생들은 교수들을 다음날까지 약 15시간 정도 본관에 감금하는 충격적인 일을 벌인다.

 

당시의 행위가 감금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이 갈리지만, 재판부는 본관 2, 3층 계단 사이에서 교수들의 이동과 출입을 15시간 정도 막은 행위를 감금이라고 판단했다. 개인적으로도 그걸 감금이 아니라고 하기엔 힘들 듯 하고. 그리고 그 날 이후에 학교는 발칵 뒤집혀서, 결국 4월 17일에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징계위원회에서 가담자 19명 중 7명에게 ‘출교’라는 전대미문의 징계가 내려지게 된다.

 

 

 

 

 

보통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퇴학’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고려대학교 학칙에서는 ‘퇴학’과 ‘출교’가 분명하게 구분된다. 고려대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를 하는 경우, 학적은 그대로 남아서 학생들이 재입학 제도를 이용해서 다시 입학할 수가 있다. 재입학 제도는 대입전형과는 별개로 운영되고,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함. 그러나 출교처분의 경우 학적 자체가 말소되어 재입학제도의 혜택을 볼 수가 없고, 일반적인 대입전형을 통해서 입학을 해야 다시 고려대 학생이 될 수 있기에 사실상 최고수위의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출교통보를 받은 학생들은 법원에 무효소송을 냈고, 그 과정에서 ‘교수 감금’은 인정되지만 징계의 수위가 너무 과하고 절차상 하자가 명백하여 출교처분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또한 재판과정이 길어지면 최종적으로 무효판결이 나더라도 출교처분과 다를 바가 없는 징계상황이라 할 수 있기에, 최종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출교처분 자체를 무효로 한다고도 했다.

 

 

학교본부는 항소와 동시에 이번엔 징계 수위를 낮춰서 ‘퇴학’ 처분을 내렸고, 그 역시 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자 다음에는 ‘무기정학’이라는 징계를 내렸다가 또 다시 무효처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출교처분을 받은 학생들은 당연히 졸업을 했고, 졸업을 통해 재학생 신분이 아님에도 ‘무기정학’이란 징계를 내린 학교본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최근에 이에 대해서 대법원이 ‘배상책임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해당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판결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학교 측의 지극히 감정적으로 보이는 징계 절차만이 아니다. 실제로 해당 학생들이 출교라는 징계를 받기엔 과하지만, 충분히 징계 받을 만한 일을 했기에 학교 측의 징계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당시의 출교처분이 단지 ‘교수 감금’만이 고려된 것이 아니라, 바로 직전에 있었던 소위 ‘이건희 계란 투척 사건’에 대한 보복적인 성격이 있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

 

 

교수감금 사건이 있기 1년 전, 고려대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이런저런 행사들을 무던히도 기획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삼성그룹에서 고려대에 거액의 기부를 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명예 박사학위’가 철학박사였다. 당시의 얘기로는 이건희 회장이 유일하게 갖지 못하고 있던 명예 박사학위가 철학 박사학위였고, 본부에서는 그에 맞춰 철학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 아직까지 운동권 세력이 강성하던 고려대 학생들은 엄청나게 반대를 했고, 학위 수여의 당사자인 철학과 교수들의 집단적인 반발까지도 일어났었다. 물론 본부에서는 그걸 다 뭉개버리고 수여식을 진행함과 동시에 운동권 학생들과도 소위 ‘딜’을 봤다. 피켓 정도는 허용하되, 구호라던가 안전선 내부로 들어오지는 말라는 최소한의 합의.

 

 

그렇게 수여식의 날은 밝았고, 이건희 회장은 “계란 맞을 각오로 왔다”는 말과 함께 고려대에 도착하게 됐다. 식장에는 피켓을 든 운동권 학생들도 있었고, 합의한 대로 식이 잘 치러지나 했었는데 당시 경영대 학생회장이 합의를 깨고 돌출행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꽤 소동이 일어났고, 당시의 소동은 이건희 회장의 ‘계란’ 발언과 맞물려 ‘수여식장에서 운동권 학생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계란을 던졌다’는 식으로 와전되었다. 게다가 그 ‘고액의 기부금’이란 것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터라, 원래는 공과대학의 숙원인 ‘공학타워’의 건설을 약속했다가 지금의 백주년기념관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식의 얘기도 곁들여져서 ‘운동권이 계란 하나로 공학타워를 날려먹었다’는 이공계 지역의 뿌리 깊은 반권 정서에 기여하기도 했다. 공과대학 교수에게 들은 ‘오프 더 레코드’란 식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는걸 보면, 의외로 진실에 근접한 얘기일지도. 삼성그룹도, 고려대학교 본부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아니 인정할 수 없을 얘기지만.

 

 

그런데 그로부터 1년 뒤에 또다시 운동권 학생들이 ‘교수 감금’ 사태를 일으켰고, 본부에서는 19명의 징계대상자 중에서 감금행위에 직접적인 연관이 적으나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 연관이 깊은 이들에게 ‘출교’ 처분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감금행위의 가담 정도라던가 책임 여부는 명확히 시비를 가리기가 힘든 부분이라 단정 짓긴 힘들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드는 정도라고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달까. 어찌됐건 당시의 출교 사건은 이렇게 진행됐었고, 현재는 손해배상 건만 제외하면 마무리가 됐다. 재밌는 것은, 당시에 출교를 당했던 사람 중 하나가 소위 ‘고대녀’라 불리는 김지윤씨이다. 출교를 통해 '고대녀'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니 참 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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