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ㅤ [629858] · MS 2017 · 쪽지

2020-05-19 13: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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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30 넘은 꼰대아재가 생각하는 의대떡밥 관련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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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마셨습니다... 반대를 먹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글이 별로일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글썼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의대관련 얘기를 보고 나서, 뭔가 글을 쓰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내가 꼰대임을 먼저 밝히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어줍잖게 아는 사람에 불과하니까. 사람들은 꼰대 말은 알아서 좀 걸러서 듣겠지?

의대 떡밥 관련해서, 그리고 밤부에 자주 올라오는 A회사와 B회사 둘 중 어디가 더 좋을까요? 라는 질문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의 행복을 남의 기준에 맞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가 되었건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이재용이라고 한들 손흥민의 축구 실력을 가질 수도 없으며, 류현진의 야구 실력을 가질 수도 없다. 내가 이재용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손흥민의 축구 실력을, 류현진의 야구 실력을 시샘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자원들은 거의 다 한정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한정적인 자원은 시간이다. 이재용만큼 돈이 많다고 하루가 48시간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하루는 짧지만,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남은 인생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이도 고작 서른이 된, 밤부에서나 아재소리 할 수 있지 밖에 나가면 아직 꼬꼬마 취급받는 나도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대학교 입학하면서 과도하게 살이 찌는 바람에,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15kg정도 더 나갔다. 하지만 그 육중한 몸덩어리로도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다. 지금은? 아 그냥 돈 더 쓸래, 편한 곳에서 자고싶다.

흔히 여행의 3요소를 돈, 시간, 건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은 이 3가지가 다 갖춰지지 않도록 만든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돈이 없고, 취직하고 나니까 시간이 없고, 은퇴하고 나니까 건강이 없다고.

나는 그래도 군대는 갔다왔지만, 고등학교도 조기졸업을 했고 대학교도 4년만에 칼졸업을 했기에(우리때는 부복심전 필수같은 쓰레기 제도가 없었기에 4년 졸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다닌 직장들은 휴가를 쓰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터치하지 않았기에 다행히도 이 3가지를 다 갖춘 상태에서 여행도 해보았다. (물론 그래봤자 직장인 휴가에 불과하니까, 금은수저인 후배들이 교환학생가서 6개월간 여행 많이 다니고 하는 거 보면 부럽기는 하더라만)

아 의대얘기 하다가 갑자기 웬 여행 얘기를 하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뭐 다시 의대 얘기로 돌아가자면, 내가 가장 친한 친구가 딱 4명 있는데 그 중 2명이 의사다. 나머지 1명은 정출연을 다니고 나머지 1명은 사무관이다. 뭐 이 친구들을 보면서 각자 다 포기한 게 있더라고.

의사친구들은 겨우 이 나이 되어서야 돈 벌기 시작했다. 뭐 의전출신이라서 좀 늦은 것도 있지만.. 한 명은 석사까지 따고 도망나와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군대를 해결하고 가서 좀 늦었다. 그러니까 한 명은 이 시국에 공보의를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이제서야 인턴과정이다.

뭐 좀 뿌듯한 것은 내가 지난 몇 년간 맛있는 거 많이 먹여놨더니만, 이제 지들도 돈 좀 번다고 맛있는거 사준다고 하더라.

물론 의대가 방학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 학교보다 훨씬 짧은 편이고, 아무리 의대생이 마통이 뚫린다한들 뭐 직장인만큼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을거다. 그리고 의대 졸업하면 또 인턴레지펠로우라는 길이 남아있다고 하고(그래도 레지 3년차 정도부터는 좀 편해진다고 하더라).

만약에 인생이 90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기간은 아주 짧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인생이 35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의사 되려는 목적이 뭔지를 생각해보자. 물론 뭐 나는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의사가 되겠다 뭐 이런 경우도 있겠지만, 밤부에서 의대떡밥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지위와 금전적인 보상을 생각해서겠지.

그러면 그 사회적인 지위나 금전적인 보상이 독신으로 살기 위해서 노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뭐 결혼하고 가정 꾸려서 애도 낳아서 키우고 이러는 거겠지. 그러면 사실상 의사테크 타는 경우에는 자유로운 2~30대를 희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포함한 베프 5명을 생각해보면

나는 미래의 사회적 지위나 금전적 보상을 버리고 아름다운 20대~30대 초반을 보낸 것이고(내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의대 안 간 사람은 있어도 못 간 사람은 없는 나이대라는 점은 염두에 두고)

의사가 된 친구 2명은 그 시간을 포기한 덕분에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지만 곧 올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 보상을 받을 것이며

사무관이 된 친구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오랜 시간을 포기한 덕분에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으며(더불어 어마어마한 야근과 ㅠㅠ)

정출연 다니는 친구도, 전문연으로 정출연을 들어갔는데 고등학교 조기졸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국비유학생으로 좋은 학교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정출연에서 이제서야 전문연 끝내고 여전히 정직원으로 재직중이다. 뭐 아무튼 다들 인생에서 모든 걸 얻지는 못했고 다들 희생한 게 있었던거지.

어른들이 말하기를 공부 어릴 때 하라는 거, 분명히 어릴 적에 희생을 하는 게 좀 더 스노우볼이 굴러가서 미래에 더 큰 보상이 된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부터, 굳이 그렇게 희생을 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거든. 내 인생의 목표는 내 인생에서의 행복의 합을 최대화 하는 것이며, 그래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포기하지도 않고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포기하지도 않을 만큼 살아가겠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그 목표를 만족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던 현재를, 미래를 위해서 포기했던 내 친구들은 미래에 나보다 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의사들이 사회적 지위라든가 금전적 보상이라든가 더 받는 것에 대해서 배 아플 필요가 전혀 없다는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대학원에 간 사람들은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군대에 가기 싫어서든지 아니면 지식에 대한 탐구라든지 뭐 본인이 생각한 바 있어서 간 것이라면 굳이 남이랑 비교할 필요가 있으련지.

물론 그런 점에서 그 동안 우리학교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안들었는데(대부분 조졸해서 들어오니까 군대를 가더라도 대부분 고학년 때 가버리고, 이렇게 군대 갔다가 복학한 사람들은 취업 준비를 하느라 눈에서 사라지고 학부생들의 눈에는 석사 박사를 진학한 사람들만 보이니까 본인의 행복의 기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관성적으로 석사 박사에 진학하게 되는), 그래도 요즘은 다양한 진로가 논의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아무튼 뭐 술 한잔 마셔서 글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자기 스스로의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살면 후회가 없을거라는 점. 그게 대학원을 가는 것이 되든, 수능을 다시 쳐서 의대를 가는 것이 되었든, 학부를 졸업하고 의대를 가든.

그나마 나나 내 베프들은 원하던 살 길들을 다 잘 찾아서 가기는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나 후배들 중에서 보면 자기가 뭘 원하는 지 모르고 그냥 관성대로 나아가는 친구들은 방황을 하더라고. 그럴거면 차라리 좀 더 일찍 방황해서 진짜 자기가 어떤 삶을 바라는 것인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그 기준을 찾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학교 올 정도면 1~2년 늦는다고 해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나아가지 못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나이 먹으니까 글이 길어지네. 뭐 어떻게 끝맺음 지어야 할 지 모르겠으니 다들 저녁 잘 챙겨먹고 행복한 저녁 되길! 나는 삼겹살에 소주 반 병 먹어서 행복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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