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향해서 [931200] · MS 2019 · 쪽지

2020-02-04 00:44:13
조회수 2,868

26부탁) 여러분들께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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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기 옯창분들은 다 알 법한(,,,,,,) 실패의 한입니다.


오늘 서울대 발표가 나고 알바도 잡혀서 슬슬 휴르비 각을 잡고 있었는데


이젠 휴르비도 하고 덕코정리도 할 겸 해서


그동안 올릴까 말까 고민하던 글을 풀어볼까 합니다.


진짜 별 재미도 없고, 별 감동도 없습니다.


글 분량도 역대급으로 기니 읽기 싫으신 분들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오직 입시를 실패하고 엎어진 한 아재가 쓴, 인생 소회와 한탄의 글일 뿐입니다.


이 글을 이후로 해서 오르비에는 자주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니 마지막 유언이다 생각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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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폭력의 대상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이도 부모님께 맞는 일이 빈번했고 그 덕분인지 누군가의 앞에 서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

(이 당시 저희 집안 형편이 안 좋은 편이어가지고요,,,,,,,부모님 탓을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

아니 사실 어떻게 보면 앞에 나서기가 어렵고 또 싫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같이 떨어졌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이 자존감 약한 꼬맹이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갔다.

그동안 집안 형편도 많이 나아졌고, 자연스럽게 내 성격도 반 회장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귈 정도로 발전했고, 남들 앞에서 말을 떨던 습관도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렸을 적에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찾고 싶었다........

나 스스로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 내가 무엇인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고,

그런 생각 끝에 결국 '좋은 학벌을 따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고3, 3월 학평을 꽤 잘 봤던 기억이 난다.

겨울방학에 정말 죽어라 공부만 했던 기억이 난다.

4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나름 서울 내 자사고라 쳐주던 학교에서 이과 250여명 중 전교 20등 이내에 들었으니 잘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N수생이 들어온다던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충격적인 점수를 받게 된다.

나름 그래도 공부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했건만(,,,,,,) 자신이 있었던 지구과학2를 제외하고는 3과 4가 도배된 성적표를 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져 내려갔다.

심지어 수학가형은 5등급이었다.

이때 자신감을 잃고 거의 한달간 공부를 놨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놓은 한동안은 정말로 정처 없이 방황했다.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성공할 수 있는가, 

이때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고 실제로 학교에서도 거의 수업을 듣지 않고 아무랑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맞이한 9월 평가원, 지구과학2마저 4등급으로 추락했고 다른 과목들고 수학 가형을 제외하고는 6월 이상으로 폭삭 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3 마지막 기간은 잠만 잤다. 학교에 가면 엎어져 누워있는 것이 일생의 전부였다.

고3 수능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망했다. 아니 아예 보지도 못했다.

오버슈팅 지문을 읽다가 구역질을 하고 쓰러진 뒤에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이때 첫 번째로 극심한 빈혈의 고통(,,,,,)을 맛보았다.


이 해 대학을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그리고 논술로 붙은 인서울 내 모 학교를 걸어두지 않고(,,,,)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해 재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재수를 하면서부터는 모의고사 성적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 하지 않았다.

모의고사만 보면 상위권 혹은 학원권에 해당하는 성적을 수차례 받았었고 지나치게 망한 6평을 제외한다면 9월도 전국권에 수렴하는 점수를 받았다.(지금 찾아보니 이때 에피 눈알을 달 수 있는 점수였더라고요)


하지만 나 자신의 높은 콧대에 대한 벌이었을까.

수능을 정말로 ㄱㅐ 망했다.

항상 스카이만 바라봤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이 해에 반 포기하는 마음으로 수도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모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당연히 만족할 리가 없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반수를 준비했고 실제로 놀 것 다 놀고 난 후 친 6평에서 (센츄기준에 조금 못미치는) 2와 1로 도배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작년의 고통을 잊어버린 나(,,,)는 올해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도 공군사관학교 1차에 추합될 정도로 사관학교 시험도 잘 보았다.


하지만 나의 높은 콧대를 꺾고 싶었던 하늘이 내린 벌일까. 9평을 망했다.

이때 반 정신줄을 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3때의 기억이 죽지 않은 탓일까. 다시 정신줄을 붙잡고 꾸역꾸역 공부를 해 나갔다.


내가 다니던 독재는 10시에 끝이 났다.

나는 항상 1시까지 내가 배우거나 풀었던 문제를 복습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1시부터 7시까지 자고 대충 밥을 먹고 나간 뒤에 독재에 가도 컨디션에는 멸 탈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하면서는 항상 즐거웠다.

맞는 문제가 늘어날수록,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날수록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수능장에서는 다 풀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도 늘어갔던 기억이 난다.


수능장에 들어가기 전 날,

성당에 혼자 가서 기도를 올렸다.

'주님, 제발 저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대학도 저의 노력만큼 가게 해 주셨으면 하고요 대학 그 자체뿐만이 아닌

진정한 행복으로 저를 다가가게 해 주세요.

주님은 저의 고생을 알잖아요?'


수능장에 들어갔다.

별로 막히는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았고 시간도 과목별로 꽤 남았으나 께름찍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이 해 수능도 꽤 망했다.

부족한 내 실력 탓인지, 아니면 진짜 문제유형적 측면에서 운이 없었는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삼수를 실패하고 나서부터는 거의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나는 왜 망했는가부터 시작해서 온갖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답은 딱히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술약속에 생기면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서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얌마, 죽으면 다음 생이 있잖아, 나는 다음 생을 살면 돼'

나는 내 현재의 자신이 싫어, 내 육신을 버리고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실제로 날아갈 뻔한 적도 많았다.

뒤늦게 돌이켜 보았을 때 이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올해 대학을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적대는 자퇴 신청을 했지만, 그 어느 대학도 걸지 않고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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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에는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습니다.

성공한 자의 웃음 뒤에는 수많은 실패자의 눈물이 있습니다.


올해 입시를 성공적으로 끝내신 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디 그 뒤에 있는 실패자들의 눈물이 헛되지 않게, 보람차게 살아 주십시오


올해 입시를 실패한 분들, 진심으로 당신을 위로합니다.

당신이 흘린 눈물은 결국 언젠간 당신에게 행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며, 저는 이만 오르비를 잠시 접고 현생을 살까 합니다.


휴르비이니 물론 계정은 남겨 둘 것이고


6월, 9월, 수능이 끝날 무렵 한번씩 들어와서 성적 인증하고 근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시고, 더 넓은 세상에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망가진 생활 패턴부터 다시 잡고


오르비가 아닌 보다 생산적인 일들을 해 나가야겠지요.


제 프로필에 오픈채팅방 링크가 있으니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거나 절 찾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제가 확인하는 즉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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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2021수능을 준비하는 분들께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입시에 있어 심리적인 요인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내가 분석을 잘해 놨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의 분석, 내가 푼 문제들을 일말이라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문제는 푸나마나한 문제가 됩니다.


그럼 이만


6월 평가원 이후에 성적표 들고 다시 뵙겠습니다


                                               --------실패의 한 (9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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