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데아퀴노 [849734]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12-18 19: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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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GO-ROUND- 문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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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예수가 인류의 원죄를 사하고자 

십자가에 달린 저녁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가서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씨발, 하느님

이 좆같은 세상을 아직도 보고만 계십니까

라고 속으로 기도하는 일은

나에겐 퍽 진지한 일과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웃음의 뒷면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안녕하세요, 그 집 개는 여전히 잘 먹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요즘 사료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뭐 그런 얘기가 오고 갔던 것 같기도 하고, 나 혼자 거지 꼴을 하곤 어정쩡하게 문가에 기대서 있었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경비의 두꺼운 팔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한 것은, 사방에서 위하여, 더 크게, 위-하-여를 외치고 또 무언가를 위해 잔을 비우고, 누군가 아깝게 먹은 것을 바닥에 펼쳐 놓고 무엇을 위해 잔을 채웠는지 고민할 때, 답을 얻기도 전에 어김없이 다음 건배사는 돌아왔고, 어 그래, 위하여, 에이 목소리가 뭐 그래, 더 크게, 위이이이하아여어어어어를 외치고 또 무언가를 위해 잔을 비우고, 그런 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러기가 싫어졌고, 그러자 모두가 나에게 잔을 들려주려고 해서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던가, 사방에서 웩웩 거리는 소리와, 부어라, 더 부어라, 웨이터, 여기 닦을 것 좀 가져와, 빨리, 그런 얘기가 오고 갔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이 길은 눈에 익은걸, 고개를 들자 경비의 두꺼운 팔이 바로 눈앞에 있었고, 오, 하느님


낡아빠진 교회 맞은편에는 애니콜 모텔이 있었다

언제 어디든, 애니 타임 콜 하면

예쁘게 화장한 누나들이 유리 문을 드나들었고

남자들은 모두들 화장실이 급한 표정이었다

그날 목사님은 타락한 세상에 대해서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 땀 흘리며 호소를 했던가,

하지만 나는 늙은 목사님보다

예쁜 누나들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아, 나는 다음 생에 부잣집 개새끼로 태어나련다,라고 하굣길에 친구는 말했고 나는 웃을까 말까 몇 초간 고민하다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야, 너는 다음 생 같은 걸 믿냐, 그런 거였고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지, 그래, 어김없이 수업은 하나도 재미없었고 그해 여름은 지랄맞게 더웠는데, 저 머나먼 이국 섬의 야자수 사진과, 거기서 구릿빛 피부색 여자들이 반쯤 벗고 공놀이를 하는-난 그게 비치 발리볼이란 정식 운동이란 걸 고등학교 때 처음 알았다-모습은 세계지리 책에 가로세로 5 센티미터짜리 컬러 사진으로만 박혀 있었고, 그걸 봐도 북위 삼십 칠도의 여름은 여전히 지랄맞았다,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오는 교실에서 대가리를 책에 박고 elegant, 우아한, elegant, 우아한, 을 달달 외는 일은 하나도 우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아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결과 어김없이 영어 단어 시험은 죽을 쒔고, 그것 또한 그리 우아하진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엉거주춤 일어났더니, 친하지도 않은 교장이 자기만 벅찬 표정을 하곤, 졸업 축하한다, 그래서 갑자기? 란 생각을 막 했을 때, 나는 한 손에 꽃다발과 한 손에 졸업 증서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잠깐, 꽃다발에서 향기가 났던가 어쩐지 꽃은 종이로 접은 것 마냥 뻣뻣했고 마치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처럼, 찰칵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갈 때마다

강대상 뒤편 벽에 못 박혀 있었다

그걸 좀 내려드려도 되지 않을까,

가끔은 예수님도 누워서 좀 쉬시다가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셔야 하지 않나

엄마에게 말씀드리려다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예수는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슬픈 눈으로 못 박혀 있었다




다들 웃는 자리에서 웃지 않는 것은 다들 우는 자리에서 울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한 문제라고, 대학 선배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화장실에서 설법을 했고 나는 박수를 치려다가 그러려면 먼저 바지 지퍼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미도 없는 농담에 깔깔거리는 모습을 관찰하다 억지로 깔깔거리기 시작했을 땐 이미 웃을 타이밍을 놓친 후였고,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모임이 끝나고 다른 동기들은 비틀거리면서, 또 어딘가로 가자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노래 가사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었다, 그날의 안주는 부모의 등골 조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눈물로 간을 해서 너무 짰어, 싼 맛에 먹는 거지 뭘, 이에 낀 후회를 아직 다 못 빼냈는데 택시는 벌써 와 있었고, 대학 주변에는 언제나 술집과 노래방과 당구장과 볼링장과 피시방과 무인 모텔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그건 6X5X4X3X2X1 칠백이십 가지 조합이거나 그 이상이었으므로 언제나 놀 일은 풍족했다, 젊음을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까울 만큼, 넣어야 할 구멍들이 너무 많다고 사내놈들은 그걸 못 견뎌 했다, 나는 그냥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여전히 글을 끄적이다 책을 읽다 노래를 듣다 혼자 해결하곤 했는데, 사내놈들은 그것 또한 못 견뎌 했다


길고 지루한 예배가 끝나면 꼭 목사님 장로님들과

길고 지루한 악수를 해야 했다

사실 딴생각만 하다 끝나버렸지만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엄숙한 표정으로

목사님의 손을 맞잡곤 했다

그러면 모두가 편안해 했으니까,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이란 사실을 믿는 동안

사는 일은 늘 뭔가 부족하거나 썩고 있었다




세상이 거대한 동물의 왕국 같았다, 어디를 가나 약한 놈은 강한 놈에게 잡아먹히거나 제 손으로 제 살을 떼 주어야 했고,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놈은 없었다-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선 우선 제 손으로 제 살을 떼 주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남은 놈들은 힘센 놈이 배불리 먹고 낮잠을 자는 동안 먹다 남은 살코기를 놓고 죽고 죽이곤 했다, 어린 것들은 여전히 갈 바를 알지 못했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으므로, 갈 바를 모르는 채로 새끼들은 컸고, 갈 바를 모르는 채로 죽었다, 그걸 못 견뎌한 이들만이 제 손목을 물어뜯고 죽었지만, 그들은 갈 바를 알았는지 나는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들이 대개 착하게 풀을 뜯던 이들이란 것뿐이었는데, 그게 죄가 된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뛰어야 했고, 나는 꽤 열심히 뛰었다, 그게 깊고 어두운 아가리를 향한 것이었단 걸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사는 일은 추악했고 비할 데 없이 더러웠고, 그 틈바구니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기어오르는 것들을 마주 보는 것은 애처로워서, 나는 구덩이를 파고 대가리를 박았고, 그러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탁한 어둠에 잠시나마 숨을 수 있었다, 물어뜯기는 놈들의 비명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하느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그 침묵을 사랑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 했다, 이 미친 세상이

사실은 다 철 지난 만우절 같은 거라고,

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질문들은 바닥에서 썩었고

그 위에 새로운 질문을 심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생각들은 잘 정리되지 않았고 횡진으로 왔다가 종심진으로 떠나갔고, 나는 볼품없이 허우적거리다 진흙탕에 코를 박았다, 그건 표적도 없이 던지는 돌팔매 비슷한 글들이었고, 뭘 어쩌자고 쓴 것이라기보단 뭘 어쩌자는 거냐고 쓴 것이었으므로, 수신인을 명기하지 않은 투서 비슷한 것이었고, 이것이 시가 될 것인가,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한 단어를 써넣고 기진맥진한 날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제 그만 보고 그만 듣고 그만 옮겨 적고 싶었고, 그게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다시 남은 단어들을 적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도시에 시체들이 넘쳐나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두가 눈먼 사람들처럼, 누군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동안 이미 죽은 사람을 더듬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질문들을 허공에 던지고 나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때, 가끔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우리가 우리 하는 일을

알지 못함입니다**

 

 

*마르코(마가)복음 10장 48절 변형

**루카(누가)복음 23장 34절 변형


출처: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https://teen.munjang.or.kr/archives/108702

(디시인사이드 문학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literature&no=175446&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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