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멍댕멍 [682246] · MS 2016 · 쪽지

2019-12-06 02: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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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수를 결심한, 혹은 고민하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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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성적이 단순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곧바로 ' 나 한 번 더 할래! ' 라고 생각을 굳혀버리셨나요?


주변에 당신이 원하던 성적을 받은 이들의 공부량 / 공부 태도가 당신과 얼마나 차이있는지는 생각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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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현역땐 어리석게도 재수, 삼수, 그리고 장수생들을 엄청 속으로 무시했고


반수해서 서성한정도 가야겠다~ 라는 엄청 얕고 볼품없고 건방진 생각을 하며 


띵가띵가 놀면서 6,9월이 망해도 '수능은 잘보겠지~' 라고 자위를 했다가

국수영에서 333을 맞으며 현역때보다 못한 성적을 받으며


그제서야 약 1~2달간 크나큰 반성을 하고,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깊게 되돌아봤습니다.




'아. 나는 똑똑하지 않았구나.'


'나는 그저, 적은 공부량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낼 줄만 알았던 어설픈 놈이였구나.'


'지금처럼 공부해선 절대 고득점을 받을 수 없겠구나..' 


'나는 진짜 오만했고, 어리석었구나.'




반수를 실패하면 바로 복학하겠다는 패기넘쳤던 모습과는 달리,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6월까지만 믿어달라고. 그 때 연/고대 성적이 안나오면 바로 2학기 복학을 하겠다고 말하며

조건부 삼수를 허락받게 됩니다.




2월 초반부터 신촌 오르비 학원에서 삼수를 시작했고, 단기적인 계획을 우선적으로 짜 본후


제 1차 목적은 절대 졸지 않고, 아침에 일찍 나와 밤까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제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꾸준히 감시를 돌아주시던 학원 원장님께서 '객관적으로' 보실 때 말이죠! 


그리고 


2017수능에서 국어 81 수학 84(1개찍맞) 영어 79 물리 47 지학 45점을 받았던 저는


3월 사설모의고사에서 (예상 등급컷이지만) 처음으로 올1을 받게 되고, 


혼자 뽑아본 교육청 모의고사도 , 꾸준히 매달 보던 사설 모의고사도


꾸준한 성적 상승 그래프를 그리며 거기에 힘입어 더욱 더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마침내, 2018학년도 6월 모의고사에서 


국어 92(98) 수학88(94) 영어2등급, 물리1등급, 지구과학2등급을 받으며 


11212라는 제 나름대로는 꽤나 멋있는 성적을 처음으로 받아내며 


오르비에서 우러러만 보던, 눈알의 아이콘을 제 아이디 옆에도 장식해보았습니다.


연/고대도 충분히 노려볼만한 성적이였고, 저는 수능날까지 공부를 할 수 있게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면 되는구나.'


에서


'나는 똑똑했어. 열심히 하니깐 바로바로 쭉쭉 오르네!'


'3~4달만에 이렇게 오르다니 ㅋㅋ대박ㅋㅋ'


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독재의 치명적인 단점.


남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적고 자기 혼자 생각을 하며 결론을 내리고


아무래도 우물 속 개구리같은 사고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자신감과 자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군가,


병신새끼야 정신 차리라고, 수능 보는 그 날까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세상 모든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중간지점에서 안심하고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는 새끼는 망하기 마련이라고,


아니, 그냥 고개를 살짝 돌려 니가 어렸을 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너는 벌써 망했다고.


한 마디만 해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파멸해갔습니다.



사실 이 성적을 수능때까지 유지만 해도 훌륭한건데,


상승곡선을 전제로 깔았던 저는 '나는 의/치/한 생각도 없는데.. 그럼 서울대를 노려보자!' 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한 생각을 했으면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으나, 오히려 망가지고 엄청나게 풀어지면서



2018학년도 9월 모의고사에서 


국 수 영 지1 물2에서 3 3 3 1 2 라는 끔찍한 하향곡선을 맛보게 됩니다.




재수를 망하고 들었던 그 끔찍한 느낌들이 미친듯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내가 지난 3개월간 얼마나 멍청하고 다시금 오만했는지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한 새끼인지,


왜 또 성적표를 받은 순간 수능까지는 이렇게 적은 날이 남았는지. 미친듯이 후회되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수능날까지 공부해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적어 불안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적은 양에서 깊은 무언가를 뽑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국어, 영어 EBS를 일체 보지 않고 기출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하며


수학은 많은 문제를 풀지 않고 적은 문제를 깊게 사고하자고 방법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놓친 것은, 세상에 방법은 다양하고 나에게 어떤 방법이 맞는지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능을 망친 뒤, 살펴보니



제가 위로를 얻기위해 찾아보았던, 국어/영어 EBS를 하지 않고 고득점을 받았던 이들은


이미 예전부터 국어/영어 과목에 있어서 튼튼히 베이스가 쌓였던 사람들이었고,



그제서야 수학 고득점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인강을 듣든, 현강을 듣든, 뭘 하든 다들 푼 문제집의 양이 매우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또 다시 반성하고 후회하고 패배감이 저를 흠뻑 젖히다 못해 깊게 밀어넣었습니다.



버린건 2년.



동갑내기 친구들은 그 동안 다들 멋있어져있었고, 


저는 2년동안 옷도 거의 사지 못해 촌스러운 스타일의 옷뿐이었고,


여드름이 나지 않는 줄 알았던 내 볼엔 여드름이 서너개씩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려웠지만, 다들 잘 봤던 2018학년도 수능.


시립대 수학과까지 추가합격에서 떨어지며, 저는 2학기 복학을 고민하며 6월까지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대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사수.


현역에서 재수 생각은 쉬웠던 것 같습니다.


왜? 다들 그정돈 하는 것 같아서....


재수에서 삼수,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보여서 참을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규분포 그래프가 보여주듯


사수를 고민하는 사람은 정말 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아까운 내 청춘을 1년 더 소비해야 한다는 그 사실도 무서웠고,


이를 안고 '수능 2번 더 봤는데 둘다 현역정도 봐서 다시 동국대로 돌아온 새끼' 라고 혹여나 누가 생각할까봐 ,


사실 과 생활도 그렇게 잘했던 제가 아니기에, 누구랑 어떻게 어울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그 사실도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렇다고 군대?


지금의 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정신상태로 군대를 갔다간 정말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아서 군대는 절대 못갈 것 같았습니다.




정말, 거짓말 안치고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약 3달간 매일매일 고민하며 일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연애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 캠퍼스의 낭만을 SNS에 업로드하는 친구들을 보며 ,


'아 .. 나도 그냥 복학해서 열심히 살아볼까?' 고민도 정말 많이 해봤지만,



아침에 일을 가는 나와 달리 과잠을 입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의 모습.


어쩌다 일 가기 전 아침에 신촌을 들를 일이 있었던 그 날


화창한 봄날에 연세대 과잠을 입고 행복한 발걸음으로 학교에 가던 그 학생들의 뒷모습을 볼 땐


정말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절대 이 야망을, 열정을 평생 죽이고 살 자신이 없다.


평생 내 한이 될 것 같다 라는 생각에


늦은 6월 25일, 정말 내 인생 마지막 수능 사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한텐 조금 미안하지만, 엄마 우리가 돈이 조금 더 많았다면 내가 이렇게 안됐을까?


나도 단과 듣고, 아니 적어도 막판에 실전 모의반에 들어갔다면 좀 더 잘 볼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저는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못난 아들이었고 저희 집엔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불평할 시간도 없이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좀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친구와 수학 모의고사를 시간재고 풀고 서로 피드백하고 풀이 서로 비교해보고.


또 추가로 나 혼자 최대한 여러 환경 / 다양한 조건에서 모의고사를 열심히 풀어보고 하며 


내 부족한 실전력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정말 마지막 수능을 준비할 땐 정말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막판엔 체력은 너무 딸리는데 공부할 것은 너무 많아서


아침 아메리카노


점심 아메리카노


저녁 몬스터를 먹으며 하루를 버텼습니다.



처음엔 커피를 사먹었지만, 그 돈 조차 부담돼서 커피믹스를 사서 매일 텀블러에 열심히 타먹었습니다.



과학은 자신이 있었고, 내 약점은 국수영.



아침에 와서 12시정도까지 3~4시간정도 국어공부.


점심먹고 산책하고 저녁먹을 때 까지 약 5~6시간정도 수학공부.


저녁먹고 산책하고 또 수학하거나, 혹은 영어공부와 과학공부.



국어/수학을 정말 미친듯이 했습니다.


9월 모의고사. 모든 문제를 다 풀고도 96점을 받았었지만 그 후에도 절대 저는 안심하지 않고


수학을 꾸준히 저 시간만큼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 날.



국어가 정말 미친듯이 어려웠지만


'나는 수학/과학 잘하니깐, 수학 과학 만점 받아서 연대가자.'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손이 미친듯이 떨렸던 수학시간에 비킬러에서 정말 많이 막혔지만 침착하게 대응해 잘 풀어내 96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수능날 점심먹고도 못봤던 키스 에센셜 지문 몇개를 볼 정도로 애절했던 영어에선

생애 첫 1등급을 받아냈고,



강점이었던 과학시간엔 국어먹고 청심환, 영어보고 몬스터를 먹었던 탓인지 정신이 너무 몽롱했어서 


정답률 7~80%짜리. 근데 또 다 3점짜리들을 물리/지학에서 하나씩 실수해서 정말 오랜만에 둘다 2등급을 받았지만


이렇게 연대에 오게 되었네요.





학교에 와서 느끼지만, 물론 똑똑한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정말 수능 수준에선 머리보단 공부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합니다.



제가 멍청해서 그런거 아니냐구요?


국어는 제가 진짜 머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연대 와서도 학점 꽤 잘 받고 있는 것 보면


그래도 멍청한건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비록 의/치한 분들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보이겠지만


이런 제가 원하던 연대에 오기까지 이렇게 가파랐던 것 같네요.



혹여나 여러분이, 혹은 과거의 제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벽감성으로 글 적어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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