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궁정동의 총성부터 1980년 광주 그날까지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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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무궁화 동산이라는 공원이 위치해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원에는 가지가 굽은 소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있습니다.
지금부터 이곳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하나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1979년 10.26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공식 행사들을 치루고
관저인 청와대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차지철은 박정희의 최측근 인사 중의 하나인 인물로
5.16정변 당시 중대장, 대위의 신분으로 쿠데타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통령 경호실장까지 역임하며 청와대의 2인자로 군림하는 인물입니다.
차지철은 당시 중앙정보부(現 국가정보원의 전신) 부장이었던
김재규를 당시 청와대 부지였던 궁정동의 안전가옥으로 호출합니다.
오후 6시 예정된 궁정동에서의 만찬에는
김재규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이 부름을 받았습니다.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연락을 받은 이때가 약 오후 4시경이었습니다.
당시 김재규는 이 연락을 받은 후에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 제 2차장보 김정섭에게
'궁정동에서 저녁이나 하며 잠시 이야기 좀 하자'하며 이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육군대학에 있을 때 받은 PPK 권총을 꺼내 7발을 장전합니다.
그 후 김재규는 궁정동의 안가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을 기다립니다.
두 사람은 군 복역 당시에 육군 대학 총장과 부총장을 같이 지낸 사이였고
이때 당시 김재규의 지프차량이 낭떠러지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는데
김계원이 김재규를 직접 구한 후 병원까지 데려다 준 뒤로
둘은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였을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는 공통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각하가 곧 국가라며, 대통령을 등에 업고서는 유세를 부리는 경호실장 차지철이었습니다.
당시 차지철이 어느 정도였냐면, 차관급이었던 경호실장 자리를 장관급으로 취임 후 격상 시키고
이에 따라 일개 포병 출신의 중령 예비역에게 자신보다 선배 기수의 육사 장성들과 영관급 장교
그리고 김재규 같은 중앙정보부장(김재규는 박정희와 육사 동기로 중장 전역)도
청와대에서 차지철을 보면 깍듯이 모셔야하는 선후배 문화 따지는 군대에서 웃기 힘든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개 경호실장이 의전 서열도 꼬이게 만들 뿐더러 박정희를 주무르며 국정 농단까지 펼칩니다.
육영수의 암살 이후 암살 위험이 있을 수 있다며,
박정희에게 올라가는 모든 국정 문서는 차지철의 검토 후에 올라가게 됩니다.
즉 경호실을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대통령과 접근할 수 없게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차지철은 일개 경호실장이 수도방위사령부의 통제권을 가지도록 법을 조정합니다.
1979년 당시 박정희의 사진 속 모습을 보면 상당히 연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 당시의 박정희는 노쇠한 상태로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상태였습니다.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던 주축 산업들은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아래 사진의 YH무역 여공사건입니다.
국가 소득 수준의 증가에 따라 가발 산업과 같은 수공업 시장이 약화되었고,
이에 따라 당시 가발 산업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회사였떤 YH무역이 폐업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아침에 실직하게 되고 이에 농성을 벌입니다.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쓴 머리띠를 메고
'우리에게 나가라면 어디로 나가란 말이냐',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들의 농성을 신민당 당사에서 진행시켜주며
노동자들을 적극 보호하는데 일조했는데, 박정희는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제명시킵니다.
의원의 불체포특권과 민주주의 정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유신체제의 서슬퍼런 칼날이 그의 목에 씌워집니다.
그리고 이는 야당인 신민당 의원의 대거 사퇴로 이어집니다.
동시에 이는 부산,마산(현재 창원시 통합) 지역 시민들의 항쟁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이를 지역의 앞글자를 각각 따서 '부마 항쟁'이라고 많이 배웠을겁니다.
긴장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마저 악화된 상황에서
주요 내각 관료 인사에 있어서 사사로운 감정만을 가지고 인사를 등용하며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
차치철은 이런 대통령의 상태를 이용하여 청와대의 실권자로 미쳐 날뛰고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당시 부마항쟁 사태를 직접 내려가 동향을 살펴본 후에
위와 같이 보고하나, 차지철은 무력 진압을 통한 강경 대응을 할 생각을 합니다.
김재규의 동향보고와, 재판 당시 진술을 미루어 볼 때,
김재규는 이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성향의 카터로
안 그래도 독재자인 박정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핵문제로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이는 대미 관계를 악화시킬 뿐더러
국민 소득 수준이 올라온 상황에서 위와 같은 민주화 열풍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던거 같습니다.
즉 박정희의 판단이 오히려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 것이고
현 체제에서 독재에 일조하는 중앙정보부장인
자신의 입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을겁니다.
김재규는 박정희와 차지철에 대한 개인의 원한도 커진 상태
여기 현재 국가의 시국이 위와 같이 어지럽다는 명분이 있으니
그 명분을 가지고 거사를 일으킬 생각을 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계원과 차지철은 궁정도 안전가옥에서
약 5시 40분 경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서로 재판에서 진술합니다.
김계원 : 차지철 그 사람 월권을 해서 야단이야, 야당 친구 몇 사람의 말만 듣고 각하에게 보고하여 각하를 강경하게 몰아가고 있단 말야.
김재규 : 형님, 오늘 저녁 이놈을 해치우겠습니다. 뒷일은 형님이 책임져 주시오.
두 사람은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눈 후에 박정희와 차지철이 있는 연회관으로 들어갑니다.
미리 본관 자신의 집무실에 준비한 PPK 권총을 품에 숨긴 채로 말이죠.
다음 글로 이어나가겠습니다. 이 글은 앞으로 12.12쿠데타를 거쳐 광주 항쟁까지를 다룰 것입니다.
민감한 주제의 글이라 최대한 주어진 사실을 토대로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글을 쓰며 재판 진술록과 정승화 총장의 회고록, 전두환의 회고록, 당시 미국 신문사의 기사
'10.26일은 아직 살아 있다' - 안동일 저 (재판 당시 김재규의 변호인) 등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김재규의 암살 동기에는 여러 설이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정황과 진술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가지고서 한 합리적인 추측으로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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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호 흥미롭다
개선할 부분도 있으면 많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되게 몰입해서 읽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팔로우 박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충 아는 내용이지만 사진 있으니까 더 읽기 좋네요
사진 자료를 최대한 많이 보여드릴라고 문헌검색이랑, 구글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ㅋㅋ
원래 박종규 경호실장 시절엔 경호실장이 차관급이었고
경호실 차장도 직급이 차지철 경호실장 때보다는 낮았었죠.
차지철 경호실장 시절에는 차관에서 장관으로 격상,
경호실 차장도 소장, 중장 출신이었죠. (정병주 육사9기 소장, 이재전 육사8기 중장 등등 계셨죠)
또한 보안차장보, 행정차장보 직급을 신설하여 준장 계급을 자리에 앉혔었죠.
10.26 당시에는 육군 중장 이재전 장군이 경호실 차장이었고
김복동 장군(육사 11기)이 경호실 차장보이었죠.
차지철 경호실장 이후에는 정동호(육사13기, 당시준장) 장군이 경호실장 자리에 오르고 그 이후에 81년 여름 장세동 경호실장이 오게 되죠.
한편 10.26 당시 박흥주 (육사 18기, 대령)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및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및 궁정동 중정요원들은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되죠.
박정희도 나이 먹으면서 판단력이 참 많이 흐려졌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둘의 공통점이라면 인사 등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 칼 같은 면이 초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보는데 말이죠. 차지철 쿠데타 당시 일개 대위였던 놈이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저 자리까지 올라가서는 나라를 주무르는거 보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거기도 합니다 ㅋㅋ
정승화 총장의 행보가 전 의문입니다.군권을 쥘수 있는 사람인데 김재규가 암살이후에 권력을 쥐기 위해 정승화 총장을 이용한건지..
정승화 총장을 이용해서 군권을 쥘려고 했다면 사태수습을 위해 일단 자신의 본거지?라고 할수 있는 중정으로 갔어야했는데 육본으로 간것도 의문이더군요.
정황상으로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와 함께 이동 전까지 사태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김재규는 아마도 총장과 함께 가서 군권을 어느 정도 장악 가능할거라 판단하지 않았나 싶은데, 전두환이랑 그 밑에 끄나풀 놈들이 영악한게 허삼수가 이 점을 이용해서 총장과 김재규등의 중정 인사를 제거하죠. 물론 이 때문에 김재규도 당시 부마항쟁에 대해 논하다가 차지철이의 발언과 박대통령의 그에 대한 비호로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 보기도 합니다. 총기를 챙겼기 때문에 암살을 할 생각은 있었던거 같지만, 적절한 시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암살을 한 후에 이후 중정은 자기 손에 있으니 군권만 장악하면 된다는 핀단을 한거 아닐까요? 항상 그렇지만 성공했다면 역사에서는 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했을겁니다 ㅋㅋ 우리는 사후적으로 판단하는거지만, 유신정권의 수장을 죽인 후에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김재규의 선택이 우왕좌왕 하는게 이해가 되긴합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암살 후에 육군본부로 안 갔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중정에서 사건을 묻어버리고 권력을 장악할 수도 있었지만, 자만을 한건지 아니면 권력의 끄나풀로 살지 않겠다는 어떤 계기가 작용한건지 (민주항쟁을 보며) 실제 글에도 나와있듯이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지속적으로 부마항쟁이 단발적인 시위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위기이며 이를 유혈진압 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고 있죠. 그간에는 박정희가 국가 소득 수준을 끌어 올리며 구국의 영웅 노릇을 했으나, 말년에 가서 차지철에게 휘둘리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의 리더십에 대한 신임을 잃은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국가적 차원의 위기를 자기가 해소하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