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ing to the Top [746442] · MS 2017 · 쪽지

2019-12-01 00: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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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느 재수생의 슬픈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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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께서 5년전 오늘 올리셨던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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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내일은 제가 태어난 날입니다.


두 번째 수능을 망친 후에 맞는 생일, 마냥 기쁘지 만은 않네요.

물론 수시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에 수능이 20여일 지난 지금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모 외고를 졸업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외고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저 역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가 지금도 크게 갖고 있는 열등감을 얻게 되었고, 어디선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3학년 때는 수능으로는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수시 올인’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갖춰놓은 비교과에 자신이 있었고, 대학에 저를 어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수능 공부는 사탐을 버리고, 그저 우선선발이었던 언수외 합4 정도 수준을 목표로 공부했지요. 하지만 9월부터 10월 사이에 있는 1차 발표, 면접, 최종 발표 등을 거치면서 제 멘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제가 원하는 학교가 모두 저를 거부했을 때, 저와 함께 등하교 하던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모두 원하는 학교에 당당히 합격했지요.



그러고 저는 제 생애 첫 번째 수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심리적으로 큰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평소 약했던 수학영역을 크게 망치며 재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재수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고민했고, 원하는 학교와 원하는 과를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그리고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였습니다.

평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던 저였고, 우리나라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고 싶은 바람에 교육학과 교수, 그리고 법조인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직업을 갖게 된다면 소득 격차가 곧 교육 격차로 이르러 세대 간 악순환이 반복되는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꼭, 재수를 성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과 아무 걱정 없이 만나는 것이었죠.



교대 옆에 있는 모 학원에 가까스로 들어간 저는, 운이 좋게도 한국사 선택반 중 가장 앞 반에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저의 열등감은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열등감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말 생각이 깊고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과 대학에 가서도 계속 함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지요. 그렇게 3달을 열심히 한 결과, 저는 6월 모의평가에서 이제까지 받아본 적도 없는 점수를 받아보게 됩니다. 물론 6월 모의평가이지만, 제가 감히 서울대를 꿈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6월 모의고사에서 대박을 친 뒤, 2~3주 동안 저는 나태해지게 됩니다. 학원 수업도 대충 듣고, 학원 숙제도 그냥 겨우겨우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다행히도 사설 모의고사에서 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으면서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에 다시 집중하려던 찰나에, 저는 병원에서 믿기 힘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터라 계속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검사 결과 희귀 유전병일 수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7월 둘째 주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일주일동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게 끝인가..” 이런 생각도 수없이 반복되었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치료와 검사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 병이 확진일 가능성은 다행히도 낮다고 하시네요.



모의고사 성적은 반에서 꾸준히 중간보다 약간 위를 유지했고, 이 흐름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제가 원하는 과는 몰라도, 재수 실패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수능이 끝나면 누군가를 편하게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요.



수능 전날까지도 공부가 평소처럼 잘 되었었고,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교시 국어 영역의 충격으로 저는 재수를 시작하면서 받아본 최악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시험이 모두 끝난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며 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1년 동안 고생한 결과물이 이게 다인가..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냥 내 분수를 알고 작년에 대학을 갔어야 했나.. 이런 생각들이요.



결국 전 두 번째 수능을 망쳤습니다.



제 폰에 빗발치는 문자와 전화에 저는 차마 답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마주 대한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두렵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전 그저 입시지옥과 제가 가진 열등감에서 벗어나, 맘 편히 친구, 후배, 선배들을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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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제 이야기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수능을 생각보다 못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은 제가 드리는 말이 잘 들리지 않으시겠지만...


이 또한 지나갑니다. 지나가더라구요.


그리고 꼭 힘내세요.


저도 정말 괴로웠던 시간들이었고 가끔씩은 이 때 꿈을 꿔서 잠이 깨기도 하는데


조금 더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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