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소리 [561419] · MS 2015 · 쪽지

2019-09-23 19: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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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물셋에 재수를 결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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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범해지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충 고3때부터였던 것 같다.

고2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목표 대학이 경희대였다는 것은 기억난다. 아마 여름캠프를 경희대로 갔던 영향인 듯 하다. 그때만 해도 소위 '인서울 명문'에 진학해서 대기업 입사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 전에는 공무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작은 꿈을 꾸었다고 보여지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고3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 입시상담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인천대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 지지리도 공부 안하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강제로 공부수용소에 감금시키기도 했고 나름 자사고에 지원도 해보려 했으며 내신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결과는 입시상담 인가경이었다. 

그 때 적잖은 충격이 왔던 것 같다. 스스로 공부 못한다고 생각 해본 적은 없는데 돌이켜보니 잘해본 적도 없었던 거다. 목표의식이 없었다. 아니, 희미하게나마 존재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날마다 벼락치기에 시험기간이 아니면 놀러 다녔으니. 

그렇게 겨울방학 때 부터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겨울방학 때도 공부수용소에 감금되었는데, 경기도 이천시에서 그나마 학구열 높다는 고등학교 중 상위권~최상위권 애들을 뽑아 넣은 수용소였는데 난 빽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게 해 준 중3 담임선생님께 감사한다. 이후로 찾아뵙진 않았지만,,

애들은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때 나보다 성적이 한 등수 낮았지만 항상 내가 열등의식을 품고 있었던  친구는 고대 경영에 갔고, 인물 좋고 운동도 잘했던 내가 부러워한 친구는 고대 공대를 갔다. 내 룸메는 한양대를 갔다. 내가 싫어했던 8촌은 재수 끝에 서울대 의류를 갔다. 나에게 자신도 공부 못한다며 입시를 우려하던 여자아이는 시립대를 갔다. 내신이 1.0이라고 말한 귀염상의 여자애는 서울교대를 갔고, 딱봐도 성격 좋고 잘 놓게 생겼던 여자애는 공주교대를 갔다. 

난 그 해 인하대학에 들어갔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입학 첫날부터 설렘도 없었다. 고2때에 비해 고3때는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노력은 항상 상대적이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날이 강남대성 최상위권에게는 완전히 날린 날이었을 거다. 

그래서 만족하지 못했다.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3때 열심히 하지 않았고, 절박하지 않았으며, 사실 놀 것도 다 놀았다. 예전에 '비해' 덜 논 것일 뿐이다.

학교에 입학했고, 인하대학 문과대 학생들의 새내기 놀자판 버프와 정시 공부하던 습관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시너지가 합쳐져 첫학기 과 수석을 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남들 놀때 공부하고, 남들 공부할땐 더 공부했으니깐. 

2학년에 올라갔고, 인하대학 상경계열의 꽃인 아태물류학부 전과에 성공했다. 그 해 여자친구도 생겼다. 나에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나에게 아태물류학부란 인하대학 나머지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심어주었고 실제로 일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OT를 경영대학과 따로 간다느니, 아태물류학부와 경영대학은 다르다느니, 그래서 학과가 아닌 학부라느니 등등. 학교에 재입학한 새내기처럼 설렜고 신났다. 

첫 학기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학생들의 수준도 달랐으며, 수업의 내용과 수준도 달랐다. 

여기가 문제였던 걸까.. 학부 사람들 중 아태를 오고 싶어서 온 학생도 있었지만 거의 수능 망해서 오거나 하향지원이 많았고 다들 머리도 좋았다. 다들 눈도 높았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시야가 트인 것이다. 

이내 적응했다. 이 수준이 곧 내 수준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도 높아졌다. 잊고 있었던 재수의 꿈이 조금씩 떠오른 것이다. 

그맘때 쯤 학교성적을 조지기 시작하면서 자존감도 떨어졌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생 되는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쓰레기같은 무의미한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던 중 늦은 군입대를 하게 된다. 훈련소엔 동기들이 많았고, 우리 생활관엔 좋은 동기들도 많았다.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동기도 있었고, 학벌의 유용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동기도 있었다. 

난 후자를 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들지 않아 선택을 보류했고, 이 나이 먹고 수능을 다시보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자존감도 낮아진 상태였기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 또한 없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이뤄낼 수 있을까?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고3때도 (실제론 아니었지만) 인하대였는데 그때보다 자신감 떨어진 지금은 뭘 할 수 있으려나?

그러던 중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여자친구는 성공하고 싶은 날 이해는 했지만 가치관이 달라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우리'의 행복이 우선이었지만 나는 '내' 성공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자존감이 더 떨어졌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헤어진 것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죽을만큼 힘들 줄 알았는데, 힘들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토익을 봤다.

헤어지고 나서 이룬 첫 번째 성과였다. 20살 이후로 내가 조금이라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적이 없었기에 나름 만족했다. 약간의 자존감도 회복했던 것 같다. 한달 반에서 두달 공부했나, 군대에서 시간 쪼개가며 공부했으니 나름 내가 이뻤다. 그러나 여전히 자존감은 낮았다. 그렇게 자존감 향상 용도인 멘사 시험을 치르게 되고, 합격했다.

이 때는 좀 기뻤던 것 같다. 결과 확인하고 나서 주먹으로 책상 치며 음! 이라고 외마디 비명까지 질렀으니. 대학 합격보다는 확실히 기뻤다. 내가 이 학교에 얼마나 만족을 못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더라. 

군대에 있으며 전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대기업 들어가봤자 월급쟁이고 내가 원하는 고위층 라이프는 꿈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돈 없는 내가 개천에서 용날려면 정말 지식으로 승부봐야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게 로스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예전엔 낮은 자존감 탓에 내가? 변호사를? 전문직을? 이라는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볼 만 하다는게 어 이정도면 ㄱㅊ겠는데? 가 아니라 '존나게 노력하면 비벼볼 수는 있겠는데?' 이다. 예전엔 그마저도 들지 않았으니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변호사도 아무나 하나? 아니 뭐 아무나 하는 건 둘째 치고, 변호사 돼도 아무나 돈 많이 버나? 법조계는 무조건 학벌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날이 갈수록 학벌제폐지 블라인드 테스트 이딴 좆까는 소리나 해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제가 남아있다는 점이. 열심히 한 만큼 보상도 받아야 사람이 뭐라도 할 것 아닌가. 열심히 한 사람이 대충 산 사람이랑 비슷한 취급 받으면 그것만큼 의욕 떨어지는 것도 없다. 

그렇게 23살 먹은 지금 재수를 결심하게 된다. 

현재 걱정이 많다. 의지도 문제고, 절박하지도 않고, 물론 현역보다는 수능을 100% 잘 볼 것이지만 내가 나이로는 4수인 이 수험생활을 성공이라고 치려면 적어도 서강대 경영은 가야 한다. 근데 그만큼의 의지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의지를 다지자. 난 비범해지고 싶다. 넓은 세계를 알아버린 이상 그 세계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만족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난 그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내가 현재에 만족하기에 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그냥 대기업 가서 초봉 3,4000에 만족하면서 살았을 텐데..

기분이 우울하다. 이상이 높은 만큼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알기에 자존감을 굳이 낮출 필요도 없고 우울이라는 감정도 생화학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울할 필요도 없지만 어쨋든 우울하다. 감정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

열심히 살아서 국어 정복하고 고대 가자. 할 수 있다. 내 팔촌도 서울대 갔는데 나라고 못 갈까? 걔나 나나 머리는 비슷비슷하다. 노력과 의지의 차이지. 많은 것을 알아버린 이상 고3때보다 열심히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높은 것을 위해. PLACE PLUS HA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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