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총대주교숨겨진아들달라이라마 [899737] · MS 2019 · 쪽지

2019-08-31 18:51:16
조회수 721

삼반수 때 썼던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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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작(自作)


시를 씁니다.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은 건

제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읽지 않아서

잘되면 유고가 되고

못되면 불쏘시개가 될까 합니다.


그러면,

전 꼭 중세 비운의 음유시인이 되는 겁니다.

기사 성주가 귀부인을 유혹할 때

들러리가 되어

사랑의 시를 대필하고 읊조리는

중세 시인의 천직.


그러나, 그 시마저 누구도 읽지 않거나

기사 성주 귀부인마저 시인을 싫어하게 되면


그 시인은,

떠돌이 수도자 행세를 하며

방방곡곡 어린아이들에게나

자신의 시를 노래하겠지요.


나뭇가에 멀거니 앉아-

성에서 알고 지내던 처녀 생각에

멀뚱이며 하늘을 치어다보는

바보 시인.



#2.

어리석은 사(死)의 찬미


어린 토끼는 바다를 찬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곰 의원이 토끼의 내장과 간을 꺼내들고 맥을 짚은 그날로부터.

토끼는 바다를 찬미하였습니다.

바닷가로 나온 토끼는 험상궂은 거북이 사마엘과 마주하였습니다.

"거북아, 사마엘아, 저 검은 바다 끝으로 나를 데려다 주렴.

그 끝에 빛이 있든 암흑이 있든 섬이 있든 무(無)의 수평선이 있든 

그런 건 그 때 가서 알려주렴."


사마엘은 시큰둥하게 따라올려면 와 보라는 듯

해안을 유유히 배회하였습니다.


용기가 전혀 나지 않은 토끼는

그의 친구 너구리에게 칭얼대고

하늘의 메신저, 비둘기들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뻔하게도 너구리는 토끼를 토닥여주고

비둘기들은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토끼는 쫄래쫄래 집으로 떠나갔습니다.

결국, 토끼만 바보가 된 셈이네요.


---

-거북 사마엘의 먹잇감이 된 수많은 들짐승들보다야 낫겠죠?


#3.

개미에 대한 축문


애잔하다.

더운 바람에 쓸리며

오늘조차

굴 밖으로 나온

묵묵한 개미야

그런데 오늘에 와서

두발 거인의 장화발에 찍혀

아스팔트 위에 너는 참 조용하구나

너에겐

집과 양식과 피붙이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어느것도

널 반기지 않는구나

이제 너를 그리는 젯상 삼아

빗물 한 스푼에

과자 한 부스러기

부러진 마음이라도

한 움큼 담아두고 가거라


#4.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만물을 다스리시며, 이 세계를 창조하신 그 분,

창공과 대지를 주관하시는, 온 우주의 주인되시는 분,

천주이신 성부시여, 아버지이신 전능의 주여,

키리에 엘레이손 - 자비를 베푸소서.


이사야와 베르길리오가 예언하신 그 분,

다윗의 별이시며, 거룩하신 구세주,

가시박힌 성심과, 부활 승리의 빛나는 검의 주인 되시는 분,

천주이신 성자시여, 성부의 유일자이신 평강의 주여,

키리에 엘레이손-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갈길을 인도하시고, 은총의 역사를 직접 드러내시는 분,

갈릴래아의 거룩하올 비둘기시여, 영광스런 은총의 빛,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시는 사랑의 영이시며, 천국 날개의 주인 되시는 분,

천주이신 성령이시여, 성부와 성자의 영이신 은총의 주여,

키리에 엘레이손- 자비를 베푸소서.


- 인 노미네 빠뜨리스, 엣 필리이, 엣 스피리투스 상티. 아멘.


#5. 

어머니 달


즈믄 겁의 외로움에 한이 맺히던가요,

달님이시여

짝 잃은 해오라기 구슬픈 밤에도

요정이 춤을 추는 즐거운 밤에도

나그네 죽어가는 비열한 밤에도


그 무수한 밤자리에 당신이 있었는데도,

조물주의 아리따운 선녀여,

그리고 외롭던가요


-

적막의 우주에 떠도는 화상 혜성의 추파에도

멀리서 불타며 빛나는 왕자 태양의 강압에도

그리고 내 그리도 사모한 도령 지구의 미소에도


나는 항상 겉돌 수 밖에 없었지


단 한번이라도

저 은하수를 이불 삼고

저 성운을 베개 삼아

성화원(星花園)의 꿈을 꾼다면 좋으련만


다시 가련한 자식들을 위해

조석의 노를 저으며

해와 날과 때와 징조를 알리는

울퉁한 박색 지구의 신부

내가 바로 달이라네


#6.

크론병


배가 차가웁게 아프다.


차가운 배에 손을 얹는다.

차가운 배는 조금 따스다.


손을 떼고-다시 펜대를 잡으니

배가 다시 차가웁다.

언제쯤 이 고통에서 나을까.


#7. 

성 요셉의 시


나자렛 작은 동네

마을 어귀에 목공소 세워두고

너와 나는 나무를 깎고

네 엄마는 군불을 지피지

식사 시간이 되면

너의 아버지이고 나의 신이신

아도나이(Adonai)께 찬송을 부르고

단란히 먹을 적에

넌 참 의젓했지.


하나를 이르면 백을 이미 알고

나무 한 토막을 대해도

항상 정성을 다하는

듬직한 내 자랑 그리고 희망

그리고 유일한 나의 구원자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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