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굴에서노숙할래 [893606] · MS 2019 · 쪽지

2019-08-18 00: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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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굴의 알F신잡]- 2. 일본의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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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PC가 가독성이 좋습니다.


이전 1편 (마약과 경제학)도 찾아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숙굴입니다.


알F신잡 시즌 2입니다.


첫 칼럼을 올린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 호로요이가 매우 땡겨서 -이 시국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에서 호로요이를 구매하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편의점 아주머니가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시더라구요.


정말 훈수를 두고 싶어하시는 눈치이셨습니다.


이게 그 업계포상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요?








불매운동이 한창입니다.


전 일본의 산업규모와 기술력, 1억 2천이 넘는 내수시장과 경제력을


과연 불매운동으로 꺾을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불매운동의 관점에서도- 즉 경제 전쟁을 하는 입장이더라도


지피지기 백전백승이지 않겠습니까?


즉, 본인이 싸우려는 상대를 알아야 싸움에 승산이 있겠죠.


물론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저같은 분들은


오징어 씹으면서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때로는 한국 남자들의 밤동무가 되어주기도 하며







세기의 명화를 만들어내는 국가이기도 하고





심심하면 노벨상을 타가는 국가이면서도






정치 체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각설,


오늘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를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사회문화를 배우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사회의 구분에는 '국가사회'와 '시민사회'가 있습니다.


용어의 어폐가 약간 있지만, 국가사회는 대부분 정부로 대표되는 '위'에서부터의 사회적 작용을,


시민사회는 '대중'으로 형상화되는 '아래'에서부터의 사회적 작용을 뜻합니다.





'근대화 이론'과 '종속이론' 이라는 논의가 있습니다.


근대화 이론은 대충 선진국이 "개도국도 우리 따라하면 잘할수 있엉~ㅎㅎ" 하는 논리고


종속이론은 선진국을 '따라했음에도' 실패한 개도국이 "그거 아니잖아 뭐야야1발돌려줘요" 하는 논리.




(근대화론의 대가인 로스토도 피해가지 못한 머머리)




이 이론들이 같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분류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선진국과 개도국의 분류죠.


보통 이러한 논의에 익숙치 않은 분들은 세계 모든 국가들을 '선진국' 과 '후진국'의 이분법적 카테고리에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모든 종류의 국가를 포괄하기 힘들죠.




그래서 저 이론들은 국가를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선발선진국: 기존의 '원조' 선진국들. 미국, 영국, 프랑스로 대표됩니다.


후발선진국: 19, 20세기를 거쳐 '늦게 출발한' 현재의 선진국들- 독일, 일본이 특징적입니다.


신흥공업국: 20세기에 빠른 공업화를 이루어낸 국가들입니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도 하죠. 


한대홍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공통점이 있다면 네 국가 모두 개발독재의 시대를 겪어봤다는 것이겠죠.


개발도상국: 신흥공업국보다 경제 발전 수준이 미약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일본이 '후발' 선진국이라는 점에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발선진국의 특징이 있다면, 이들은 '시민혁명'을 그 어느 국가들보다도 빨리 겪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등을 필두로 해서 말이죠.


시민혁명의 대가는 당시에는 치명적이었지만, 이후에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데 좋은 거름이 됩니다. 때문에 선발선진국의 대부분 국가들은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죠.




반면, 후발선진국은, 근대화가 '시민혁명'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발선진국들이 '아래에서부터의 혁명'을 겪었던 공통점이 있다면, 일본과 독일은 '위에서부터의 혁명'을 겪었다는게 공통점입니다.


즉 하향식 의사결정, 위에서부터의 개혁이죠. 각각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됩니다.




(아 근데 얘 진짜 개못생겼다)




이러한 역사가 이 국가들에게 -특히 일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네. 현재 일본은 시민사회가 거의 없는 나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본의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시위 없는 나라"죠. 혐한시위와 집값 시위 빼고는 일체 시위라는걸 찾아볼 수 없는 국가입니다.





사실 이 일본도 시위가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6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보죠.


당시 일본은 패전국이었고, 미국의 말에 의하면 당시 미군 수뇌부는 정말로 일본을 '농업국가'로 바꿔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이 연이어 발발하면서 일본이 '극동아시아의 병참기지화' 되어버리는 뜻밖의 일이 발생하죠.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전쟁으로 인한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게 됩니다.


혹시 '전공투' 라는 단체를 들어보셨나요?






'전학공투회의' 의 줄임말입니다.


이 단체가 무슨 듣보잡이냐 여쭈시면,


당시 일본 전체 대학생의 2/3이 참여한 대규모 대학생 연합집단입니다.


'전(ALL)학' 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규모를 자랑하는 단체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명작 에니메이션 '인랑'의 한 장면입니다. 


투구에 써져있는 한자가 여러모로 전공투의 상징과도 같았던 "헬멧"을 떠올리게 하네요.


인랑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전공투 얘네들이 뭐하는 단체냐,


당시 대학생들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심리적 실향민과도 같았기 때문에


이에 평화헌법, 권위주의,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타도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고자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인랑' 에도 이러한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시민사회가 성장한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모양 이꼴이냐고요?


일본 역사중 단체가 패망하면, 그 원인이 열에 아홉번은 '내부분열' 때문입니다.





(유명한 자위대 성고문 짤.)


사실 자위대의 뻘짓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더욱 재밌는건 경찰과 자위대의 묘-한 라이벌 관계.


경찰이 자위대 차량에 주차딱지 떼고 벌금물리는게 일본입니다.




얘기가 조금 샜네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공투도 결국 내부분열로 망했습니다.


60년대 말 들어서 슬슬 망테크를 탔던 전공투였지만


늘 그렇듯 안그래도 망할것 같은데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바로





"아사마 산장 사건"


당시 전공투에서도 아~~~~~~~~~~~~주 아주 왼쪽에 있었던 '적군파' 얘들이 일으킨 사건인데,


전공투가 망테크를 타기 시작하던 69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업고 등장한 적군파는




급기야 1972년 2월 후에 아사마 산장 사건이라고 불리게 되는 인질극까지 벌이고 맙니다.







범인 중 한명인 사카구치 히로시라는 사람(왼쪽 위 산탄총을 든)




당시 전국에 연합적군(적군파의 후신)에 대한 체포명령이 떨어져 도피행각을 벌이던 이들은


산에서 조난을 당하고, 아사마 산장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관 관리인 아내를 인질로 삼고 무작정 인질극에 돌입해버림.



당시 일본 경찰도 상황이 매우 아 ㅋㅋ 했던게,




방탄모랍시고 가져온건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헬멧에 페인트칠만 한거였고,


방탄방패도 없어 일반 시위용 방패 두개를 덧대서(방탄성능은 0에 가까움) 무리한 진압작전을 시행.


결국 경찰 2명 순직, 1명 중상.




당시 연합적군이 사용하던 총기.


이 진압작전은 NHK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 되어버렸고


89.7%의 최고시청률을 찍은 당시 뉴스는 일본 방송계에서 전무후무한 방송 시청률을 기록.




그런데 연합적군의 상황은 더욱더 가관인게


'총기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 고 동료 살인(실제로는 본인이 관리 못한거)


'지도부의 뜻에 반기를 들었다' 고 동료 살인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 연애했다' 고 커플 살인


뭐 아사마 산장 내부에서도 내부분열이 오지게 일어나는 중이었나 보네요.




어쨌든 전 일본에 충격을 준 이 사건 이후로


여러 단체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던 전공투 입장에서는 각자 손절을 해야만 정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고 살아남기 때문에


너도나도 손절릴레이를 달리기 시작, 결국 일본 운동권은 와해됩니다.




아사마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진보세력을 와해시킨 결정타를 날린 이벤트였으며


일본의 시민사회는 진보세력의 기반이 매우 컸던 바,


72년 2월 이후로 일본의 시위와 시민사회는 몰락의 길을 걸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는 '55년 체제'로 불리는 일본의 1.5당 체제에 대해 연재할 예정입니다.


Please stay t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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