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무조건올해간다 [868792]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19-07-28 12:36:02
조회수 13,292

오늘 최악의 빌런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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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T 클리어 모의고사 일요일 오전 대찬학원.

인원이 많아 사람들은 꽉 차고 책상은 거의 딱 시험지 들어갈 정도.

시험이 시작되고 나에겐 악몽이 시작되었다.

빌런 중의 빌런, 그 모습은 마치 나폴레옹과도 같았다.

오늘은 그를 기리는 위인전을 쓰려고 한다.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시험지를 오른쪽으로 밀며 내 시험지의 절반을 자기 시험지로 덮어버리는 끝없는 정복욕의 소유자.

넘어오지 말라고 그의 시험지를 밀치자 자신의 팔로 시험지를 고정시킨 후 다시 오른쪽으로 밀어버리는 강경함.

내가 팔꿈치로 그를 왼쪽으로 보내려 저항해 봤지만 그럴수록 그는 점점 더 오른쪽으로 자신의 시험지를 밀었다.

이윽고 내 시험지의 70%가 그의 시험지로 덮였고 완강히 저항했지만 끝끝내 그의 무력에 감탄하며 굴복해버린 나는 체념해버렸다.

그냥 시험지를 들고 암산으로 끄적끄적 대충 풀면서 나는 내 책상 위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그의 풀이를 이따금씩 감상했다.

그러자 내가 그의 완벽한 풀이를 훔쳐본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그는 내 책상 위에 머리를 갖다 대고 왼손도 동원해 자신만이 볼 수 있도록 하였고 나는 어떻게 남의 책상에서 그런 행위를 너무나도 당당히도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그런 그가 보여준 진정한 독재자의 모습을 향한 경외심을 한없이 키워 나갔다.


그의 연필은 마치 전장에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총소리와 같아 한없이 스타카토를 반복했으며 그의 지우개는 마치 적을 향한 용감한 도발과도 같아 그가 풀이를 지우면 그 위엄이 마치 땅이 흔들리는 것인지 하늘이 흔들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책상을 초당 약 2만회씩 흔들어 시험지의 글자들이 봄의 왈츠를 추는 것 같으니 이를 똑바로 읽을 수 있는 자는 천하에 없더라.

그는 자신의 무용을 뽐내듯 마지막에 풀고 있던 30번을 시험이 끝난 뒤에도 아쉬운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몇번 흔드시더니 깨달음을 얻은듯 돌연 연필을 들어 제갈공명의 대계를 뛰어넘을 말도 안되는 풀이를 적으시니 답이 당연히 틀리게 나왔음에도 자신의 풀이가 어디가 잘못 됬는지 모르는 까닭에 자신이 정답을 맞췄을 것이라 생각해 매우 흡족해 하시며 자신은 100점이라는 듯이 좌우를 둘러보시니 우측에 있던 내 시험지에 답 밖에 안 적혀 있는걸 보시고는 비웃더이다.

제국주의의 끝에는 결국 쇠퇴와 몰락이 있었으니 그렇게 열심히 풀어놓고도 시험지에는 비가 쏟아지더라. 어떻게 하면 시험지에 한 글자도 안 적고 체념한 체 시험을 본 나보다 못 볼 수 있는지 매우 의아해 했지만 깊게 생각해보니 이는 군주로써 백성들을 배려해 자신의 점수를 희생해 가며 평균을 낮춰 민생의 안정을 도모한 것일지니 그 모습이 하늘의 태양과도 같이 찬란하게 빛나더이다. 장렬히 전사한 그는 시험이 끝난 후 해설 시간 그리고 지금 현재 진행중인 수업 시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자신의 위대함을 떨치시니 그 위대함에 혼미한 나는 진지하게 그를 살인해 더 나은 곳으로 보내 드리고 싶은 충심이 가득해 졌나이다.

rare-크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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