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827817]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01-20 00: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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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써보는 삼반수 후기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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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진지열매 주의 엄청 김



여기서부턴 이 글을 쓴 본격적 이유이자, 이 글의 핵심이다.


살면서 다들 죽을만큼의 열정을 쏟아붓는 때가 몇 번씩은 온다고 한다. 나는 그게 이번 수능준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수능을 두 번이나 쳤지만 두 번의 수능은 전부 내가 아니라 남의 시선을의식해서였다. 옛날부터 완벽주의와 승부욕이 강했던 내게 좋은 학벌이주는 시선과 충족감, 그리고 만족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하지만 이번만은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실패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기 위해 달려들었다.




우선 자는 시간자체를 줄였다. 24시간 독서실을 끊었으면 그걸 십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씻고, 밥먹으면서 EBS 연계집을 읽었다. 밥 먹고 10분 거리에 있는 독서실을 가면서 아랍어 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독서실에 도착하면 열두시 십분까진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공부만 했다. 열두시 십분인 이유는 수능 점심 시간이 10분부터라서. 처음엔 밥 먹을 시간정도만 쉬려고 했는데 사치란 걸 깨달은 뒤론 밥 먹을 때 인강을 들었다. 그것도 집중력이 분산되자 10분만에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걸로 도시락을 싸달라 했다. 볶음밥, 비빔밥, 죽( 마시면 되서 제일 빠르다 ) 같은 것들. 


화장실 갈 때도 아랍어 단어장을 들고 갔다. 나한테 정규공부시간을 써서 제2외국어를 공부할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무조건 자투리시간에 복습을 끝내야 했다. 열두시 반부터 일곱시까지도 공부만 했다. 힘들다,지친다, 좀만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한 시간조차도 없었다. 불안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시간의 압박은 상당했다. 당장 해야할 것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일곱시부터 일곱시 이십분까지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한시까지 공부를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1분 1초가 아까웠다. 인강을 듣거나 문제집을 풀 때도 한 순간도 딴 짓하거나 멍때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딴짓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 나중에 한 번 더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니까.

온 머리를 써서 초집중하면 열시간만에 지쳐 나가떨어진다던데 나는 그 상태로 열일곱시간을 밀어붙였다. 한시에 독서실을 나와 집으로 걸어올 땐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걷기도 힘들었던 듯. 원래 불면증이 굉장히 심한 편인데 이 시기엔 불면증? 그게 뭔데? 들어와서 씻고 누우면 1분만에 잠들었다. 그리고 또 다섯시 기상.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한 그 새벽이 내게는 제일 우울했다.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니 몸에 이상신호가 오더라. 처음 신호는 당연히 잠. 애초에 잠이 정말 많은 편이었는데 하루에 세시간밖에 못 자니 몸이 못 버티기 시작했다.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도 눈꺼풀이 자동으로 감겼다. 자꾸 조니까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원래 불면증이 심해서 커피는 입에도 안 댔는데 아메리카노를 먹어봤다. 안 깨니까 에스프레소로 먹었다. 그래도 안 깨니 투샷. 안되니까 쓰리샷. 그래도 안 깨면 한 잔을 원샷하면서 하루에 대여섯 잔 넘게 마셨다. 근데 그거 앎? 커피 많이 마시면 몸상태가 아작난다. 울렁거리고 토나오고 머리도 아프고 카페인 부작용인지.. 결국 화장실가서 토할 정도였는데, 토하고 나면 잠이 깨서 그것마저도 좋더라. 문제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걸 다 해봤다. 샤프로 허벅지를 찌르거나, 이지영처럼 생커피라도 씹어보던가, 그것도 안 되면 일어나서 까치발을 들고 했다. 내가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가도 죽을날 카운트다운처럼 디데이가 줄어드는 걸 보면 다시 초조해졌다.


그리고 다음 이상신호는 손목이었다. 너무 무리하게 쓴 건지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잘시간도 없는 주제에 병원을 어떻게 가겠는가? 시큰거리는 건 무시하고 그래도 힘들면 진통제 먹어가면서 버텼다. 그러다보니 통증이 점점 심해지다가 연필 들기가 힘들어서 그제야 병원에 갔다. 의사가 손목이 이렇게 신호를 보낼 때까지 뭐했냐고 방치해서 고질병 되버렸다고 막 화를 냈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오른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오른손으로 문도 못 연다. ㅠ



그렇게 공부했더니 다행히 한달만에 개념이랑 실전 문풀까진 한바퀴 돌릴 수 있었다. 집에서 6평 9평을 쳤는데 6평은 전체에서 세개를 틀렸고, (수학 두개 국어 하나) 9평은 하나를 틀렸다. (수학 하나) 뭐 집모의니까 수능이 모의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느니 망했다느니 등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당시에도 그 점수 받고 별 느낌 없었다. 그냥 어 다행이네.. 이정도? 다만 그때 채점을 하고 느꼈던 건 한만큼 나오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국수가 너무 쉬워서 불안했는데 역시 수능에서 통수침 아 ㅋㅋ





내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다 끝내고 집에 갈때 아니었나 싶다. 공부할 때는 바쁘니까 우울할 시간도 속상할 시간도 없다. 다 끝내고 집으로 혼자 걸어올때 눌려 있던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고 보면 될듯.손목은 잠도 깰 정도로 아프고, 이렇게 푸는데 오늘도 삼십번문제는 안 풀렸고 ㅋㅋ 해도해도 할게 남았고 왜 진즉에 안 했나 후회되고.. 내 청춘을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에 쏟아붓는단 느낌에 집에올 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근데 운 채로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한테 들키니까, 또 울었냐고 막 유난떨게 뻔해서 가라앉을 때까지 혼자 집 앞 공원을 몇바퀴고 돌았다. 그때가 제일 외롭고 죽고 싶었다.


누가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니니 누구 탓하며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귀찮다고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잠수타버렸는데 누구한테 말을 하겠는가? 가족들은 걱정할까봐 말 못하고. 그렇게 공원 도는 날이 늘어났는데 언제였지? 아마 10월 쯤에 벤치에 앉아서 우는데 누가 와서 음료수주면서 말검. 자기 맨날 이시간쯤 운동하러 오는데 왜 맨날 볼때마다 우녜서 ㅋ.... 쪽팔려서 그다음부터 거기 못 갔지만.. 그래도 팍팍한 반수생활에 잔잔한 감동을 주신 그분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뭐 그랬다. 그렇게 몇십일 살다 보니 수능날이 다가왔고, 수능을 쳤고, 망친 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지만 원점수가 안나온거지 비교적으론 잘 나온 점수였고.. 그래서 결국엔 대학에 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날 일으킨 것도 같다.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서. 내가 잘 될거라고 아무도 확신하지 않아서. 내 몸이 날 따라주지 않아서. 세상이 나를 짓눌러서 그럴 때마다 더 오기로 밀고 올라온게 아닐까 싶다. 


고난과 시련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그걸 버티면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때로는 상황에 절망하면서 걸어온 입시였지만 뒤돌아보면 무엇보다 많은 걸 남겼다.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내가, 하고싶은 게 생겼고 무언가를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단 것만으로도 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혹자는 삼수씩이나 해서 겨우 연대밖에 못 가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점수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앞으로 살면서 후회할 것 같진 않다. 그걸로 충분하다.

후회란 건 사람을 좀먹는 감정이다. 2년간 그 후회에 얽매여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 한문제만 더. 아니면 원서만 다른 데다가. 아니면 차라리... 차라리 차라리 몇 번을 속에서 되뇌였는지 모른다. 이제야 그 망령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

나는 이제 올해를 끝으로 입시판을 뜬다. 지겨웠던 인강, 독서실, 모의고사들까지... 미련없이 전부 버릴 생각이다.
입시는 나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빼앗았다. 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주기도 했다. 삼년의 입시를 하면서 참 많이 울기도 울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무언가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내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

이제 종지부를 찍는다.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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