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 문학) 인간실격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0157490

#
나는 그 사수생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사수생의 현역 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 열 아홉 살 전후로 추정되는 때의 사진인데, 짙은 고동색 교복을 입은 학생이 여러 문제집에게 둘러싸여(그 학생의 인강책, 기출문제들, 그리고 사설 실모들로 생각된다.) 독서실 책상에 앉아 샤프를 왼쪽으로 삼십 도쯤 갸우뚱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다. 보기 흉하게? 그렇지만 둔감한(엔수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나가는 말로 "대단한 우등생이군요."라고 적당히 사탕발림을 해도 그것이 괜한 공치사로는 들리지 않을 만큼은, 말하자면 통속적인 '우수성' 같은 것이 그 학생의 웃는 얼굴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엔수에 대한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뜻 보기만 해도 금방 몹시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정말 섬뜩한 학생이군."하고 송충이라도 털어내듯이 그 사진을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학생의 웃는 얼굴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섬뜩하고 으스스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애당초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학생은 전혀 웃지 않고 있다. 그 증거로 학생은 양손을 꽉 쥐고 앉아 있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엔수생이다. 웃고 있는 엔수생이다. 그저 보기 싫은 주름을 잔뜩 잡고 있을 뿐이다. '주름투성이 우등생'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만큼 정말이지 괴상한, 왠지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괴상한 표정의 수험생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두 번째 사진 속의 얼굴. 이건 또 깜짝 놀랄 만큼 변해있다. 후드 차림이다. 재수 시절 사진인지 삼수 시절 사진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대단한 우등생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이상하게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후드 왼쪽 아래에 있는 주머니에는 하얀 지우개를 꽂고 등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웃고 있다. 이번 미소는 주름투성이의 엔수생 웃음이 아니라 꽤 능란한 미소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인간의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걸린다. 피의 무게랄까 생명의 깊은 맛이랄까. 그런 충실감이 전혀 없는, 새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겉멋이 잔뜩 들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경박하다고 하기도 그렇다. 교태를 부리고 있다고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반수생이라고 하는 것도 물론 부적합하다. 게다가 자세히 뜯어보면 의대 급의 성적을 가진 이 학생한테서도 역시 어딘지 엔수 비슷한 섬뜩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상한 수험생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다. 이제는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다. 머리는 희끗희끗하다. 그런 남자가 몹시 더러운 방(방 벽이 세 군데 정도 허물어져 내린 것이 그 사진에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작은 태블릿에 시선을 맞추고 있는데, 이번에는 웃고 있지 않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 말하자면 쭈그리고 앉아 태블릿에 시선을 맞추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 사진에는 얼굴이 비교적 크게 찍혀 있어서 그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는데 이마도 평범, 이마의 주름도 평범, 눈썹도 평범, 눈도 평범, 코도 입도 턱도...... 아아,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조차 없다. 특징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나서 눈을 감는다 치자. 나는 이미 그 얼굴을 잊어버렸다. 방 벽과 작은 태블릿은 생각나지만 방 주인의 얼굴은 입시가 스러지듯 사라져서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합격이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다. 지잡조차도 안 된다. 눈을 뜬다. 아아, 이런 얼굴이었지. 이제 생각났다. 이런 기쁨조차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뜨고 사진을 다시 봐도 생각나지 않은 얼굴이다. 그저 무턱대고 역겹고 짜증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을 돌리고 싶어진다.
소위 '죽을 상'이라는 것에도 뭔가 좀 더 표정이라든가 인상이라든가 그런 것이 있을 텐데, 사람 몸뚱이에다 노량진 장수생의 목이라도 갖다 붙이면 이런 인상이 되려나? 어쨌든 딱히 무엇 때문이랄 수도 없이 보는 사람을 섬뜩하고 역겹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묘한 얼굴의 수험생을 역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아마 귀여운 봇치쨩 이런거 달리겠지?ㅎㅎ
-
아니 언매 미적 지구 개념인강 들어야하는데.. 그럼 인강 듣지말고 독학하란 말임??
-
재수생한테 대가리가 아직 안깨져본 현역입니다... 내신은 2점대에서 2학년 2학기때...
-
센츄 프사 공유 0
-
그때 감성이 나랑 잘맞았어서 그런가
-
대학교 교양의 낭만 끝판왕 인문학 수업
-
깁스하고 휠체어 탄 채로 짝녀한테 가서 인사하면 많이 당황스러워하려나 친하긴함
-
하도 오르비에서 아이고 이러고다녀서 그거 그대로 카톡이나 인스타에서도 사용하는중 ㅋㅋ
-
88에서 69.8로 재탄생했다 모두 축하해줘
-
기본카메라 박으니까 피부잡티가 너무많네 포기!
-
댓글 단 사람 프사랑 닉넴 직접 써서 인증해드림 선착 10명
-
할복하실분
-
사실 옯창이 아니라서 이미지 적을거 없을 듯
-
이거 일도 될까 이거 이도 될까 이거 삼도 될까 이거 오도 될까 ㅈㅅ
-
아쿠아디파르마 오스만투스 꽃향기가 살랑살랑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는 봄에 뿌리기 딱 좋음
-
이거 사도 될까 3
-
올해 미적 27 4
난이도 어느정도였나요?
-
ㄹ 9
-
제 지역은 과외 수요가 똥망임요... 과외 학부모님과 연락이 돼도 원하는 금액대가...
-
항상 댓글 10개를 넘겨본적이 없다.
-
(들어본적 없음)
-
글씨 인증) 9
악필 인증
-
이렇게 살기 싫은거겠지.
-
딱히 죽고 싶지도 않아서
-
ㅇㅈ?
-
내년 의대 증원 1
어떻게 될까요? 충북 원관 울산 불인증 받은데다 다른학교도 말이 인증이지 실제로...
-
살기싫다 11
그냥 이번에 눈 감고 다 해결되면 눈 뜨고 싶다
-
여기 덕코라는거 3
현질로도 충전되는거임?
-
07 현역이고 자이 수1, 수2 하고있습니다. 스블 듣고 싶어서 그러는데 자이랑...
-
에효 부럽다 커플 ㅗㅗㅗ
-
글씨 인증 1
-
작년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공대가는게 목적이여도 과탐 실력 부족하다 느끼면...
-
ㅇㅇ
-
수학 머리 0
고1 1학기 4 2학기 4에서 고2 1학기 1컷에서 2갠가 3갠가 찍어서 1등ㅋㅋ...
-
내가 쓰면서도 의문감이 생김 왜쓰는거지?
-
글씨 ㅇㅈ 11
ㅍㅎㅎ
-
다들 잘 살구나 2
멋잇는사람들
-
지하철게임 특 3
없는 역 말하거나 다른 노선 역 말해도 대충 넘어갈 때가 있음 근데 그거 아닌데...
-
언제감 보통
-
안녕하세요 반수하면서 믿고있었던 국어와 과탐에게 수능 날 뒤통수 맞고 폭망해서...
-
새터 감뇨 ㅎ
-
똥테를 달고싶어졌음… 11
강등 고고
-
후회된다 11
새터 지하철게임 하는데 남들은 1 2 6호선 외치는데 나는 신분당선 외쳤음...
-
도와주세여
-
글씨 인증 2 3
그러하다
-
제목 그대로입니다. 이원준t 독서 커리 타면서 수특 공부용으로 전형태t 나BS...
-
혹시 제게 파테를 달아주실 천사분들 계시나요....?
-
뭐가 있죠
-
문구말고 얼굴만 봐주세요
선추후 감상
펌글입니당. 원작자 허락맡고 펌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