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범 [367856] · MS 2017 · 쪽지

2018-11-18 09: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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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망친 2010년 11월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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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망친 2010년 11월의 나에게.




1. 


청소년사범아! 요즘 힘들지 많이?


그 점수가 네가 수능에서 받을 점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수로 가고 싶은 대학 가기 힘들 게 뻔해서, 힘들지?




2. 


'죽고싶다'고도 생각했지..?


근데 있잖아


사실 너는 죽고싶은 게 아니라 그냥 딱히 왜 사는지 모르겠는 거야

목표와 방향을 잃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 거, 

그건 죽고싶은 것과는 조금 다르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3. 


그래서 너한테 지금 내 말이 귀에 안 들리겠지만 인터스텔라에서 열심히 외쳐보듯 간절히 말할게.

혹시라도 나중에 내 말이 들릴 수도 있으니까 스크랩이라도 해두고,

기억에서 다시 떠오른다면 꼭 다시 와서 보렴.




4. 


패기있게 정시파이터였던 너는 논술 쓴 곳도 1곳밖에는 없었지..ㅋㅋ

상황이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는 거 나도 알아.


그래도!!

그 한 곳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보렴.


싸우기도 전에 미리 지는 것은 정말 아니야...




5. 


논술마저 끝나면 넌 진짜 할 수 있는 게 다 끝난 거야.

전혀, 기쁘지, 않겠지만,

네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없단다.



6. 


수능 성적표 나올 때까지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아.

혼자 놀아도 좋고.



그리고말야

수능 성적표 나오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원서영역 공부해서 원서 넣어.


원서영역 공부까지 짜증난다는 거 알아.

그래도 만약에 네가 재수하면

그 공부가 도움이 돼.


좀 재수없는 이야긴데말야

이번에 만약에 그냥 원서 던지면


그리고 재수때 또다시 수능 망치면,

사실상 '처음' 해보는 원서영역 앞에서 막막해진단다.

나는 그랬어...ㅎㅎㅎ



7. 


앞서 말했듯,

논술 보고 수능 성적표 나올 때까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래, 다 괜찮은데ㅡ

절대 혼자서 수능 곱씹으면서 인생 다 끝난 것마냥 미친듯이 우울해하지만 마.

그거 나쁜 습관이고,

모든 나쁜 습관들이 그러하듯, 꽤 오래 간다?

되게되게 안 좋아.




8. 

너, 내가 7번처럼 말해도 안 지킬 거 다 알아 ㅎㅎ

너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

기운내라는 내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거 알아.



9. 

그치만, 강해져.

돌이켜보면 그 시간, 참 아깝다.

쿨하게 훌훌 털고 

우뚝 다시 일어서렴.



10. 

사실 나는 그 이후로도 큰 삶의 시련을 몇 번 겪었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치만, 지나가면 그것들 모두 다 작게 보여.

그 당시에는 정말 거대해서 숨이 턱 막히고 왜사나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나중엔 다 작게 보인다고.

믿어봐.




11. 


확실한 건, 지금 당장은 힘들다는 거. 

그리고

그걸 어쩔 수는 없다는 거.




12. 


다만, 나는 너보다 좀 더 늙어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가 조금은 작게 보이게 되고,


네가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조금은 노하우를 알고 있어.


프로 실패러(?)의 팁을 믿어봐.



그게 뭐냐면...




13. 


너 지금 스스로가 불효자라고 생각하잖아...?


불효 좀만 더 해.


제정신이냐고? 응 제정신이야~


원래 큰 불효에서 작은 불효 조금 더해도 티 크게 안 나 ㅋㅋㅋㅋ...




14. 


부모님께 돈을 타서 당장 운동 등록해.

근데

이 시점에서 네가 그런 행동 하면, 오히려 부모님께 효도다?

뭔말인진 해보면 알거야.




15. 


너란 인간, 집에서 공부하기 참 힘들었잖아. 집중도 안 되고. 

그래서 학원도 가고 독서실도 굳이 돈 내서 갔잖아.

그니까 운동도 조금 강제성을 부여하자 이거야.

땀흘리는 운동을, 

어디 도장이라도 등록해서 하도록 해. 꼭.




16. 


헬스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하는 운동도 좋아.


중요한 건 거기에 몰입할 수 있고, 땀 흘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17. 


이게 100% 효과가 있다고 보장은 못해.


그치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널 구원해줄 수 있고,


그게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아픔은 지나가 있어.


적어도 힘들 때, 이것만큼 내게 효과적인 것은 없더라.



18. 


운동이든, 다른 것이든 네가 몰입할 새로운 것을 찾아.


사실 몇달 후에 정신차리고 시작하는 거 아는데, 

난 그 시기가 좀 더 빨랐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오지랖을 부려봤어.




19. 


입시에 미련이 남는다면 재수를 할 수도 있겠지.




20. 


지금의 너에게는, 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해.


나는 그 가능세계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선택하고... 


그렇게 수천만 가지의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21. 


지금 너의 눈에 보면, 


결국 재수도 하고, 


결국 원하던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결국 방황하다 군대에서 폭삭 늙고, ㅎㅎㅎㅎ


결국 인간관계도 힘들어하고,


결국 네가 계획한 큼직한 일들이 모조리 실패한,


그런 가능세계만을 걸어온 내가


나중에 너의 현실세계가 될까봐 숨이 턱 막힐 수 있겠구나.




22. 


청소년사범아! 그치만!


지금 나에게 인생 롤백 버튼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버튼을 누르지 않게 할 만큼


사이사이에 괜찮은 일들도 참 많았단다.




23. 


네가 날 정신승리자로 여겨도 상관 없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괜찮은 일들 있지?


실패의 아픔을, 잘못된 선택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24. 


원래 인간은말야

알면서도 실수하고 

했던 실수 똑같이 또 하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간혹 처음부터 똑똑하고 실수 안 하는 사람도 네 눈에 보일 수도 있어.

정말 완벽에 가까운 0.000000001%의인간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네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고민이 있을 거야.

인간 사는 게 그렇더라~ㅋㅋㅋ 고만고만해.

너무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 되게 다 산 것처럼 얘기하네... 극혐이다ㅋㅋ




25. 


그런 의미에서 너는,

앞으로 다음 구절을 참 좋아하게 될 거야.




26. 


Don't bother just to be better than your comtemporaries or predecessors,

"Try to be better than yourself."


또 실수해도 괜찮아.

네가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믿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전의 너보다 나은 사람인 것은 확실하고,


'내가 적어도 전보단 나아졌다'는 소소안 위안이

앞으로 계속 살아갈 힘을 줄 거야.


그니까, 희망을 가져도 좋아.




27. 


지금 힘내기 참 어렵겠지만, 힘 내!

논술 잘 하고!

원서영역도 포기하지 말고! 그 해 빵구 뚫렸다~^^ 폭발도 많이 일어났고!ㅋㅋ

혹시 알아? 잘 풀릴지.




28.


아, 참고로 난 재수했는데도 망했어!

만약에 네가 내 말이 들리고 뭔갈 좀 알아먹었다면

역시 뒷북이지만, 학생들 가르치며 느낀, 재수 망하지 않는 방법들 이야기해줄게.


참 무책임하지만

내가 선생으로서 학생들 100% 성공은 못 시켜도

이러면 재수든 N수든 열에 아홉은 수능 실패한다는 말은 자신있게 해줄 수 있어.



그게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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