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X가리 노베 재수생 9평 모교 접수 후기(긴글주의, 재수생 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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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수요일, 오랜만에 모교에 다녀왔다.
아빠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땡볕으로 걸었다.
손에 들고 있는 비타오백이 하필이면 눈에 띄는 주황색인게 원망스러웠다.
선생님 한 분이 차 안에서 나를 힐끔 보셨다. 난 시선을 피했고,
선생님의 피해 시선을 둔 곳에는 후배들이 있었다.
졸업생 치고는 수수하게 온걸보니 재수생이겠거니- 하겠지.
본관동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지리 선생님께서 통화를 하고 계셨다.
선생님께서 뒤돌아 보지 않았으면 했다.
'3신데.. 애들이 왜 매점에..
아 20분 쉬는 시간이구나
2층에 보건실, 학생부.. 애들 더 많이 돌아다니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다'
빨리 들어가야하는데.. 빨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
오랜만에 오니 낯설어서? 재수생이기 때문에?
글쎄..
ㅡㅡㅡ
비타오백 박스.. 필히 졸업생이리라 생각하셨는지
지나가던 선생님께서 먼저 물어봐주셨다.
"어느 선생님 찾아뵈러 왔니?"
- 아.. 김ㅇㅇ 선생님이요
선생님의 웃음만큼이나 문도 활짝 열어주시면서
"김ㅇㅇ쌤! 졸업생 왔어!" 하고 교무실에 외치셨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두 분께서 동시에 일어나시며 날 반기셨다.
이제 막 내 음료수 박스를 받으신 선생님들께서 날 둘러싸고는
살이 빠졌다, 학원은 어디 다니냐, 시스템은 잘 돌아가냐, 공부는 잘 돼가냐 -
나는 물음에 한참 답을 하고 있는데,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반대편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
아마 서성한 중에 하나를 갔더랬지.
ㅡㅡㅡ
먼저 고2 때 담임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재수학원 욕이 하고 싶었다.
선생님들이 말을 얼마나 험하게 하는지, 학원 시스템이 얼마나 거X 같은지.
3년 내내 공부 안한 것에 대한 후회,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수업 수준, 애들 수준이 얼마나 높았던 것인지,
그래서 나에게 학교이름이 얼마나 무거운지.
낱낱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하나 얘기를 시작하면 목소리가 떨릴까봐
애꿎은 엄지 손가락의 굳은 살만 뜯으면서
허허- 하는 웃음 그리고 정적.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제 선생님께 투정 부릴만한 고등학생도 아닌걸..
언제나처럼 선생님은 좋은 말씀과 팩트를 적절히 섞을 줄 아시는 분이었다.
따뜻하고 엄마 같은 분, 여러모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고2때 생각나네. 내가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잖아! 후회한다고!
으이그~ 내가 붙잡아 놓고 공부 시키려고 했었는데.."
- 하하 자기가 안하면 소용없는거죠
"그렇지 후회해도 소용없어 올해는 수시를 쓸 것도 아니고 딱 공부에만 집중해"
"그리고 9월 성적표는 내가 프린트 하니까,
내가 딱 뽑아봤을 때 내 손 위에 좋은 결과가 나와있게,
이제 몇 달이야, 7월.. 8월.. 두 달 열심히 해!"
ㅡㅡㅡ
9평을 접수하러 잠시 1층 본교무실에 가니 창문 너머로 고1때 친구가 보였다.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한 명은 연고라인, 한 명은 중경외시 라인.
신분이 신분인지라 애들 학벌 밖에 안보이는군.
씁쓸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선생님께서 날 반기시는 것과 동시에,
"오! 쫌 수수하게 왔는걸?" 하셨다.
- 하하 저는.. 재수생이니깐요..
아 그래, 9평 신청을 하러 온거냐며 담당 선생님을 불러주셨다.
원서 접수가 이 글의 핵심이어야겠지만 사실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하나 기억나는게 있다면,
"XX기죠?"
하고 접수 담당 선생님께서 내 기수를 물어보신 것.
본교 졸업생만 받으니 당연히 몇 기 졸업생인지 묻는게 맞지만,
이 꼴로 몇 기 학생이다, 라고 말하는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 학교 졸업생이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생각했다.
나는 이 학교 대입실적에서 기타로 분류되는 하자있는 인재라고.
내가 재수를 하면 중복합격한 친구들이 내 자리까지 메꿔줄거라고.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이 학교에 돌아올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ㅇㅇ고의 자랑이 되어 돌아가자.>
내 플래너 가장 앞 장에 네임펜으로 쓰여있는 말이다.
서울대에 합격해도 합격생도 너무 많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플랜카드조차 걸지않는 학교인데,
모교의 자랑이 되려면 얼마나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걸까.
바뀐 것 없는 지난 반년을 다시 떠올리며
꿈에서만 명문대생인 나를 비웃으면서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ㅡㅡㅡ
이번엔 고3때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여전히 귀여우시고 몽글몽글하신 분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연락을 부담스러워할까봐 못하셨다고,
이렇게 얼굴 보니 너무 좋다며 박수까지 치셨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재수하는게 심적인게 크지.." 하는 말씀을 하셨다.
- 뭐.. 다들 대학생이고..
"신경쓰지마. 쟤들은 그냥 대학생이고 쟤네만의 1년을 살아가는거야.
넌 너만의 1년에 집중하면 되는거고.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이 다른거야."
- 하하 제가 놀았던걸 어쩌겠어요..
하는 별 거 아닌 내 말에 깜짝 놀라시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마. 니 탓이라고 생각하지마. 넌 잘못한거 없어."
"너는 공부가 하고싶었는데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랬던거,
선생님도 잘 알아"
... 지금까지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가족마저 재수생인 나를
'남들 가는대로,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따라가지 못한 비정상' 취급했다.
참았던 눈물이 여기서 터졌다.
하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내 옆에서는 대학 술 문화 얘기, 옆 테이블에서는 예과 학교생활 얘기..
이 교무실에 있는 모두가 하하호호 웃고 있는데,
나만 울고 있었다.
"비참하다"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ㅡㅡㅡ
선생님이 업무로 바쁘신 것 같아 이제 슬슬 일어나려고 하니,
고2 담임 선생님께서 등짝을 한 대 크게 때리셨다.
오랜만에 맞아보네. 맨날 공부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면 맞고 그랬는데..
"으이고 왜 또 울었어~"
- 잘 우는거 아시잖아요ㅋㅋㅋ
선생님이 보고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눈물이 날까봐 별 말도 꺼내지 못하고 이렇게 가는게 아쉬웠다.
몇 번이고 두 분께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왔는데,
고2 담임 선생님께선 끝까지 따라 나오셔서는 내 뒤에 대고 뭐라뭐라 말씀하셨다.
뭐라고 하셨는지 잘은 기억이 나지않는다.
재수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왔기 때문에 주제 넘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다니던 학교인데,
재수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래도 괜히 ㅇㅇ고 졸업생이 아니라고, 넌 하면 오른다고.
언제나 주위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하는 모교가 괜히 미웠다.
심지어 아침에 등원하기 위해 탔던 택시의 기사님조차
재수생이라고 했더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학교를 물어보시기에 ㅇㅇ고를 나왔다고하니
헉 그럼 서울대 가려고 재수하냐면서 이것저것 말을 거셨었다.
부담스러웠다.
내가 능력이 없으면 학교 이름은 다 쓸모없는데.
사람들은 왜..
다 미웠다. 내가 못난거면서.
고개를 숙이고 자꾸 새어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
뒤돌아보지도 않은채로 끄덕끄덕 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그 복도를 벗어났다.
선생님은...
그런 내 뒷모습을 계속 보고 계셨던건지,
내가 옆길로 빠지고 나서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자꾸 맴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걱정 담긴 외침이.
"ㅇㅇㅇ! 고개 들고! 울지 말고!"
(별 내용 없는데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 보신 모든분 9잘 수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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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번해에 재수하는 학생인데 특목고는 아니어도 설대가도 플랜카드 하나도 안걸리는학교인건 동일해서요..... 상담할때도 전부 설대연대고대가는데 저만 이상한 학교가서 재수하더군요..... 이글보고 미래가 보이는거같아 좀 걱정되지만 힘내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