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레 [662774] · MS 2016 · 쪽지

2018-05-08 08: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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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진로를 다 결정했어야 한다는 말만큼 비겁한게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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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시를 싫어했다.


중학생 때 난 그저 그네들의 말처럼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된다길래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고.

내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주어진 것을 하자.


그랬더니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수시 비중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하며

목표에 따라 고1부터 공부 외에 다른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학생부 잘 챙기란다. 나는 아직 뭐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많이 방황을 했다. 공부만 했고, 그 때가 되어서야 불연듯 이 길이 아닌 듯 싶었다. 내가 너무 구세대의 성공담만 들어버린 것. 그 세대는 이미 신세대들에게는 다른 성공담을 원하는 것인데. 원하기만 할 뿐 그들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잘하는 사람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2부터는 내신을 다 때려치고, 학교 수업도 거의 안 듣고 정시만을 보았다. 이 길만을 고집하는건 현 상황상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것은 그저 닥공밖에 없었기에. 그리고 고3 수능을 망치고, 재수, 삼반수. 이제야 고려대.


이리 된 지금도 난 그네들의 말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저 자신들의 목표를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니.


그래서 난 수시로 대학을 간 사람이 존경스럽다.

그들이 금수저를 물었거나 사탕발림이 담긴 허황된 말을 썼거나 하는 수시전형 특유의 불합리함이 여전히 팽배하다고는 하더라도 나는 그런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그런 자들만이 있는게 아니며,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설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대학 와서 눈으로 보았기에. 그런 사람에게 경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생각. 통학하다 아무 이유 없이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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