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면서 분석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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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번에 재수 후기를 올린 이후로 쪽지로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 생각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과외 수업을 할 때 실제로 제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견해는 견해일 뿐입니다.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아주세요.)
2017학년도 9월 모의고사 칼로릭 지문을 보겠습니다.
1문단을 봅시다.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잡을 만한 정보가 딱 하나죠. 굉장히 명확합니다. '열효율 문제'.
그 앞의 상황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열의 실체가 칼로릭이라고 믿어진다 → 이런 상황에서 열효율 문제가 관심사다'
정도로만 잡으시면 됩니다. '높은 쪽 → 낮은 쪽'(칼로릭 이동경로) 정보가 중요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1문단까지 읽었을 때는 그렇습니다.
2문단으로 넘어가시죠.
분명히 1문단에서 열효율이 중요하다는 주제를 끌고 지문으로 넘어왔습니다. 당연히 2문단에서도 '열효율'과 관련된 정보에 집중해야 합니다. 열효율의 정의가 바로 나옵니다. 이건 당연히 중요할 수 밖에 없죠.
'정의'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열효율'이라서 중요한 겁니다.
카르노라는 학자가 이에 대한 이론을 폈습니다. 칼로릭 이론에 기반했더니, 열효율이 온도 차이에만 의존한다는 결과를 도출한 것이죠. (편의상 '카르노의 열효율 이론 : 칼로릭 이론 기반 → 온도 차이에만 의존' 이라고 하겠습니다.)
3문단으로 가 봅시다.
줄이라는 학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열효율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네요.
이 '차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생각하면서 글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국어는 차이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열효율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보세요.
'흡수한 열의 양 대비 한 일의 양'
줄이 한 일당량 실험은 '열을 얻기 위해 필요한 각종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
무엇이 확연히 다르다고 느껴져야 합니다. 열효율은 열을 투입해서 일을 산출하는 것이고, 일당량 실험은 열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즉, 일당량 실험은 열이 산출되는, '결과'인 것입니다. 3문단 3번째 줄을 보면 '역학적 에너지인 일이...'라는 문장이 있죠. 다시 말하자면 일당량 실험은 '열을 얻기 위한 일을 측정하는 실험'인 것입니다.
!!!!!
정반대잖아요. 열효율과 실험의 목적이 정반대입니다. 이걸 잡아야 합니다...!!
그 결과가 등가성,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누구나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라는 것을 누구나 잡지는 못합니다. (제가 학생들을 5명 이상 가르쳐봤지만, 분석하면서 잡은 학생이 1명도 없습니다....)
4문단으로 가 보죠.
줄의 실험으로 인해서 톰슨이 카르노의 이론을 반박했군요. 2번째 문장이 그런 내용이죠.
음... 3번째 문장이 사실 바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전부를 방출하는 거지? 전부가 아닐 수는 없나?' 라고요. 좋은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글의 흐름을 깨지 않으니 일단은 넘어갑니다.
4번째 문장, 뭐 결국 카르노가 틀렸다는 이야기인데 왜 틀렸는지를 모르겠네요... a에서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지만, 근거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5번째 문장, ....
어?
카르노의 열효율에 관한 이론이 유지된다고?
방금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고 했잖아?
뭔가 이상하죠. 여기서 모두가 멈춰야 합니다. 근거는 분명히 없습니다. 정작 있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시험장에서 모두 그 근거를 찾으실 수는 없을 거라고 제가 장담합니다.
전 이 지문은 20번은 넘게 분석했지만, 지문 안에서 그 근거를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분석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유지가 안 되는데, 유지가 되는거는 뭐야?' 하고 글을 다시 읽게 되겠죠.
'열의 실체가 칼로릭이라는 생각은... 유지 불가고, 열효율에 관한 이론은... 유지 가능이네'
'분명 나는 2문단에서 카르노의 이론 : 열의 실체 = 칼로릭 → 열효율 이라고 정리했었어. 근데 왓?'
아니.... 잠깐만!!!
그 2개를 다른 차원이라고 보자.
그러니까... 열의 실체와 열효율을 분리해서 보자고. 그러면 하나는 맞으면서 하나는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
왜 그런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 지문을 이해할 수가 없어.
카르노가 뭔가 잘못된 거겠지.
- 자, 전 학생들이 여기까지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실제 사실이 어떤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열효율에 관한 논문을 가져와서 논쟁을 펼쳐도 저는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걸 시험장에서 '내'가 활용하지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제가 이 순간 하는 생각은...
"아까 줄이 잘못한 게 아닐까? 투입과 산출이 전도됬잖아."
입니다... 그렇지 않을까? 라고 가정하고 넘어갑니다.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지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과 관련된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네요 ㅎㅎ)
5문단으로 가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클라우지우스의 이론이 나오면서 결론이 나네요. 줄의 등가성을 틀렸고, 비대칭성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엔트로피가 나오면서 지문이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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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문 해설을 했습니다. 여기서 문제 해설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문학은 정말 특정 몇 문제를 제외하고, 문제 해설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해서도 안 됩니다.
학생이 정말 스스로 지문을 분석하면서 답으로 이루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곁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제 분석을 보고도 이 지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쪽지함으로 물어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국어를 못 할때가 있었고, 그런 고민을 통해 결국 이렇게 변했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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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 후감상 잘읽겟습니다

정성글추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