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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379481] · MS 2011 · 쪽지

2011-08-28 20: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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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암기과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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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맞는 말인 것 같긴한데..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하고
갠적으론 독동 수리괴수분들은 이 글을 읽고 어떤지 궁금해영
오늘도 불펌 (__) 주인장님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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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hidev Chaudhuri | 3QuarksDaily | Aug. 22, 2011 
수학 공부는 무척 적극적인 과정, 으레 아이디어들과 씨름해야 하는 과정인데도 이상하게 이 명제는 널리 퍼지지 않는다. 이 명제는 수학적 직관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곧, 수학적 아이디어를 헤아리려면 그 아이디어를 여러 각도에서 톺아야 한다는 것, 넓은 맥락에서 그 아이디어가 참인 까닭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 그 아이디어와 이웃해 있는 아이디어들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증명이나 아이디어의 설명을 읽을 때에도, 그저 읽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씹어서 소화하려면 손에는 연필을 들고 앞에는 종이를 둔 다음 개념을 샅샅이 톺아야 한다. 

이 명제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명제를 다른 명제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일반적 맥락의 고갱이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좀더 단순한 예는 무엇인가? 이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 명제가 거짓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다 보면 어떤 모순에 직면하게 될까? 앞의 개념들과 이 개념은 어떤 식으로 맺어져 있나? 이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는 데에 설정된 가정들은 과연 온당한가? 그 가정들 전부가 필요한가? 겉보기에 근본적으로 다른 듯한 이 ‘팩트’를 다른 틀에 넣을 수는 없을까? 등등 던져야 할 물음은 꼬리를 문다. 

명제의 증명이나 문제의 풀이도 마찬가지로 수없이 틀린, 캄캄한 고샅을 헤매는 과정이다. 될 듯하면서도 안 되고, 알고 보니까 내가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구나, 내가 아직 이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은 낭비가 아니다. 증명이나 해법을 남한테서 받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톺지 않으면, 한 명제가 참명제라는 것은 배울 수 있으되 그게 왜 참인지, 그게 참이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깜깜하게 된다. 수학 공부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수학 수업 시간이 아니라 수업이 끝난 다음이다. 문제를 풀 때에서야 일어난다. (강의를 들을까, 문제를 풀까 가운데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반드시 후자를 택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수학 교육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졸업하고 만다. 여기에서 아주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잘하든, 못하든 둘 가운데 하나이고 재능이 있든 없든 둘 가운데 하나라고 믿게 된다는 점이다. 수학 공부를 하다가 어려우면, 그 어려움이 배움에 내재되어 있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난 수학에 재능이 없나 봐, 라고 믿고 포기해 버린다는 점이다. 유전이든 양육이든 또는 집중력이든, 확실히 어릴 때부터 수학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아이들은 있으되, 그런 아이들한테마저도 기질이라든가 자신감이 머리보다는 외려 더 크게 작용하는 듯싶다. 배움에서 걸림돌에 걸렸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가 머리가 얼마나 좋으냐보다 훨씬 더 수학 공부에 종요로운 듯하다. 

얼마 전 아이들을 위한 수학 교실을 운영하면서 이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럴 때면 으레 아이들은 두 무리로 나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문제를 푸는 데 거의 같은 시간이 걸리거나 완전히 문제를 풀지는 못하지만 거의 해법에 도달하면서도, 자신의 수학 재능에 대해서는 아예 반대되는 생각을 품는다. (학기말에는 이러한 믿음은 사실로서 굳어진다.) 문제를 풀다가 한 십 분쯤 지나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어떤 아이들은 애초의 방향에 의심을 품고 문제의 이해부터 다시 시작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추론력을 써서 해법에 차츰 다가가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머리로는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믿어버리고 (나는 멍청한가 봐, 나는 수학적 머리가 없나 봐) 포기해 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두 무리 사이에 직관력이라는 면에서는 그리 차이가 없는 듯싶고, 포기해 버리는 무리에 속한 아이들도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제대로 된 길이니까 좀더 생각해 봐, 라든지 애초에 잘못 방향을 잡은 것마저도 좀더 부추기고 도와주면 결국에는 옳은 방향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수학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수학적 직관력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다독거리는 일, 아이들한테 “네 자신한테 짜증부리지 말고 좀 참을성을 가져 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라 할 터이다.

[…] 


COMMENT 



엊그제 보니까 텔레그래프 지에 흥미로운 글이 떴다.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천재」라는 책의 발췌였는데, 세 살 때 잰 IQ가 178이었고 이튼스쿨을 거쳐서 캠브리지에서 순수수학을 공부한 천재가 종국에는 “천재성이 무너져 내려”서 저자의 집 아래층에서 쓸쓸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데, 그한테 자신의 천재성이 무너져 내린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open-quote“사이먼은 자신의 천재성이 무너져 내린 까닭으로서 두 가지를 든다. 먼저, 사람들이 자신을 천재로서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가 발달한 것이 빠르기는 했으되 (세 살 때 열 두 살짜리의 수학 문제를 풀었고 스무 살 때 수학교수가 푸는 문제를 푼 식으로) 어느 순간 머리의 발달이 멈추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보다 느렸던 사람들이 금세 따라잡았고, 그 사람들은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사이먼을 보고서 그의 천재성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지만, 기실 사이먼은 지금도 전성기 때만큼은 수학적 머리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만 그 전성기 때 머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평범한 것이었다는 데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요새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 때는 문과 아이들은 미적분과 통계는 아주 기초적인 것만 훑고 끝내었다. 기실 돌아보건대 이것만으로도 내가 그 이후에 한 공부와 일에서 너무 많이 배운 수학이 되었으나 (여기에서 독학한 경제학은 제외된다.), 만약 수학 공부 시간에 도대체 앞으로 써먹을 일도 없는 수학 공부를 왜 하냐, 라는 푸념을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고등학교 공부까지는 머리가 아무리 돌이라도 끈기만 있으면 해낼 수 있다.) 수학이 어려운 까닭은 적극적으로 머리를 써야 하는 데 있다. 다른 공부처럼 떠서 먹여주는 것을 멍하니 받아만 먹어도 되지 않는 데에 있다. 이것은 평생의 지적 게으름으로 이어지는데, 모든 분야의 답,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따위의 극히 개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남한테서 답을 구하려는 어리석음으로 고착한다. 수학깨나 한다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수학의 정석’ 따위의 책이나 붙들고 정작 몇 시간이고 머리를 쓰려고는 하지 않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날리고 우리나라 대학에 진학하면 그럭저럭 또 아는 체를 하면서 넘길 수 있으되, 미국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면 한 2학년부터는 제 주제를 깨닫게 된다. 

어떤 공부를 하든 머리를 쓰는 것, 궁리하는 것이 근본이고, 우습게도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이 ‘궁리’를 가르쳐 주는 것은 그나마 수학뿐이므로, 그 수학을 암기과목으로 만들면 그저 지적 허영에 들뜬 사람들만 양산하게 된다. 자식들 가운데 수학 공부는 대체 왜 하냐고 묻는 아이가 있다면, 우선 대갈통 한대 때리고서, 네 뇌를 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수학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조근조근 말해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부모도 수학 공부 좀 해야 한다. 

오늘로써 내 휴가도 아내의 휴가도 아이의 휴가도 끝나고 내일부터는 다시 삶의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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