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수능이 좋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5948401
1교시 시작 5분 전, 잔뜩 긴장한 학생들과, 못지않게 경색된 감독관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싸한 분위기가, 히터가 내뿜는 열과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손과 발은 서늘해지는데, 머리는 뜨거워진다. 눈은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샤프, 지우개, omr카드 순으로 움직이던 눈은 시험지에 안착한다. '1교시 국어영역...'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펼친다. 문자가 많다. 머리는 더 뜨거워지고 속은 울렁인다. 꾸역꾸역 문자들을 소화해낸다. 페이지를 넘긴다. 또 꾸역꾸역 문자들을 씹는다. 또 페이지를 넘긴다. 마킹을 한다. 손이 떨린다. 히터가 바로 머리 위에 있는데도 손이 떨린다. 왠지 춥다. 마킹을 겨우 끝내고 가채점표 작성까지 끝내자마자 종이 울린다. 감독관들은 잽싸게 시험지와 omr카드를 걷어간다. 심장은 요동치고 온몸이 떨린다. 내가 느낀 건 극도의 긴장인가 아니면 카타르시스인가? 현역 때는 전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두 번째 수능을 치르며, 사실은 후자임을 알게됐다. 나는 사실 즐기고 있었다. 극한까지 나를 몰아붙이는 수능이 너무 좋다. 무엇도 수능만큼 나를 몰아붙일 수 없다.
2교시 수학영역을 마치고 진이 빠진 학생들은 서둘러 도시락을 책상에 올린다. 식사예절은 뒤로한 채, 흘려가면서, 쩝쩝대면서 맛있게도 먹는다. 두 과목 모두 망친 바람에 괴로워하면서도, 시험의 반 이상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 퍽 재미나다. 스스로도 밥이 넘어가냐고, 한심하지 않냐고 묻겠지. 아마 부모님은 도시락을 싸주면서, 시험을 그렇게 못볼 거란 생각은 안 했을 거야. 최소한의 기대치가 있었겠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잠깐의 자조를 뒤로한 채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 아마 남은 세 시험을 잘 보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거야. 하지만 입시는 2교시 종치는 순간 끝났다. 그래 우린 이제 모두 끝났으니까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도시락이나 맛있게 먹으렴. 이 풍경이 너무 재밌다. 또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고사장의 28명은 모두 초면이지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표정으로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너도 망쳤구나. 탐구로 역전하면 되지 않을까. 응 아니란다. 그렇구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적막. 나가도 좋다는 방송이 나온다. 정문을 나서면 하늘은 짙은 남색. 공기는 싸늘하고 바닥은 마르다. 수험생과 부모들이 만난다. 부모는 수험생의 표정을 살핀다. 수험생은 표정을 애써 숨긴다. 부모는 안다. 수험생 역시 부모가 눈치챘음을 안다. 그래도 오늘은 유독 표정을 드러내기가 싫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어중간한 분위기가 학교 운동장을 메우고 11월 저녁풍경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아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단 두번만 보기에는 아쉽다. 내년에도 보고싶다. 계속 보고싶다. 난 수능이 좋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진짜 "범"에 뭐가 있는 건가 8 6
범바오도 그렇고 범작가도 그렇고 범무리라 그런지 범부행동만 하네
-
너무 낮은디요? 5모보다 낮은데.. 객관식 13까지는 퍼줘서 그런가 보네…
-
생윤은 개빡치게 3 2
개념때 안 알려준 게 오ㅔ 계속 나옴 그러면 개념완성이 아니잖아 ㅅㅂ
-
강게이냐 사관이냐 7 0
8/1일에 강k 수업 있는데 그냥 사관 째고 강게이 응시할까? 갑자기 고민 중...
-
하늘 아래에 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틀림없이 거짓말쟁이입니다.
-
이매진 낱개 구매 0 0
이매진은 시즌별로 낱개로는 구매가 불가한건가요? 찾아봐도 안나와서요ㅠ
-
프사를 바꿀까 말까 고민 중임 6 0
-
심심하다 0 0
매우 심심한
-
7모 영어 1등급 4.73이네 0 0
어려운 편이었다는
-
. 16 1
-
최악의 입시년도 언제임? 8 2
본인들 생각했을 때 수능 첫 시행 이래로 가장 최악의 입시년도 언제임?? 나는...
-
2511영어가 젤 빡침 0 0
수능판 돌아온 이후로 유일하게 틀린 듣기가 2511인데 이거 틀려서 88나옴
-
징그럽고 잔인한 거 피 이런 거 싫어하는데 간호학과 가도 적응 가능할까요?
-
이럴 수 없어 4 1
내 세상이 무너졌어
-
성적표 받은 현역들 0 0
컷 좀 알려줘봐라
-
진짜 보고싶었던 작품이라존버하고 잇엇는디먼가 타이밍 놓친 기분이란말이디
-
메가 완전 양도 0 0
20마넌에 양도하무니다 엔수생 환영 ^_^
-
국어만 잘본 7모 성적표 2 2
화2는 만표가 얼마이길래 저따위 등급컷이..+ 물1 1.8만 ㅋㅋㅋㅋㅋㅋ
-
수완 실모 지문 재밌네 0 0
전 주식투자 안해요
-
오르비를 너무 많이 했나,,, 4 3
생기부 활동 마무리하고 공부하고 돌아올게요
-
요즘 조 강 현 이분들 왜이렇게 따뜻해진 것 같지? 1 2
작년 기준으로 좀 달라진듯
-
수학 잘하고싶다 14 0
안정 1만 뜨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
앱스키마로 첨부터끝까지 돌리면 도움이 될거같기한데 양이 많아보여서 가능할지...
-
딴얘긴데 24발롱은 사실 0 0
로드리vs비니시우스 구도가 아니라 로드리vs벨링엄에 포디움 비니시우스vs케인 경쟁인 거 같기도 함
-
국어 1~2진동 조언좀 0 0
3모 65점(3등급) 5모 98점(1등급) 6모 96점(1등급) 7모...
-
축구 본 후유증이 졸음으로 옴 3 1
피곤하다,,,
-
오늘의 공부목표 1 1
기하 기출 벡터 탐구 기출 22~23 딱 이것만 끝내고 놀아야지
-
진짜 수능 리트 판에서 나처럼 AI 가혹하게 굴리는 사람이 있을까
-
갑자기 기분 좋아짐
-
7덮14번 감각으로 풀기 1 0
A는 음수임을 눈치채고 수1 범위에서 삼각함수의 핵심은 대칭성, 주기성인데...
-
조금만 더 많았으면,,
-
[021119(인문)] 실전 개념은 과연 정말 도움이 되는가? 0 1
지식을 왕창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태도는 수능이라는 시험의 취지에 맞지 않을...
-
7덮 수학 풀어왔습니다 12 1
28,30틀 92점 15,21,22에서 힘을 많이 뺐네요 오히려 14가 상당히...
-
집중안됐던 이유 5 2
약간의 우울함 + 집에 누가 있음 이었슨,,, 역시 난 혼자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봐
-
팔굽혀펴기 30개 했음 7 2
오운완 이제 오공완할거임
-
이 암흑 에너지라는 녀석이 10 4
개인적으로는ㄴ 현대판 에테르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는 입장이라ㅏ삼칠은...
-
옆에분 오릅이 하시네 11 2
ㅋㅋ 님아 여긴 규동보다 카레가 더 맛있음요
-
또 2시간 반 자버려서,, 그냥 나가서 밤잠 챙기고싶다
-
240628 처음 기출 풀때 0 1
이런게 평소 28이라고? 이생각함 풀면서
-
이해원n제 시즌1 정답률 70~80%정도인데 다음n제 1 0
설맞이시즌2->이해원n제 시즌2 괜찮나요?
-
27리트 0 1
집리트 22점 ㅅㅅ
-
7덮 이후 국어 방향성 2 0
화작런 하고 2주 정도 지난 후에 더프를 봤는데요 7모 땐 화작 네개 틀렸는데...
-
죽도 2 1
못 쓰다임 못 쑤다임 ? 검색해보니 이런 말이 안나오는디
-
난 지금 잘 태어난듯 2 0
24시절까지의 준킬러 메타에선 그냥 죽었을거 같음
-
졸면 깨워주는 Studynight 사이트 정식 출시했어요. 1 2
카메라로 졸음 감지하면 음악과 알림으로 깨워주고, 영상이 폰 안에서만 처리되는...
-
개인적으로 바라는 수능난이도 2 0
언매 26수능 (점수떠나서 버티면서 꾸역꾸역 운영하기엔 ㄱㅊ았음) 기하 공통...
-
이것도 못하면 난 기하를 할 자격이 없어
-
11,12,13,15,20,21,22,28,30 다 문제가 재밌고 표점도 좋았음
-
나도 센츄 달고 싶은데 5 0
직탐이라 시발 기회가 1년에 3번이네
???: n수 조장한다ㅏ!!
근데 수능과 별개로 그 적당히 배가 무거운 긴장감 좋은거 같음
이래서 입시판 뜰수가 없자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