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ton [515146] · MS 2014 · 쪽지

2017-12-12 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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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삶이 녹록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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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9평때 연공 가능한 성적 받고 수능 11223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건동홍 공대 진학.


의대 꿈을 못 버려서 입학하자마자 수업 출석만 다하고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끝나면 도서관에 박혀서 수학 마플 풀고 각 과목 수능특강만 풀어 대고 ot니 mt니 아무것도 


안 가고 술자리 등등 모임은 아무 곳도 참석 안하고 과잠도 신청 안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내고 나니 학교 내에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명도 없고 처참한 성적만 남았더군요.


그래도 학교가 밉지는 않았습니다.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일뿐 교수 분들과 학생들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6월 말에 휴학을 하고 매일 버스를 타고 독서실을 다녔습니다.


과탐 인강 풀커리 타고 실모도 닥치는 대로 풀어대면서 공부하고 나면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


앞에 항상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추석 때엔 독서실 갔다가 저녁을 먹으려는데 상가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아서 어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다가 꾸역꾸역 먹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게 살지만 반드시 올해는 의대 붙어서


내년에는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습니다.


시간은 흘러 수능을 보고 결과가 꽤 괜찮았습니다. 물리에서의 실수 하나가 아쉽기는 했지만


잘하면 의대를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고 실채점판 분석기가 새로 나와서 돌려보니 


지사의 두 곳이 진초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많이 놓았습니다.


이제 수능 성적표만 제대로 나와 있으면 된다. 살면서 마킹 실수는 한번도 한 적이 없으니 절대로


가채점과 다르게 나올 리가 없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성적표 출력 버튼을 눌렀는데


수학 백분위가 89였습니다.


한 10분을 황망하게 화면만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창 닫고 열고를 계속 반복하고 몇번을 확인해도


89였습니다. 원래 그 자리에는 97이 있어야 하는데요.


참 그때의 기분을 말로 다할 수가 없네요.


연대식 0.99 올 진초록에서 2.01로 곤두박질쳐서 연공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대가 전부 빨갛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의대 하나만 바라보고 모든 걸 내던진 반수였습니다. 삶이 고되고 힘이 듭니다.


천박한 생각이지만 의대 가서 선배들에게 굽실거려도 좋고 구타를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도 간절했습니다.


지금은 다 깨져버렸습니다. 무슨 수를 동원해도 올해 의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슬픈 사실이


전신을 휘감습니다. 


올해 나를 응원해 준 이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부모님.


대학 가서도 비루한 나를 잊지 않고 신경써 준 친구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실패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격려해 주었지만 의대를 못 갑니다.


또 다시 지난한 1년을 기약해야 할지 입시에서 손을 털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절망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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