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날다 [257626] · MS 2008 · 쪽지

2011-02-02 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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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Semi수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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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발급처 벽에 붙어서 접어 두었던 성적표를 몰래 펼쳐본 나는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전 과목이 1등급이었다!
나는 가채점보다 외국어가 2점, 윤리가 3점 더 올라 있었다.
너무나 기뻐 주체할 바를 찾지 못하였다.
눈이 내릴 때 느꼈던 왠지 좋은 느낌은 단순한 예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실이었다!



이제는 논술을 준비해도 될 자격을 얻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고려대였다.
혹시라도 111이라 납치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논술이 워낙 개발이라 납치당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알바를 시급히 그만두고,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논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로고스 하이퍼같이 학생들을
대량으로 몰아넣어 가르치는 학원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수정예로 과외식으로 가르쳐주는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또한 글씨가 개판이었으므로 글씨교정학원까지도 등록했다.
수능을 잘 봤다는 말에 친척분들이 나를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정말 운 좋게도, 알바를 했던 덕에 비싼 학원비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내가 불행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차츰 하나하나 오히려 행운의 교두보가 되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학원을 다니면서 하루에 1~2편정도씩 꾸준히 썼다.
선생님이 1:1로 피드백과 토론을 해 주셨다.
비록 평생 논술 준비 한 번 안 해보고 1달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많이 성장한 듯 했다.



드디어 원서철이 되었다.
페이트를 받아 보았을 때, 연경 연제 합격확률이 높게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문과 최상위권 학생들은 경영, 경제학과에 이유 없이 많이 매력을 느끼곤 하는데,
나는 본래가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내가 수학을 엄청 못했다가 잘하게 되어 정이 들어 연대는 응용통계학과로 써서 냈다.
진학사 표본상으로도 합격이 확실했고, 심지어 진학사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다 확실히 합격한다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원서접수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소신지원했다.
나중에 보니 이것조차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당시 내가 첫날부터 바로 소신지원하지 않았다면 막판에 연경, 연제가 인원이 많고 추합이 많다는 점에 끌려서
거기에 원서를 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연대 점수가 서울대 점수에 비해 훨씬 낮은 편으로 나오기 때문에 하마터면 추합조차 노리지 못하게 될 뻔했다.


서울대는 마지막 날 3시에 농경제학과에 소신지원했다.
오르비 상으로 표본이 다소 과열되어 있었으나 자신을 가지고 임했다.
남들보다 늦긴 했지만 논술을 열심히 해서 평타를 쳐야겠다는 각오로 원서를 써서 냈다.



그리고 논술 날이 되었다.
논술이 유래없는 헬논술로 출제되었다.
논제 1은 케플러가 3대 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탐구방법에 대해 논하라고 되어 있었고,
논제 2는 저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논제 3은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황당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논제 1은 그래도 이과에서 지구과학 2를 선택했었기때문에 상당히 수월하게 이해하며 풀 수 있었다.
문제는 2, 3이었다.
논제 2는 자꾸 글씨가 개발괴발이 되어서 답안지를 네 번이나 교체했고,
논제 3은 1500자 논술이었는데 1000자까지만 글자를 똑바로 쓰고 개요도 짜가며 썼다.
그 뒤 500자는 시간이 부족하여 3분 동안에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글씨를 갈겨 쓰며 대충 써서 내 버렸다.



왠지 논술을 망친 것 같았다.
논술 끝난 직후에 에피 회원들끼리의 논술 정모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술을 퍼먹으며 회포를 달래었다.




그리고... 1월 31일 서울대 발표 날.
나는 베프와 함께 신촌에 놀러갔다.
집을 나서면서 엄마한테 미리 결과를 보지도 마시고, 혹 알게 되더라도 연락도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드렸다.
엄마와 함께 집에서 합격사실을 조회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는 농담조로 친구에게, "나 떨어지면 여기서 독수리 코스프레 할거다"라고 말했다.
"푸드덕 푸드덕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수리입니다. 남들은 제가 독수리 흉내내는 사람이라 놀리겠지만
저는 사람 흉내내는 연세대의 독수리입니다! " 라는 식의 드립도 주고받았다.


6시가 되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들어가 컴퓨터에서 합격 사실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컴퓨터에서 서울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려는 찰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축하한다! 서울대 농경제 합격이다!"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주저앉아버렸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따
친구 녀석은 주먹으로 등을 퍽! 치면서 "임마 축하한다!!" 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믿기지 않아 서울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엄마, 장난 아니지? 나 합격한거 맞죠? 이거 장난이면 나 엄마 평생 미워할거야"
"니가 직접 봐보든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쳤다.




농경제사회학부 합격








나는 더욱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면서 말했다
"내가.. 이거 하나 보려고.. 개 고생을 했단...말이냐고... 올해 수능 끝나고나서는.. 절대 여기 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녀석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휴지를 가지고 나왔다.
눈물을 닦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촌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과 짬뽕을 먹고 나왔다.












이제 나는 다시 날 수 있게 되었다.
축제는 끝났으니 슬슬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이제는 공부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영위해나갈지 고민해야한다
게다가 나는 이제 민족의 대학 서울대학교 학생이다
서울대 학생이라는 칭호는 무한한 영광을 줌과 동시에 무한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벌 사회에서는 서울대생이라고 하면 뭔가 달라 보인다.
좋은 일을 하면 "역시 서울대생이야"라며 남들보다 더욱 높게 쳐주고
나쁜 일을 해도 "저 따위 게 서울대생이라니"라며 남들보다 도덕적 지탄을 두 배로 받는다.



가톨릭 사제들은 평상복으로 '수단'이라는 예복을 입는다.
'수단'이란 목에서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검고 긴 코트이다.
이 검은 옷은 세속으로부터 죽었음을 상징하는데, 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니
신부님들은 그 옷을 입고 있을 떄엔 아무리 화가 나도 다시 한 번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항상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제 나도 검은 수단을 입었다.
과거의 내 모습이 어찌 됬든 그것은 죽었고, 이제는 새로운 나를 맞이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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