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날다 [257626] · MS 2008 · 쪽지

2011-02-02 1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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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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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휘에 올리기로 한 36부작 대하수기(?)를 올리기 전에
먼저 제 수기를 2편으로 압축해보겠습니다.
저의 22년 인생사를 A4 2장 정도의 분량으로 압축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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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못난이들을 위한 수기 『파리, 날다!』
#0.Prologue- 한 번만이라도 날고 싶었다(1)



주의가 산만하다, 원만하지 못하다,
초등학교 때의 기록을 보면 내가 이랬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막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초등학교 때 참 지지리도 찌질하게 지냈다. 컴플렉스도 많았다.
키도 작고, 공부를 잘하는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는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그리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너가 아주 싹싹하게 좋은것도 아니고, 잘생긴것도 아니고
진짜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잉여였던 건 기억난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썩 원만하지 못해서 고생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라곤 그저 맨날 엎드려 잔 것밖에 없다.
그렇게 권태와 무기력에 잠긴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하루에 무심결에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편이다.
매번 하늘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었다.
-너무 높다.
내 키가 작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나는 생각했다.
-한 번 만이라도 날고 싶다. 날아서 날아서 저 푸른 하늘 자유롭게 노니고 싶다.




중학교에 들어왔다. 시험이란 제도를 처음 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내내 잉여롭게 지냈으니 뭘 알아야지.
영어 수학은 학원을 조금 다녀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아주 기본적인 것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정도일 뿐이었다.
다른 과목은 아예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었다.
복선, 미지수, 관계대명사, 리아스식 해안, 파동.
이런 복잡한 내용들을 처음 접한 나는 마치 외계어로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나름 잘 버텨냈다. 첫 중간고사 때는 우리 반 30명 중에서 10등 정도를 했고,
1학년 마지막 기말 때는 반에서 5등이 되었다.





2학년이 되었다. 나는 이 때 갑자기 확 피기 시작했다.
2학년 처음 올라올 때에 쌩 바보취급 받던 녀석이 1학기 중간에서 반 1등을 했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전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무능한 녀석이 순식간에 공부 잘한다고 소문나는 것.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그런 나를 보시고 엄마는 나에게 특목고 진학을 권유하셨다.
나는 외고에 가기로 결정했고 이것저것 열심히 파기 시작했다.
'특목수학'이라는 아주 두꺼운 책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2학년을 끝낼 때에도 나는 반 1등이었다.
이후로 몇 년 간, 중2 시절은 나에겐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리즈시절이 되었다.







하지만 불꽃처럼 타오른 나는 불꽃처럼 시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3학년이 되서 공부하기가 싫어졌다.
단순히 사춘기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할 정도로 내 자신이 변했다.
결국 나는 공부를 손에 놨다. 외고 진학도 포기했다.
외고입시 전문학원에서 전체 2등도 했는데 성적이 그대로 뚝 떨어졌다.
그런 식으로 수학 10-가 10-나를 들춰보지도 않고서 무방비 상태로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내가 배정된 고등학교는 원래는 인원도 적고 똥통학교로 소문난 곳이었는데,
그 해 교육청에서 손을 써 주어서 갑자기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게 되었다.
전의도 없었고 더 이상 공부에 관심도 없었던 나는 그대로 훅 밀려났다.
수학 영어가 5등급이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그러다 1학기 어느 봄날,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지탱해주던 공부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그 때부터 부랴부랴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썩혀둔 탓인지 좀처럼 성적이 오르질 않았다.
겨울방학 동안 수학 영어만 팠다. 특히 수1은 전범위 완성을 시도했다.
하루 14시간씩 공부까지 했으나 고2가 되자 수학은 7등급으로까지 오히려 떨어져버렸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미치도록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여 강남대성 선행특목반에 들어갔다.
주로 특목고, 명문고 자퇴생 등을 상대로 하는 자퇴생 반이었다.
그 안에서 또 시험을 쳐서 강남대성 주간반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권태가 시작되었다. 정신을 못 차렸던 모양이다.
아무리 천성이 게으르다지만 그 정도가 과했다.
자습도 안하고 맨날 놀기만 했다.
그러다가 6월 평가원에서 완전히 털렸다. 수리가형이 3등급이 나왔다.
시험을 망치고 나니 망친대로 또 권태에 빠져 그대로 잉여가 되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7월 말에 교무실을 찾아갔다.
수능을 112일 남겨놓은 시점에 담임샘께 전과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미친놈 소리 들었다.
제정신이냐고.
지금 도망친다고 잘 될 것 같냐고.






네.




라고 나는 속으로 답했다.
가형 공부할 시간에 나형사탐 파면 100일동안 하고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야간 문과반으로 갔다.
나의 선택과목은 한지, 윤리, 법사, 경지, 한문. 경제지리는 선택만 하고 그냥 읽지도 않고 100% 찍기로 결정했다.
사탐을 만만하게 본 나의 2009수능대비 9월 평가원 결과는 처참했다.
212 4144. 한문은 시험조차 치지 않았으며, 한국지리를 제외한 사탐이 전부 4등급이었다.
언어 외국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비록 60~70일밖에 안 남았지만 열심히 하자고.
결국 2009 수능에서 211 1115 1로 성적이 올랐다.
수리가 1등급 안에서도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표점이 매우 높게 나왔다.
내신 7등급 받고 질질 짜던 녀석은 어느새 전국 0.7%가 되어 있었다.
고려대 영어교육과에 가려고 했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제2의 나를 도와주기 위해.





나는 기뻤다.
이젠 하늘을 날 수 있겠구나.
서러웠던 지난 날을 보상받아야지.







그런데 그 당시 집안이 갑자기 기울어버렸다.
부모님의 압력으로 인해 시립대 세무로 가야만 했다.
장학금을 잘 주고 취직이 잘 된다는 것, 오로지 이 이유 뿐이었다.
나는 절망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도
대가를 제대로 못 받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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