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5개한번에먹기 [248171] · MS 2008 · 쪽지

2010-12-09 22:30:50
조회수 3,082

죽어도 해피엔딩 -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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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2009년과 2010년을 통틀어
단 한번도 일어난 적 없던 시간에 일어났다.
그날 아침은 몹시 추워서
아침을 대충 먹고 나온 내 귓가에 내 입김이 돌았다.

아빠와 함께 조대부고로 가는 택시 안
그 곳은 고사장 이상의 정적이 맴돌았다

대략 30분이 걸려 도착한 고사장
5분을 걸어걸어 도착한 고사장 문앞에서


나는 운신의 폭을 다하고 오겠노라 말했다.
웃으면서.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이전 이야기]
라면은 3개월간 신명나게 논 다음 9월 모의고사를 보는듸!






정확히 기억난다.
김재박 감독이 연승할 시절 선수들에게 집에서 직접 만든 만두를 준다는 기사가 난 이후부터 엘지가 연패의 길로 가던 것을.

나에게 만두는 무엇이였을까?
무엇이 날 연패의 길로 빠지게 했을까?

자세한 성적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 영일이 아저씨가 중앙대 기계과를 알려주신 것
- 고등학교 이후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전교 10등을 넘어가 버린 것
- 간간히 보이는 4등급 몇 개.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겪은 실패였다.




자, 실패를 했다면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를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전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 ‘정상인’ 이라면 분명 이러한 생각을 해야 했다.


다만, 나는 그 궤도에 올랐지 못했던 사람.
(만약 재수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을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에요.
본인은 과연 자신에 대한 판단이 ‘정상인’ 의 궤도에 올라 있는가 ? 하고.
나는 이러한 판단력을 끝끝내 가지는 데 실패했습니다.)






김재박 감독은 연패에도 불구하고 검증된 선수만을 사용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친구 PMP로 야구를 보았다.

하루하루가 지났다. 신라대학교에서 준 D-Day 달력이 계속 넘어갔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모두 기억이 말소된 페이지가 되었다.

야갤에서 그를 깔 명분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그 와중에 한국시리즈가 있었다.

초대받지 못한 결과를 받은 엘지는 김재박을 내보내는 조치를 취했다.

점점 떨어지는 성적을 받은 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터닝포인트는 10월 중순,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모의고사였다.
나는 이 시험에서 수리 2등급을 맞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수리 71점을 맞았다.





... 굴욕이었다.
수학 잘 하신다면서? 입버릇처럼 끼고 다니던 말.

그런다고 나머질 잘해? 너 언어 못해. 언어도 2등급이야.

영어를 잘 푼다고? 너 96%야. 커트라고. 재수생 오면 2등급이야.


그날 나는 내 중3 겨울방학 시절을 생각했다.
다른 수식어 다 집어치우고, 아까웠다.
이왕지사 3년간 공부하기로 한거, 마지막에 망쳐버릴 건가?
자괴감만 들었다. 이불에서 딩구는게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다.
투자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겨우 나오려는 찰나에 이럴 순 없었다.


시장경제의 논리에 위배되는 행동이였다.




다음날 나는 서점에 가서

넘기는 수학문제집 두 권을 사고

외국어 넘기는 문제집 두 권을 샀다.



수학 문제집은 시간 90분 정도 잡고 풀었다. 야자 첫 시간에 한 회 풀고, 두 번째 시간에 오답을 정리했다. 오답이 쏟아졌다.

외국어 문제집은 시간을 재서 풀기보다는 정확하게 독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당시 나는 독해 자체가 안되는 이상한 증상( 영어를 읽기는 하는데 해석이 되지 않는 경우) 이 있는 터라
친구가 말해준 끊어읽기를 계속 연습했다.

나는 대략 30일의 기간 동안 평소의 4배 분량으로 공부했다.
대략 8시간 정도 했다. 밤에 11시 30분까지 학교에 남아서 인강을 들었다.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고 내가 그리 놀렸던 친구들, 내가 그 처지가 되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어쩌겠냐, 내 처지가 이리 가련하게 된 것을.


그 30일정도는 나름 공부했다.
피시방은 끊었다. 슬러거가 정 하고 싶으면 주말에 집에서 했다.
야갤의 경우 스카페이스 님이 모으시는 짤방만 따로 모아서 봤다. (이 분은 최근에 이 활동을 중단하셨다. ㅠ_ㅠ 돌아와요 부산항에 스카갑...)

그 뒤로 여러 사설 모의고사를 보긴 했지만, 정상궤도를 올리기는 벅찼다.

점점 초조해졌다. 왜 안되지? 하면 되던 것들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판단의 의표가 되던 것들이 사라진 기분이였다.

낙천적... 이라고 듣곤 해서 겉은 웃고 다녔지만 속은 썩었다.






내려갈 성적은 내려간다.

드디어 난 내려가고 있었다. 엘지가 ‘결국’ 7위가 되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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