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번☆ [56176] · MS 2004 · 쪽지

2008-04-12 14: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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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꼴지 대학가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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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인드 컨트롤의 결과



이제는 한달이었다. 시간이 정말 없었다.
열심히 했지만 안 되는것 이었다. 잠시 좌절감에 빠졌다.
정말 한달을 남기고 좌절감이 들었다.
저많은 문제집, 내가 공부한게 얼마나 많은데 점수는 현역때랑 다를게 없을까..
완전 슬럼프였다. 한 3일은그냥 멍하니 잡지만 봤다. 그리고 휴가를 갔다왔다.
앞으로 모의고사는 2번남았다. 정말 보기 싫었다. 결과는 뻔했다. 두려웠다.
재수생의 성공률은 약 30프로, 어느 입시책에서 그랬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반수생의 성공률(통상 현역때보다 점수 잘맞기)은 10프.. 실제로도 10프로라고.. 내가 거의 재수생이라도 나 성공할수 있을까??? 점수 올릴수 있을까?(여기다가 원서질의 행운이 돌아와 한 15%라고 전해진다)

현역때의 자신감은 없어졌다. 실패가 두려웠다.
현역때와는 공부량이 10배는 넘을거다. 그런데도 이렇다.
잠이 졸려도 밤을 샌적도 많다.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친구도 앞자리 뒷자리 그리고 우리방.. 그리고 없었다.
정말 외로웠다. 어느날 문득... 자신감이 생겼다.

다이어리를 보면서 였을꺼다 아마.
내가 3월에 반수시작전 써놨던 다짐을 읽게 되었다. 마음 전환이 었을거다.
그때의 나는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아니 이렇게 모의고사가 슬럼프라도
수능은 꼭 잘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글을 썼었다.
그리고 그 의지가 담겨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통해 10월말까지
내가 무엇을 했나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고 휴가때 가져온 05년도의 다이어리도 보았다.
05년도 그리고 06년도 초반은 너무 한심했다.
하루에 4시간 게임은 기본, 카오스 대회 나가느라 어떤주는 주말 풀로 게임만 함
어떤날은 18시간 잠자기(그날의 평가에 나는 곰인가? 지금은 봄인데 왜 겨울잠질? 이렇게 실려있음)
문제 2개에 2시간..
06년도 초반 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술에 쩔고 하루는 공부도 안하고 잠만자고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있었다.
수학도 이제 어느정도 안정된듯했다.
영어는 내자신을 믿으면 슬럼프는 없을것 같았다.
언어도 한국인의 기량을 발휘하고
내가 푼 수많은 문제집을 다시한번 들춰보기만 해도 할만할것 같았다.
사탐과목들 교과서를 최소한 5번을 봤을거다.
특히 국사는 11번 넘게 봐서 이미 너덜너덜 해졌다.
그러나 점수는 국사는 4~5등급 완전 황당+좌절이었다.
국사교과서와 독학국사를 병했 했었는데 역시 엄청난 양의 압박은 어쩔수 없던것일까.
그나마 사탐 나머지 3과목은 1~3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탐 오답노트에는 벌써 반년간 100문제가 넘는 문제가 있어서 다시 볼것도 많았다.
약점이 굉장히 많은것 같았다.
오답노트를 보는시간을 늘리기위해
마지막 모의고사를 버릴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 봤다.
보통 마지막 모의고사를 두렵다고 성적이 덜어질거라고
어차피 모의고사라고 안보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생각할때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할때 그건 절대 아니다.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는지 안보는지가 중요하다
보는게 가장 중요하다. 안보고 잘보는 인간을 거의 본적이없다. 적어도 내게는
점수가 어쨌든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면 도움이 될것이다.
그리고 내 페이스를 찾았다.

11월 1일 종로 final
언어 80 3등급 수리 86 1등급 영어 91 2등급
국사 41 4등급 한지 48 1등급 근현 41 4등급 경제 37 5등급
총점 424 전국 백분 9%

11월 11일
언어 72 5등급 수리 100 1등급 영어 100 1등급
국사 38 한지 45 근현 38 경제 47
사탐 퍼센트가 기록 안되있다.
아마 언어 5등급 보고 찠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총점 439

이렇게 모의고사는 끝이 났고 나머지 10일이 남았다.

솔직히 마지막 모의고사는 왜봤나 싶었다.
언어가 5등급이다. 수리를 다 맞았어도 어디까지나 너무 쉽고 운이 좋은것 뿐 거기까지였다.
언어 때문에 망할것 같았다. 두려웠다.
내가 한국인인가 싶었다. 언어 문제집은 풀어도풀어도 오르지않고 나는 바보인가 생각했다.

수학은 오답노트의 덕을 정말 많이봤다.
그러나 언어는 오답노트 조차 없다.
사탐도 오답노트에 각과목당 기본이 150문제가 쌓여있었다.

마무리타이밍에 언어 영역을 위해 내가 본건 그냥 문제집에 딸려있는 문학 100선
그리고 마하3 5회분 뿐이다. 풀면서 두렵고 두렵고 두려웠다.
마하3는 70점을 넘은적이없다. 좌절 또 좌절했다. 내가 왜 이 문제집을 풀었나 싶었다.
퇴소는 수능을 3일 남기고 했다. 열심히 했다. 그러나 불안햇다.
수능 전날 그냥 현역때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때보다 몇배를 열심히 했으며
마지막 모의고사가 언어 5등급이라도 기적을 이루어 낼꺼라고
9월 KICE 수능 모의평가에서 374였지만
꼭 수능은 내가 한만큼 보여주겠다고
괜히 거액을 들여서 기숙학원에 들어간것도 아니고
남들 놀때 혼자서 불켜놓고 공부한게 아니라고

물론 그런 수험생들은 많겠지만
나는 상당히 모의고사를 잡치고 있고
꼭 할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편히 잠을 자고 자신김을 가졌다.

정말 편히 잠을 잤다. -_-.. 2년간 수능전날은 이랬다.
시험이 무서워 밤을 샜다는 이야기 나에게는 해당 안 되는거 같다.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졌다. 현역 때처럼 반전은 일어날것이다.
난 실전에 강해! 점수 분명히 올라!
적어도 잠 들기전 내 생각은 그랬다..


15) 수능날



드디어 수능이다.

내가 이걸 위해 시간과 돈을 얼마를 쏟아 부었는지 하늘을 보며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작년과 시험보는 학교, 고사실이 똑같았다.
-_-... 좋은건지 나쁜건지..
1시간전부터 와서 언어 요약집을 봤다.
바보같이 오답노트를 다들고 왔다. 국사책도 가지고 왔다 -_-
별로 보지도 못했다. 그냥 눈팅이나 하는거랄까?

언어영역 시험지를 나눠주기전 심호흡을 하고 내 자신을 믿었다.
엄청 쉽게나오면 절대 실수 하면 안된다. 기회다 기회.. 꼭 잡아야 한다.

언어영역은 지금까지 풀어본것 중에 가장 쉬웠다. 다 맞을거라 생각했다.
20분이 남았다. 그러나 자만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가 5등급이였다.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
그리고 검토를 하다 고쳤다.

수리영역..
정말 어려웠다.
풀수 있는 문제도 별로 없었고 그냥 말 그대로 식은 나오는데 이게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27~30번은 정말 개 압박이었다. 시간이 15분남았는데 4개다 너무... 어려웠다.
27 28번을 해치우니 시간은 5분남았다. 29번도 못풀겠고, 30번도 못풀겠다.
......
시간은 흐르고 공식은 짐작이 안됐다. -_-..... 망했다......
찍을수 밖에 없었다. 4 12.. 그래 찍었다....5초후에 29번은 다시 고쳤다.
30번은 주관식이다 그냥 틀린거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기분이 엿같았다.
그동안 그렇게 수리영역 하루에 최소 7시간씩 한거 같은데 멀한걸까...
밥먹고 엎드려있었다.

앞에 앞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는데
걔랑 좀 이야기하다가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수학은 70점대초반이 확실했다. 그래... 안돼
영어라도 만점 받자... 꼭 맞아야한다.

그리고 외국어 영역도 지나갔다. 정말 꼼꼼히 풀었다.
온힘을 다하여 마지막 1초까지 남기지 않고 문제만 봤다.
평소엔 시간이 20분정도 남는데.. 딱 맞춰서 풀었다. 죽을힘을 다해 검토를 몇십번했다.
종이 울렸다.

이제 남은건 사탐 제2외국어다

사탐... -_-  정말 어려웠다.
체감난이도는 9월을 능가했다.
국사 한국지리 근현대사 경제 만만한게 없었다.
근현대사나 만점을 노려볼만했고
국사는 완전 망했고 한국지리는 더 망한듯 했다.
일단 3문제는 모르겠고 2문제는 2개가 햇갈리는데
알길이 없어서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찍었다.
경제는 그래프가 햇갈리고 지쳐왔다.
제2외국어는 무난했다.

나오면서 울고 싶었다. 언어도 잘 친건지 못 친건지 왠지 갑자기 또 5등급 뜰거 같고
수리는 70대 초반 확정에, 외국어도 좀 난감했고 사탐은 쌌고 삼수 확정이었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어머니께 머라고 말씀드릴지 몰랐다.
복학을 해야하는건가.. 내 1학기 학점이 0.09다...내가 대학에서 시험을 본게 없다..
삼수는 조금 그렇다... 이게 멀까.. 울고 싶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복학할 생각은 없었고 삼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그래도 채점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어쩔수 없이 채점을 시작했다.

대반전이었다.

언어 96 91% 수리 93 99% 외국어 100 100%
국사 42 한지 37 근현 47 경제 42 독어 49

총점 457
언수외 오르비 기준 전국 0.3%
사탐 3과목 전국 0.5%
사탐 4과목 전국 0.7%

수능은 작년보다 무지 어려웠다. 언어가 너무 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수학의 살인적인 난이도와 사탐의 전례후무한 난이도로
주변에서 작년보다 언어에서 4점정도 오르고 수학에서 8점 정도 떨어져서 언수외는 5점 사탐에서 과목마다 다르지만 보통 30점 평균 35점 정도 떨어졌다.

9월보다 80점 상승했고 언어는 1등급을 가까스로 노려볼 만 한것 같았다.
언어에서 고친 2문제는 다 틀렸다. 그런데 수학이 대박이었다.
찍은 30번 주관식인데 -_- 맞았다......;;;;;;;;;
세상에.... 게다가 29번.. 찍은거 다시 안 고쳤으면 97일뻔했다.
미쳤다. 이생각 밖에 안들었다.
분명히 가표기표에는 30번 12라고 적혀져있고 12라고 쓴 기억이났다.

아 ㅜ.ㅜ 감동이었다.

비록 사탐은 완전 싼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1등급 하나는 나올것 같았다.
사탐에서 에러였지만 사탐은 상대적으로 약한 과목이었고

수리가 너무 대단했다. 채점하고 놀러갔다.
문과 반수생 중에서는 내가 언수외가 가장 높았다.

9월 교육평이 374점이었는데
나중에 평가해보니  9월 교평보다 사탐 난이도가 실질적으로 그리고 표점상으로도 어느정도 증가했기에 83점 오른게 아니라 실질적으론 점수가 100점 정도 오른거였다.
120일만에 80점을 채다니..

정말 행복했다.


16) 마지막 원서 피날레 작전



해볼 만 했다. 내 목표를 이룰만 했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자신감을 가진 보람이 있었다.

이제 원서접수를 해야했다.

나의 목표는 고대 경영이나 고대 국제학부였다.
하지만 고대 경영은 올해 볼때 작년의 여파로 빡새고 초고수 지원자가 많았다.
원래 법칙상 연타 펑크는 나지 않는다. 솔직히 05 고경도 별로 빵구는 아니다.
예외점수가 있을뿐(합격자의 90%라인뒤로). 대기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0.8프로 안이었다.
그 통계가 우리학교에 남아있었다.
고대 국제학부 통계를 한번 보았다. 모집인원 6명
....
-_- 뭔가 아닌거 같았다. 너무 사람수가 적었다.

나군은 서강대를 널까 생각했다. 그러나 원서 접수기간중 생각을 바꿨다.
일단 서강대가 엄청 빡셀것 같았다. 그런 기운이 보였다. 그리고 서강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울대를 지르는 생각을 했다. 한번 2배수 펑크를 노려보는게 어떨까 생각햇다.
서울대 법경사중 법이 가장 경쟁률이 마지막날 높았지만
딱보니 어쩌면 운좋게 2배수라도 들어갈수 있을거라 추측했다.
법과대학이 경쟁률은 젤 낮을것이다. 그냥 지르는거 였다.
역시 내 예측대로 설법은 법경사중 경쟁률이 가장 낮았고
2점 극초반대라는 역사상 최저 경쟁률을 선보였다.

나는 합격을 바라지 않았다. 내 내신은 서울대 점수로 5점이 깎였다.
서울대 점수 94.77 완전 gg였다.
그리고 내 석차 고1 고2 고3 합쳐서 백분위를 내보니-_-  석차 종합 백분위는 91%였다.
백분위가 91%라고 뒤에 사람이 있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36명중 35등이라 치자 근데 이사람이 각 과목마다 전부 꼴지를 안 할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보통 일반고 꼴지는 석차 백분위가 60-70%정도이다. 그렇기에 이건 말도 안되는 내신 점수였다. 80점을 맞아도 과등수 72/72로 꼴지가 나오는게 다반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정말 모교 사상 역대 서울대 내신 최저점이 었다.
우리학교의 영어 특기자 보다도 내 내신이 더 낮았다.

그냥 원서를 집어넣어서 면접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냥 배짱이었다. 그리고 다군도 한의대를 질렀다.

가군은 고심을 많이했다. 나는 일단 연대는 절대 안된다.
내신도 있지만 연대가 단과대가 올해 하향 지원여파로 도미노현상에 위해
연대 경영 연대 법대같은 위에 과들이 뚫릴것 같다고해도
내신 -30(수능으론 언수외 60점차 서울대보다 더 가옥..)점에 나는 사탐 표점이 너무 안좋았다. 최고 쪽박 4과목안에 드는 과목이 3개다;;;

결국 나의 최대고민은 가군에 고대 경영을 쓸것인가 고대국제학부를 쓸것인가 였는데
고대 경영은 올해 사탐 3과목 백분위 때문에 대박이 날것 같았다. 대박이 나더라도 고대 경영을 최초는 힘들고 예비로 합격을 노릴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막바지에 외교관을 목표로 하는 나의 꿈을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영역을 영어 100프로로 수업을 듣는 국제학부가 외무고시 준비하기 좋지 않겠냐고 마음이 기울었다.

수시 불합격자 8명 다행히 인원이 늘었다. 6명보다는 한 몇배 나았다. 하지만 14명은 모험이다.
삼수를 각오해야했다. 그리고.... 도전했다.

이중접수를 하는바람에 죽는 줄알았다.
원서접수가 하루 연장되기전에
원서 막판 경쟁률을 보고 5시간동안 접수를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막판 눈치작전 때문에 서버가 다운된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 원서접수를 하루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원서 접수가 이중으로 되었다. uway 진학사... 엄청 고생했다.
이거 시험보기도 전에 떨어지는것 아닌가 했다.
다행이도 그 다음날 한쪽에 쓴 원서가 취소됐다.

근처에 있는 논술학원을 등록했다.
논술학원은 논술에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15번중에 7번 나갔다. 거의 농땡이 였다.
지원자들이 강한데 겁이 없었다. 당시 너무 고득점 층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소신을 믿었다. 그리고 고대 국제학부는 정말 가고 싶은 사람들만 쓰고
이 사람들은 수능이 전체적으로 그다지 높지않다는 판단하에
나는 당연히 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논술날 논술주제는 작년보다는 쉬웠다.
논술을 열심히 잘 썼다 그냥 나중에 논술 예비답안 나오니 무난하게 쓴거 같았다.

그러나 무난한 정도론 불안했다. 과 특성상 대기번호가 뜨면 조금 위험했다.
최초합격을 해야하는데 과연 할수 있을까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합격자 발표때까지는 놀았다.

서울대는 일찌감치 1차에서 내쳐졌다.
설법이 역대 최저퍼센트 최저점의 1차 합격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문이 167 설경이 164 설법이 162... 410점대 또는 언수외 -50이 원서를 써도 내신 만점이면 붙는다는 소리였다.)
내신은 역시 난감했다. ㅜ.ㅜ 아깝게 떨어졌다.
경쟁률도 역대 최저였고 설법경사 모두 2.초반대의 환상의 경쟁률을 자랑했는데도 말이다.
말 그대로 허수지원자의 말로였다.

다군의 세명대 한의대도 떨어졌다.
내신 500점 만점에 내신 100점이 깎이니
머 당연했다. 벌써 2패였다. 머 2패는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1승 아니 1무만을 원했다.



1월 18일

이틀이나 빨리 합격자가 발표됐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솔직히 되도 예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최초합격했다.
ㅜ.ㅜ
아... 합격했다.

고등학교때 많이 드나 들면서
꿈으로만 생각했던 안암동의 고대 캠퍼스가
우리학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날 아웃백에서 친구들에게 참 거하게 쐈다. 그출혈이란 -_- 30만원 바이바이


17) 수기를 끝마치며


합격을 했다.
06의 내 전적은 1승 2패이다.
솔직히 조금 불안은 했다. 2패를 먼저 안고 있는게 수험생에게 얼마나 불안요소인지 모른다.
그러나 안전지원은 내키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선택에 후회가 없었던 거 같다.
합격을 했다.
가장 원서지원을 잘하는 자는 바로 전국 수석이 아닌 이상 1무 2패라고 생각한다.
특히 원서철에 입시계의 카오스가 몰아치면 소신지원이 답이다.

그동안 수기를 쓸까 말까 많이 고민됐다.
이 수기를 쓰면
내 정체는 밝혀질 것이고
동기들의 놀림감이 될수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태클도 들어올것이다.
학교의 명예에 먹칠도 좀 할거다.

같은 동기들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를 잘 모르긴 모른다.
조용히 합격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냈다.
이런 결과 그리고 이런시도
그리고 이런인간이 있다는걸 알려야했다.

나의 꿈은 수기쓰기였다.
원래 내가 2년동안 다이어리를 쓴 이유도
다이어리를 토대로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서 였다.
물론 힘들때 다이어리가 나의 다짐과 내가 지나온길을 보여주면서
힘이되기도 했지만
꼭 수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수많은 수기를 읽었지만 사부로형의 수기에서 힘을 얻은 이유는 단기간에 초인적으로 공부를 해도 점수를 올릴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 수기처럼 내 수기도 다른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사실 오르비의 거의 모든수기는 원래 어느정도 꽤 하시던 분들이 최상위권 대학에 정석처럼 합격하는 케이스가 내가 본 바로는 대부분이었다.
04년도부터 합격자 수기를 거의 다본 나는 나같은 초하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올라간 케이스가 없는걸 보고 수기들을 보면서 ‘정말 나는 희망이 없나’ 하며 좌절도 한때 했었으며, 꼭 내가 점수를 대폭 시켜서 지금까지 없던 패턴의 합격자 수기로 수험생들에게 점수를 많이 올릴 수 있고 내 수기를 통해 수험생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었다.
또 사부로 형의 수기가 나에게 감명을 주고 확신을 준것처럼
어느 수험생에게 그 사람에게 가장 감명 깊은 수기를 전해주고 싶다는게
단 한명이라도 그렇게 전해주는게 그 수기가 비난을 받든 칭찬을 받든 꼭 남기고 싶은 이유였다.
앞으로 이 수기를 남겼기에 나는 여러 가지를 감당해 내야할거다.

이제 내 동생이 07수능에 도전할것이다.
아직 미숙하지만 그애에게 꼭 이수기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2년간의 공부다이어리도 함께..
보통 수기를 쓰고 오르비를 접지만
나는 동생때문에 07의 입시가 모두 끝날때까지 오르비에 남아있을거다.

그리고 몇가지 조언과 예측도 남겨둘 예정이다.
올해는 하향지원때문에 최상위권 학교의 몇몇 학과가 빈 해였다.
덕분에 친구 몇명을 인서울이 희박한 저득점에도 불구하고 Y대학 최상위 학과에 진학시킬수 있었다.
이런 상황의 원인은 완벽하게 최상위권 그러니까 오르비급의 수험생들을
누적도수와 퍼센트를 아주정확히는 예측할수 없고
해마다 경향의 변수에 예를 들어 상향지원이라든지 하향지원 그리고
대학별로 유불리가 나뉘기 때문에 07수능에서도 여전히 몇몇과가 비는건 지속될것이다.
그러나 07년도는 일단 대학정원은 줄지만 수험생 총인원수가 정말 많아지기에
그리고 마지막 표준점수 체제 수능이기에.
정말 열심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07수험생들은 올림픽 월드컵을 잊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셔야 할것이다.

수험생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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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제 수기였고

고대 국제학부를 지원하려는 분들 정말 환영합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07학번이 표점제 수능이었고 제 예상대로 등급제가 1년만에 폐지되고 09년도 수능은 다시 표준점수체제지요? 05 06 07때의 데이터를 잘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전년도 데이터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의미가 없습니다. 등급제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등급에 맞추시는게 아니라 무조건 언수외를 높게 그리고 모든과목을 만점을 목표로 삼으시고 공부를 하셔야합니다. 현재 08 수능이 변별력이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다 06때처럼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렵게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건 다 아실겁니다. 그리고 입시 대란을 대비해 지금부터 입시자료를 잘 모으시고 대비 하시길 바랍니다.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쪽지 주시면 꽤 오랜 기간후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05 06 07때의 입시 데이터는 제 싸이에 몇 개 저장되어있는데 여러분께서 오르비 내에서 뒤져보시는게 좋으실 겁니다.
그럼 공부 열심히 하시고 건투를 빕니다 ㅋ

아 원본 요청하실 분들은 쪽지로 꼭 이메일을 써서 보내주세요.
시간날 때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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