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백학동자 [174930] · 쪽지

2008-02-11 02:12:48
조회수 1,071

재수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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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 여러분 안녕하세요. ^^;;
지금부터 제가 할 얘기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않은... 그냥 맘속에 담아두고 있던 제 자신의 입시이야기 입니다.
여기에 이런글을 남기는 이유는 그냥.. 한번 홀가분하게 털어놓고 싶어서 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고 우울하더라도 아무쪼록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세요.;;;





그럼 시작합니다.



고3때 저는 반애들 중에서도 그나마 선생님들에게 신임을 받는 녀석이었죠. 성적은 모의고사 450~470 사이에 머무는 정도였습니다. 학교가 부산의 한 인문계였기때문에.. 나름 상위축에 드는 점수였죠. 그래도 목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로 제 실력보다는 한참을 높게 정했습니다... 학교와 선생님들 측에서 거는 기대때문이었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는 고3때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목표로 정한 곳이 자신의 실력과 그렇게 괴리가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항상 자신에대한 믿음 만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였죠. 아니 어쩌면 그건 믿음도 아닌, 단지 제 자신에게 거는 기대였을지도 모릅니다. 학교서 하는 야간 자율학습도 종종 이 핑계, 저 핑계로 한달에 2~3번씩은 빠졌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성적이 좋은편인 아이들을 약한 편애하시던 터라 자율학습을 튀고난뒤, 같이 도망간 친구들보다도 항상 덜 혼나서 애들이 갈구기도 했죠..ㅎㅎ  오죽하면 제 별명이 \'선조퇴 후허락\',\'무정부 주의자\' 였겠습니까..;;;
시간은 어느덧 흘러 수능때가 다가왔습니다. 10월중순~11월초, 당시 저는 고3 여름방학 이후에 구입한 PMP가 있어서 하루4~5, 주말 10~11 시간 자습의 대부분을 무수한 인강을 들으며 보냈죠. 그편이 자습보다는 더 빨리 정리가 되는듯 했고, 진도가 팍팍 나가서 공부에 속력도 붙는 데다가 이왕 산거 본전을 뽑아야된다는 생각에 마구마구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준비해서 맞이한 수능은 생각했던것 보다 별로 떨리지 않았죠. 같은반 친구도 2명이나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봤기 때문에 평소 모의고사를 보는 듯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수험표 뒤쪽에 적어온 답을 신문사 홈페이지에 올라왔있는 정답으로 채점해본 결과 총합 472점을 맞았더군요.. 그치만 제가 선택한 사탐의 국사, 근현대사, 법과사회가 표점이 가장 안나오는 3개였기 때문에 표점 527점으로 좋지 못했죠.. 결국 그렇게 바라보던 서울대 경영학과는 써보지도 못하고 가군엔 연대 인문, 나군엔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과를 쓰고 둘다 떨어져 버렸습니다.ㅠㅠ 재수가 결정된 것이죠...(다군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재수가 결정났을때 \'그래 뭐 까짓꺼 1년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 가면 되는 거야!\'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죠. 그러나 그게 아니더군요...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과 재수해야한다는 고통이 절 엄습해 왔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정말로...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아... 재수가 결정된뒤 고연대 Portal과 서울대 Portal을 들어가지 못하고... 로그인 해야 볼 수있는 재수생동에 들어갈때의 그 기분.. 정말로 참담하더군요.
그래도 부모님께 죄스런 생각에, 재수란거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다닐만한 학원을 찾아봤습니다. 그리하여 인터넷에서 알게된 게 강남대성이었죠... 강남대성에는 정말 전국급으로 잘하는 수험생이 몰린다는 얘길 듣고, 그렇게 잘하는 애들 속에서 한번 부딪혀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한녀석들이 우글대는 속에서 강해져야만이 제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그렇게.. 19년간 살았고, 정들었던 부산을 뒤로한 채 홀로 상경해서 재수생활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결정한뒤... 서울로 올라가기전 저는 평생에 한번인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나 졸업식은 학원의 오리엔테이션과 일정이 겹치는 상태였습니다 ... 전 졸업식에 정말 가고 싶어 학원 오리엔테이션은 생략하면 안되겠냐는 말을 부모님께 꺼냈지만.. 아버지는 그딴 멍청한 정신머리와 냐약한 생각을 가지고 무슨 재수라며 다 때려치우라고 화내셨죠. 결국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졸업식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그날, 졸업식을 앞둔 그날, 저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습니다. 마음상한 아버지는 그냥 가버리셨고, 대합실엔 저와 어머니만이 남았죠. 기차 출발 10분전 어머니가 학교에 가봐야 한다며 나가셨습니다. 그때 전 봤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나가시는 모습을... 정말 가슴이 찢어 지게 아팠고 눈물이 게속 났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고, 하숙집에 혼자 들어가 짐을 정리할때까지 혼자서 정말 미친것처럼 울었습니다.
  
재수는 시작하면서 저는 정말 독하게 생활했습니다. 반애들과도 거리감을 두고 그냥 공부만 했습니다.... KNDS의 학원비+ 하숙비 포함에 하루 8시부터 저녁 자습 끝날떄까지 하루에 6만5 천원.... 시간당 약 3천3백원이란걸 계산 하면서 저랑 하숙집 룸메이트 녀석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숙비가 비쌋음에도 불구하고, 넌 돈 걱정은 하지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께 그런 부담감 내보이기 싫어서... 옮기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내게 걸어주시는 믿음과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차라리 더 공부해서 서울대 갈 정도를 생각하자! 돈이야 나중에 몇배로 되돌려 드리면 된다.\' 고... 믿음과 기대는 부담으로 뿌리치지 말고 짊어 지고 가야 된다고 그렇게 수없이..한없이 되뇌었습니다... 부모님께 밥사먹을 돈이 없다고.. 책사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그말이 정말로 하기 싫어서 최대한 돈을 아꼈습니다. 부모님이 계좌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하실떄마다 말을 돌리면서 얼어무렸습니다. 아침 저녁은 하숙집에서 줬기때문에 괜찮았지만 점심은 굶거나 매점에서 1500원 짜리 샌드위치를 사먹으면서 최대로 버텼죠. 가끔씩 친구들에게도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처음주신 돈으로 버텼건만... 딱 6월쯤이 되니까 돈이 떨어지더군요.
마음도 심란하고.. 돈도 떨어져서 이젠 어떡하나..전화해서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며 교대운동장을 걷다가 집에 들어가니 택배가 와 있더군요. 열어보니 어머니가 여름에 입을 옷을 보내주신거였습니다.. 옷을 정리하다가 박스 속에서 흰 봉투를 발견했죠. 돈이... 들어있더군요... 정말 그때.. 나 자신이.. 그렇게 비겁하고 약해빠진놈인줄 처음알았습니다. 정말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나고 능력도 없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무엇보다도... 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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