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외계친구앨리 [120424] · 쪽지

2006-02-25 21:24:03
조회수 29,774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수학\'가\'에서부터 서울대고급수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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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바닥의 수학성적을 가진 아이가, 그것을 극복하고, 결국 자신의 목표대학, 목표학과에 합격할 때까지의 저의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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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취미를 가진 아이가 있었죠. 전지에 집을 가득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세계지도를 몇시간 씩이나 뚫어져라 쳐다보며, 초등학교 고학년 누나들의 사회과부도를 받으면 그렇게 좋아하고 간직하는, 희한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특기를 보니까.. 피아노 아무렇게나 뚱땅거리기, 그림(주로 건축물)그리기, 세계지도 외우기, 왕조계보 외우기,,뭐 이런것 따위였죠.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경복궁 모형 파노라마 였고,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동궐도(동궐도: 창덕궁 일곽을 파노라마 시각에서 그린 그림입니다.)였습니다.

못하는 것은 수학인데,,,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에서 저는 유난히 공부를 못했습니다. 어찌된 셈인지 외가, 친가를 통틀어도 반1등은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었고, 한두명을 빼고는 모두 전교에서 열손가락 안에서 노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세분 할아버지들 중 두분이 서울대 출신일 정도로 집안 학벌이 좋은 편이었고, 어릴때부터 누구누구 연고대 갔다더라~는 소리는 당연한 소리에 속할 정도였습니다.
매해 구정 쯔음에 형,누나들의 입시결과가 나왔을때, 보통 듣는 말이 연고대 붙었다는 말이었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꼬마들은 그 형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더란 말이죠.
‘’에이 서울대도 못가냐~‘’ -_-;;

저도 꿈이 컸었습니다. 집안 내력이랄까... 수학 ‘양’도 못 받아본 주제에, 딴으로는 ‘연고대 갔을 경우, 같은 학부 서울대 애들에게 눌릴터인데... 어떻하나.’ 라는 분수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할 정도로 눈이 높았습니다.

중학교시절에, 저의 20대를 생각해보면 암울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장에 취직을 해서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 를 생각해보면, 무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역시나 공부를 별로 못했습니다. 수학 ‘가’ 행진은 깨지지 않았구요...
마의 50점을 넘는게 힘들었었죠. 중학교 시절 통틀어 이 장벽을 넘어본 적이 단 한번 있었더랍니다. 중1때 한번 벼락치기를 해본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72점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한번뿐, 학년이 올라가면서 수학성적은 더 떨어졌고, 평균도 더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때 저의 일반적인 전과목평균점수는 70점대였습니다. 그야말로 전교 세자리 등수에 폭 빠져있는 성적이죠.

중2때 평택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집 뒤에는 ‘동방학교’ 라고 하여서, 뇌성마비 장애인분들의 보호시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평택에서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아이를 ‘동방’ 이라고 놀립니다.
그런데... 저도 좀 어리숙했나 봅니다. 평택에 전학 온 저는 하는 짓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동방’ 이 되었습니다. 저능아 취급하신다고 보면 됩니다. ‘유관순이 누군지는 아냐’ 라는 질문도 받아본적이 있었으니까요. 이전 학교들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상식있는 아이로 여겨졌었는데, 여기서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별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환청도 들었습니다. ‘동방’ ‘동방’ 이렇게.. 그런 저를 구원해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희반 반장이에요.
그 반장덕분으로 ‘동방 증후군’ 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제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여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앞으로 저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이러한 꿈들이 있었어요. 어렸을때는, 역사학자,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졌지요. 그러나, 중학교때부터 동방소리를 회피하기 위해-무슨 일을 해도 동방, 저능아 소리를 들으니까-얌전히 앉아서 그림만 그렸었는데, 그 그림들이 대체로 건축물들이었어요. 그때 그린 건축물들이 아야소피아, 성베드로, 천단, 자금성, 황금의 집,등등이었죠. 거기에다가, 건축이라는 분야는 지도, 미술, 사회등등의 저의 다른 관심사를 통합할수 있는 무언가이기도 했고요, 어렸을때부터 해변에 가면 물놀이하는 시간보다는 모래성쌓는데 들이는 시간이 더많은 저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죠. 그래서 중학교때부터 건축가가 되자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공과대학의 압박은 수포생에게는 너무 컷습니다. 자연계진학은 말도 안되는 형국이죠, 나름대로의 노력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미대에 신설되기 시작한 건축디자인, 그것도 안되면 실내디자인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고, 미대진학의 꿈을 가졌습니다.

마침 미술선생님께서 예고진학을 추천하셔서, 분당에 있는 예고인 계원예고를 가려는 목표를 가졌었습니다. 사실 저의 야자의 역사는 중3때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밤10시까지 미술학원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형편없는 내신성적으로 결국 예고는 원서도 못쓰고 포기했습니다. 실망이 크고, 현제 저의 상태에 대해서 냉정히 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고에 ‘예’자만 들어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꿈은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결국 저는 초등학교 입학한 이례로 제대로 한적이 없었던 수학공부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입총정리를 푸는데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이때쯤이 저의 수학실력의 절정기로 3-2 중간고사 수학 23점을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반장인 제 친구가 옆에서 문제를 풀어주는데, 친구의 설명마저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를 지경 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그 당시 사칙연산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친구는 하루종일 제 옆에서 정말 못하는 저의 수학실력 향상을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자신 공부는 언제 할까 걱정이 될정도로...  예고의 충격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눈뜨면 수학공부에만 매진했었으니까요. 점수가 공개되지 않았던 고입(상위권애들은 어떻게 다 알더군요...)을 봐서, S고를 합격하고, 다시,2학기 기말고사를 봤습니다. 40점 맞았습니다.

하늘이 노랬습니다. 사실, 지금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뭔지도 하나도 이해가 안가는 문제풀이만 매달렸었으니까요. 하여튼 이 충격으로 고등학교 입학때까지 공부를 놓고 살았습니다. 물론, 인생을 포기한 것은 아니였어요.

저는 겨울방학에 그 친구에게 이번 새해에는 S고 전교 열손가락 안에 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이없었겠죠. 저는 S고 입학생중 꼴찌에 가까우니까요. 그 친구는 졸업성적이 전교 4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저에게 이런말을 해주었습니다
\'\'고등학교가면 나보다 네가 더 잘할것 같다.\'\'
과연 저라면 이렇게 말할수 있었을까요...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모든 대인관계를 팽개치고 공부에만 열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보면 다 저보다 공부를 잘할것이라는 생각이 떠날줄을 몰랐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저는 내신기준으로 저희학교 320명중 319등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내신+고입해도 260등대였고요. 그러나 정말 힘이 되준 것은 그 친구였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있는데, 별로 더 이상 친구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일류P고에 가서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잡다한 인간관계생각이 나지 않을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공부할때에, 쉬는시간, 점심시간 활용은 기본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국어자습서 앞에 펼쳐놓고 읽으면서 먹었고, 아직 보충이 시작되지 않아서 비는 4시에서 7시까지의 시각에 적당이 밥은 컵라면으로 때우면서, 빈 교실에 혼자 남아 공부했었습니다. 10시에 자율이 끝나지만, 11시 이후까지 혼자 남아 공부했었고, 체육시간에도 저희학교 정원 이슥한 곳에서 책펴놓고 공부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앉아있는 조용한 교실, 밖은 깜깜한 밤, 내가 있는 곳 주변에 형광등만 켜진 침침한 교실. 이때가 공부가 가장 잘되는 시간입니다. 이시간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특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월달에 이시간은 제가 수학책을 펼쳐놓고 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정석에 쉬운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애들은 벌써 정석을 다 풀었네.. 뗐네.. 하는데 저는 아직 삼분에 일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유독히 나만 공부에 매달리니, 과연 얼마나 풀었나... 곁눈질하던 애들이 비웃으며 돌아가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풀어도, 답이 맞는 문제가 없습니다. 몇문제는 아예 모르겠고, 몇문제는 풀이과정은 아는데, 사칙연산을 도대체 몇 번이나 잘못했는지, 답이 제대로 나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수학문제만 보면, 공포감이 오고, 머릿속이 하얘집니다...나는 수학을 과연 할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어느세 안구에 습기가 찹니다. 울고 싶습니다....

3월 30일에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봤습니다. 잊을수 없는 모의고사입니다. ‘하면 되는구나’ 를 맨처음 알게해준 모의였으니까요. 400만점으로 301점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모두 이런 점수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이 성적표를 받고, 그리고 배치표에서, 국민대, 단국대 급간인 것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in서울에 있는 대학에 나도 갈수 있구나!! 나도 전교 52등이구나!!(저희학교 별로 못합니다. 2류니까요. 그러나 여자애들은 P여중 전교 수석, 차석을 비롯 최고의 애들이 옵니다.)

그 후로 저는 잘나갔습니다. 모의고사도 계속 올라서, 6월 교육청 모의때는 종합1등급이내에 진입했습니다. 1학년 학기말에는 드디어 모의 360을 넘었습니다.
1학기 종합내신은 전교 15등이었지만, 2학기 종합은 전교7등을 기록했습니다.
저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
제가 1학년 2학기 들어서 모의가 360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학교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교장실에 들어가서 교장선생님과 독대도 하고, 격려와 함께 포상금으로 30만원 받았습니다. *^^*

2학년이 되었습니다. 1학년때는 심화반(성적별로 우수반을 편성합니다.)에 들 수가 없었지만, 2학년 때는 우반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열손가락 안에 들었으니까요.
2학년 들어와서 첫 시험을 봤습니다. 평균이 98점을 넘었습니다. 보통 전교1등이 평균97점대에서 형성되는 학교라서, 저는 제가 전교 1등인줄 알았습니다. 이정도 등수 애들은 서로서로 맞춰보고 미리 등수를 알지 않습니까.

ㄴㅅㅈㅈ이 있었습니다. 법과사회과목 주관식을 고쳐쓰고 동그라미를 그어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아이의 답안지를 걷을때 슬쩍 본바에 의하면(저는 시험지 검토하고, 답안 확인하느라, 항상 시험시간을 다씁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저희줄 답안지를 걷었었습니다.) 오답이었는데, 결과는 그 아이가100점이 나왔던 겁니다. 이상해서 답안지를 슬쩍 확인해 봤더니, 주관식 답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원래는 제가 1등이었지만, 그때문제 그아이의 총점이 4점이 올라서, 저는 2등이 되었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정말 친한 몇몇 얘들 말고는 말도 못하고, 집에와서 마구마구 떼를 쓰며 울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걔는 우리학교 모의고사1등이고, 저희학교같은 지방학교들은 누군가 한명을 밀어줘야 합니다. 내신도 누군가가 쓸어담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대학에 가기 힘듭니다.... 게다가 법과사회담당은 저희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좋은 분이십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합니다. 저는 결국 조용히 이 사건을 덮고 넘어갔습니다. 이번만이 아닐 것입니다. 1학년때의 몇몇 에피소드들의 숨은 전말이 들어나면서 이제야 이해가 되는 중요한 키가 되는 사건이었죠. 그러나, 저는 조용히 이 사건을 덮고 넘어갔습니다. 앞으로 이것이 어떤 화근이 될지는 알지 못한채로...

공교롭게도 시험 직후에 저희학교 골든벨 촬영이 있었습니다. 타반에는 2~3명씩 출연자가 배정되었지만, 심화반인 우리반은 9명이나 배정이 되었습니다. 일단 반에서 누구나 상식이 많다고 인정하는 두사람은 무조건 보내고, 나머지는 제비뽑기를 했었죠. 저도 그 무조건 보내는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많은 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골든벨 유력주로 생각해주셨습니다.
촬영 전날 영어시간에는 영어선생님께 ‘만일 니가 최후의 1인이 된다면 도우미는 누구로 할래?’ 라는 질문도 받았고, 촬영전날 야자시간에 기숙사 사감선생님께서 ‘나는 너 아니면 우리학교에서 될사람이 없을것 같다’ 라면서 박카스도 받았습니다.^^;;;

예상이 맞았습니다. 저는 결국 49번 ‘성학집요’를 맞추지 못해서 골든벨을 울리지는 못했지만, 제가 최후의 1인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답을 너무 빨리 쓰는 바람에 주최즉이 겁먹고 난이도를 급하게 올린 것 같다’라고 말하시더군요..ㅋ

2학년때는 전체적으로 내신이 뒷걸음쳤습니다. 문과에서 이과로 오면서 전교인원수가 줄어서 성적이 더 올라야 하는데, 그당시 우리학교 이과는 내신지옥으로 악명높았고(1학년때 전교10등안에서 7등하는 여자애 한명 제외하고 모두 이과 궈궈) 거기다가 그 사건 이후로 내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 다음시험은 전교 10등, 그 다음시험은 12등.. 이런식으로 슬슬 떨어졌죠...

그러나, 수학에 대한 컴플랙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모의고사점수는 점점더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2학년 때부터는, 아이들이 수학을 물어보러 오는 나름대로의 우리학교 실력자로써 부상하기 시작했고, 선행학습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수학공부에 대해 말할 것이 있어요. 제가 중3때 열심히 하고도 40점맞은 비결은 개념은 팽게치고 이해도 안되는 문제만 풀었다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많은 수험생들이 아직도 이러한 방법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는 결코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
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아까 제가 말한 것처럼 징그럽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저처럼 수학이 정말 바닥인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나, 개념학습 정말!!! 중요합니다. 이해하세요, 그리고 그 이해를 실제로 적용하는 기쁨을 맛보세요. 수학의 참맛을 아는 사람에게 수학은 더 이상 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왕도는 없습니다. 성적을 빨리 올리길 원하신다면, 그럴수록 더 징그럽게 무시무시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십시오. 안풀리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고민하십시오, 처음에는 자괴감이 듭니다. 나중에 풀이를 보면 내가 이렇게 간단한 것도 생각 못하다니.. 하고 자책감도 듭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풀은 문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을 연습장에 적으세요. 소감을 적으라는 것이 아니라, 풀이과정을 예쁘게 정리하세요. 이렇게 하면 결코 나중에 그 풀이는 까먹지 않습니다. 나의 땀이 배어있으니까요.

이때 쯔음 말했다시피 저는 수학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의고사에서도 수학은 항상 95점 이상을 맴돌았었습니다.
모의고사는 점점 더 올라랐고 9월쯤에는 472점을 받아서, 전국 300등대에 진입했습니다. 중앙모의고사여서, 응시자중에서도 상위 0.3%정도를 받았었죠.
언어가 80점을 넘길까 말까.. 해서 문제지, 수외탐에서 10점 이내로 깎였습니다.

이때쯤부터, 물리를 참 좋아했어요. 하이탑도 사서 풀어보고, 이런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감격해하는..여하튼 물리가 정말 재미있더이다. 그리고 이런 물리를 가능하게 해준 수학에 감사하기도 했고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공부한 제가 수학에 한이 맺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악과 독으로 공부한 것은 1학년 초반 한두달 정도이고, 그 이후로 수학실력이 붙고 나서는 참 재미있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항상 공부 시작할 때, 수학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지루함에 물리게 되는,,
과연 수학없이 내가 공부할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학은 정말 공부를 재미있게 만드는 과목이었어요. 그리고 그 수학을 바탕으로 해서 제가 사랑하는^^ 물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했습니다.^0^

3-1학기에 내신 전교 1등을 달성했습니다. 2학기 첫 시험에는 99,12라는 저희학교로써는 깨지지 않을 경이적인 평균으로 1등을 달성했습니다. 2등 평균은 97이었습니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압니다. ㅡ0ㅡ

정작 아픔은 2학기 수시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종합 4등이기도 했고, 지균점수도 187점대여서 어차피 승산이 없었기에 지균에는 미련이 없었지만, 서울대 특기자 전형을 쓰고 싶었습니다. 과학은 5.21%니 별 불만이 없지만 수학5.02%가 나왔습니다. 2단위짜리 가장 작은 수학과목 동점자 하나 없어지니 4.98%나 나오네요...
참.. 2학년때 그냥 넘어 간 것이 이렇게 큰 것이 되어 돌아올지 몰랐습니다........ㅠㅠ

힘이 쭉 빠졌습니다. 솔직히 이 기운이 수능까지 갔다면 핑계겠지만, 자신감이 없었습니다...ㅠㅠ 더 기가 막힌것은 작년수시 유일하게 미달난 과가 어딘지 아시죠? 건축과입니다....

저는 결국 수능에서 미끌어졌습니다. 수학을 마킹을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4등급이 나오데요... 담임샘도 할 말이 없으신가 봅니다. 다른 선생들도 이미 뒤로다 저의 사정을 아는 듯 하시지만,,, 담임선생님은, 특히, 제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잘 아셨지요.
‘이번해는 너에게 안맞았나보다.’
라고만 하시더군요. 그렇게 저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결국 이렇게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저는 강남종로에서 재수했습니다. 재학생때 유독 못 봤었던 평가원 모의에 신경을 더 써서, 좋은 점수를 받았었고, 06 수능을 봤습니다. 476점 받았습니다.

가군- 포항공대 단일계열-최초합
나군- 서울대 건축학과 건축학전공-최초합
다군- 원광대 한의예과-최초합

지금까지의 수기로 미루어 보아 저는 고민하지 않고 나군등록을 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시점이 되자, 저는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일단, 서울대 캠퍼스는 이곳이 건축을 할 만한 곳인가 회의를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집안에 건축하는 분들이 많은데, 결코 건축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건축과 졸업하고의 초봉은 비참합니다. 서울공대라는 학벌생각하면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는 설계지망이니까요. 대부분의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건축과 커리는 빡셉니다. 학부 1학년때부터 과제로 밤을 셉니다. 건축과 1학년생의 시간표에는 선택의 여지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든것은.. 자신이 원하는 건축을 할 기회가 너무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촌도 한양건축 나와서 일하시는데 이런말씀을 하십니다.
‘’대부분의 견축가들에게 평생에 그런기회 한번 가지면 영광이지.‘’
아파트 짓다가 끝나는게 아닌지, 서울대 캠퍼스같은 건물을 짓다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결국 한의대로 간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결국 건축과로 갑니다. 다시 중학교때의 그 상태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없었던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여러사람들이 물어봅니다. 특히, 저의 성적상승을 아는 사람들이요. 고등학교 생활 힘들지 않냐고들 물어봅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악과 독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저는 공부가 재미있었습니다. 누구처럼 쉽다고 얘기할수 있을정도로 ㅚ수는 못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내내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감사한것 뿐입니다. 아마, 저같은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일 겁니다.
사람들은 예외적인 경우를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예외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제 친구 진호가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P.S
저는 얼마 전 서울대 신입생 대상 수학시험에서 고급수학 수강대상자 자격을 받았습니다.
(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신입생 중에 수학실력이 상위10%에 드는 사람들에게 수강 자격을 줍니다.)
그 친구는 경찰대에 합격했습니다.^^
입시의 세계에서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바라신다면, 있을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모두들 건투를 빕니다.!!!



* lacri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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