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후기]언제나 자신감 가득했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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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기 전에 항상 오르비 9등급에 머무르면서 왼손으로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마우스 클릭만 하던 녀석을 간접적으로 오르비로 이끌어주신 \'서울대 의대 3인의 합격수기\' 저자이신 이호진,이광복,구태률 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난 남들이 공감할만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별로 없다.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때까진 \'공부 잘하는 녀석\', \'모범생\' 이런 집단에 들어있었기 때문일까.
일탈이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기껏해봐야 부모님 몰래 PC방에 들락거리거나, 판타지 소설을 좀 읽었을뿐. 그게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쪽이 더 맞는말일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사람들에겐 타의 모범이 돼는 일이라 했지만, 다른 어떤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재수없는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나를 봤을땐 후자쪽에 속할것 같다. 나의 과거를 후회하고있으니까..
적어도 2002년까진 그렇지 않았다. 난 내가 제대로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것과 다른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제대로 살고있다\'라고 생각하는게 다르다는것을 그땐 깨닫고 있지 못했다. \'신에 존재한다면, 난 선택받지 못했다\'라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2002년 2월, 난 다른학생들처럼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특수 - 말하자면 별 할것없이 노는것 - 을 누리지 못했다. 우리 지방에서의 \'기숙사\'라는건 그랬다. 미리 기숙사 학생들을 학교에서 자습시키는것.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못하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왠지 내가 남들과 다른것 같았다. 난 너희들보다 한발 앞서 나간다. 너희들은 시작부터 나보다 뒤쳐진거다. 이런 멍청한 생각을 가진채로 먼지 풀풀 날리는 자습실에서 이해하지도 못하는 책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배치고사를 보았다.
1학년 초반의 생활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처럼 학교 성적은 비록 학년 톱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잘 꾸려나가고 있었고, 언제나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7년전부터 아버지의 뒤르르 이어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그 이외의 미래에 대해선 건방진 일이지만 아예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것도 몰랐다. 언제나 모의고사 예비지원란엔 어디든 상관없이 의대를 쓰고있었고, 나 정도라면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싶었다. 내 주변엔 언제나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뿐이었으니까. 2학년때부터 서서히 주변 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자신에 대한 의심이라는건 나에겐 수치스런 일이었다. 난 내 미래를 단순히 \'믿고\'있었으니까. 그걸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2005학년도 수능시험장에 들어갔다.
수능 시험장에서조차 나는 \'지나치게 자신감있는 아이\'였다. 언어영역은 한번 풀고 시계를 보니 무려 30분이라는 막대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무슨생각이었는지, 쉬웠냐며 물어보러 오는 아이들때문에 \'나도 쉬웠으니 남들도 다 쉬웠겠지. 아직은 방심할때가 아니다\'라는 매우 교과서적인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수리영역은 쉬웠다기보다는 문제가 익숙하다고 하겠다. 결과가 나의 생각을 증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3교시 외국어영역이 끝나고 나서 확신이 들었다. 이제 빛나는 대학생활과 내가 꿈꿔온 미래만이 남아있다는것을. 내가 평소에 공상과학소설처럼 써온 내 미래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바로 발 아래 큰 돌부리가 튀어나와있는것을 보지 못한채, 난 무작정 위를보고 달려가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첫 시험에서, 난 두번째줄 끝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땐 다른사람들에게 신경쓰는게 싫었기 때문에 자꾸 뒤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말을 거는 그 사람이 정말 귀찮았다. 말을 들어보니 군대에 다녀온 4수생이란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지가 얼마 안돼서 EBS로밖에 공부를 못했다고, 공부 잘하게 생겼다고 중얼대는걸 거의 한귀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4교시가 시작한지 얼마 돼지 않아서 그 사람은 내 등을 찌르기 시작했다. 다들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보여달라고, 부탁한다는 상투적인 말과 함께. 처음엔 그냥 무시했다. 무시하면 알아서 자기가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하는 길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교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3문제를 남겨둔채 첫교시 과목을 마킹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3문제는 거의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빈칸을 채웠다. 두번째교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OMR카드가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계속 찌르기 시작했다. 감독관들을 봤더니 한명은 복도에 나가있었고, 한명은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 내 생각엔 졸고있는듯 보였다 - 있었고 다른 한명은 핸드폰을 가지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복도에 경찰도 마지막 교시라 그런지 교문으로 내려가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런데도 알리지 않았던건 내 인생에 몇 안돼는 실수였을까. 잔뜩 짜증나는 기분으로 결국 4교시 전과목을 보고야 말았다. 고맙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밥이라도 한끼 사준다는 그 사람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그냥 그 자릴 떠버렸다. 결국 과학탐구는 3년동안 모의고사를 보면서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등급들이 성적표에 찍혀 나오고 말았다. 다행이라고 할 건, 적어도 그때부터 나에 대한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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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런거 보여달라는 사람도 있었구나 ;;
헐... 안타깝습니다::
패버리고싶다 ㅡㅡ
패버리고싶다 ㅡㅡ 2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