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GG [29281] · MS 2003 · 쪽지

2004-09-12 16:38:27
조회수 3,739

당신에겐 날개가 있습니다...by 카페모카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34784

(4)




앗 그리고 내신.


난 내신은 그럭저럭 좋았다. 근데 1학년때 진짜 사이코 국어교사를 만나서

국어 점수가 참 안좋았다. 2학년때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나, 그리고 국어교사인 우리 엄마가

항의해서 답을 고쳐냈지만....(정말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 더럽게 냈다. 다른 선생님들도

틀린건 알면서도 성격 건드릴까봐 말은 못했지만..정말 지금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그 외에 자질구레한 실수로 꼭 한문제씩 틀려서 과목별 석차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음,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칼같이 내신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어쨌든 그냥

내신 1등일 정도로 유지를 하다보니, 또 학교 시험문제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내다 보니

그럭저럭 나왔다.

수시 내신 등급은 6등급이었고 정시 등급은 10등급이었다.

거기다 전국 자원 봉사대회 상이 하나 있었고 ( 2년동안 일주일에 3시간 영세민 자녀

공부방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 도경시 금상 그리고 몇 몇 대학 외국어 경시 금상

외 다른 상들이 몇몇개 있어서 수시는 서울대 사회과학 대학으로 써서 냈다.


물론 나의 목표는 법대였다-_-;;


음 그러고보니까 이것도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어릴 때 어퓨 굿맨과 프라이멀 피어 의뢰인 펠리컨 브리프 등등의 법정영화를 보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었다.

물론 그 영화가 무슨 얘기이고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법정이란 곳에서 그렇게 현란하게 말하고 나중엔 꼭 이겨서 티비에

인터뷰 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나보다 -ㅁ-;;;

(몇 년뒤에는 그 영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는 더더욱 변호사에 빠졌지만....)

초등학교 1~2학년 쯤엔 다들 교사나 간호사 의사라는 말을 하지 변호사란 말은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_-;;

일단 교사는 엄마가 어릴때부터 극구 부정적으로 세뇌를 시켜 놓았고(엄마가 교사셔서 그런가;)

그리고 아빠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밀어주셔서 어쨌든 어릴때의 내 꿈은 변호사였다.

그냥 동경으로 인해 무작정 설정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중학교랑 고등학교 때 사회의 경제 부분을 접하면서

정말 경제란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층 면접을 공부할 때도 수요곡선이며 뭐 소비 탄력 이런것을 공부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변호사는 사시도 쳐야하고...;; 아무튼 너무 경직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경제학을 전공하겠다라는 것으로 꿈을 급회전 하게 되었다.

물론 서울대 경제학과를 가는것이 내 꿈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경제를 공부할려면 수학을 해야한다는 말과 -_-+ 또 여러가지로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경제학과를 나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또 책을 보니

내가 생각하던 그런 것이 절대 아니었던 모양이다 -ㅁ-;;;

그리고...

입시사이트 등을 돌아보면서 느꼈다.

역시 최고는 서울 법대다란 것을..

(학벌이든 뭐든 대학 줄세우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직도 배치표를 보면

높게 있는 곳은 법대고 우리 사회 인식이 또 그렇지 않은가.)

즉, 그저 점수대 별로 보자면 법대가 제일 높았다.

어릴 떄 변호사를 꿈 꾸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수시를 쓸 때 여러 진로 관련을 탐색하면서...법대만큼 길이 넓은 곳도 없었다.

사회 전반에 법은 보이지 않는 투명 그물망을 쳐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제학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을 깨달은 이후

법이란 단어는 나를 알게 모르고 유혹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쌓인 무의식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내 친구가 법대를 꿈꾸고 잇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달랐다

내가 그 아이보다 못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나빴다 -_-

더구나 아빠 엄마가 은근히 전부 다 내가 법대를 가길 바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튼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법대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아빠가 법대 갈래요 하니까 젤 좋아했다 )




그런데 왜 수시는 사회대를 쓰게 되었느냐.


평가원 모의고사를 말아먹었기 때문에...-_-


내 내신 성적으로는 법대는 어렵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사회대는 합격 가능성이충분했다. 비교과가 좋았기 때문에...

그래도 난 법대를 쓸련다 하고 9월 1일까지 법대 수시 원서를 모두 준비해놓고있었는데..

2일날....시험을 망친 이후..긴급 엄마아빠나의 가족회의가 열렸고...

혹시나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그냥 낮춰쓰자는 아빠와 나의 의견이 그냥 쓰자라는 엄마의

의견을 이겨버렸다 -ㅁ-;;

그래서 부랴부랴 자기 소개서를 고치고 난 뒤 사회대로 접수해버렸다.

재수를 해도 쌩재수는 피해야 할 것 아닌가 -ㅁ-;;

또 엄마는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도안하고 있던-_-;;;;;  연대나 고대도 수시를 넣자고 했다.

경시대회 상도 있으니 또 내신도 연대 고대로 보면 좋은 수준이니

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실제로 연대 고대는 1차는 쉽게 붙을 성적이었다)

그런데;; 모의평가 까지 망치고 온 주제에;; 난 수시는 서울대만 쓸거야라는

고집은 절대로 꺾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고  뭘 모르고 우긴 아집이었지만;;;

어쨌든 고대와 연대는 넣지 않았다 ;; (정말 멍청했다 -ㅁ-;;그때까지 제정신을 못 차렸단거;;)


그저 등록금이 비싸서 넣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련다 -ㅁ-;;









담임은 그저 툴툴 거렸다.

추천서 힘들여 써줬는데 ( 얼렁뚱땅 써준거 80%를 엄마와 내가 수정했다) 또 바꾸냐고.

정말 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진로에는 관심이 없었따 -ㅁ-+






(5)






그뒤로 9월 중순 그리고 10월 초 쯤에 모의고사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뒤에도 두 세번 더 보았는데...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저런 약점 파고들기의 공부방식이 효과가 있었는지 점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기억으로는 정확히 7점씩 올랐다. -0-;; (BGM 원투쓰리포파잎씩쎄븐!! 뜨거운 가슴에~;;;;)


점수 변동의 추이를 살펴보자면 (여기서 말하는 점수란 언수사외다)



언어 107 - 104-_-;; - 108- 116- 112 정도였고

수리 58 - 63 - 71 - 71 - 73 였던거같다.

사탐도 조금씩 올랐고  영어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정말 근데 신기하게도 언수사외가 항상 7점씩 올랐다. -ㅁ-;;

그때 시험을 두 번인가 치고 이렇게 7점씩 오르기만 하면 정말 바랄게 없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그러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능에서는...

13점이 올랐다-_-

훗_-_





아마 10월 1일인가 교육청 모의고사를 치고 온 날이엇을 것이다.

그 날 수리가 꽤나 어렵게 나온 걸로 기억한다. -_- 적어도 난 어려웠다;

그리고 과외쌤도 어렵다 그랬다 ㅠㅡㅠ

아무튼 그때 난 71점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랑 안고 울었다.



70점을 넘었다고....


고2때만해도..

70점 못넘는 사람은 바보라 생각했는데...


70점을 넘고 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수능 치고도 그만큼 행복하진 않았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만 간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왜 눈물이 났을까..


정신차려보니 엄마도 울고있었다.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한두 방울씩 흘러내리던 눈물이 그칠 새 없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그 때 그 기분...

지금도 생생한 그 기분...

그 때의 그 기분을 수능 전날까지 안고 갔다..


힘들때마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절대로 수능 날에는 울지 않겠다고...

잘 쳐서 담임한테 보란듯이 성적표 들이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점수가 오르고 있다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만 알고잇었다.


늘 교내 속칭 \"빌보드\"에서 나는 6~7위 였다.

왜냐....총점만 갖다붙이니깐;(개념없긴...)


난 과탐은 거의 줄기둥으로 찍어냈기때문에... 언제나 점수가 낮았다;

첨엔 그래도 총점을 올려볼 요량으로 그래도 풀었으나 10월달 부터는 거의

풀지 않았던 거같다. 그러니 내 점수는 항상 제 자리였다 -0-;;; +가 있으면 -가 있으니;



어쨌든 학교에서는 난 포기한 아이;;로 굳어져 갔고...


그렇게 자꾸 시간은 흘러갔다.








10월 20일 쯤 되니 그동안 계획 했던 것이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일단 엄마가 내주는 문제는 프린트 종이 수로 보자면  쌓아두면 약 1미터 정도 되었다;


프린트 잉크 토너 1개가 닳았고 새로 산 하나도 반 이상 쓴 수준이었다.

잉크값과 종이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엄마네 학교에서 공짜-_-로 했으니까;;

( 이 자리를 빌어 부산 J고등학교에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_-)


그리고 정석은 아까 정한대로 하니깐 연습장을약 6권을 썼다.


영어는 딱히 소모한 게 없었고...



그때쯤 되니까 전부 다 포기한 상태였다...


나날이 교실의 빈자리는 늘어갓으며...

서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잦아졌다. 분위기가 매우매우 안좋았다.


수업은 짜증날만큼 계속 되었고-_-... 거의 최악이었다.


그때쯤부터,


우리 가족은 재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_-



나도 마음을 아예 비워버렸다.


올해는 대학을 안가도 좋다! 라고 아예 싹 마음을 비워버렸다.


엄마는 긴 인생에 재수는 필수라고 매일 말했으며


니 정도 점수면 부산학원에 장학생으로 가니까 돈 걱정은 없겠다라고 말했으며;;

고종사촌 언니는 삼수까지 했잖니; 이종사촌오빠도 재수해서 설대갔구..재수가 뭐 대수니;

라고 말했다;

나도 어느새 세뇌되어서

그래! 1년 늦으면 어때. 난 1년 열심히 공부하면 훗_-_ 전국수석하겠다.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깨끗하게 없애버렸다.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적절한 마인드 컨트롤인거 같다.

대부분의 점수 떨어진 학생들은

점수가 오르고 싶으면서도  금방 회복이 안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




여기가 중요하다.


내가 한 30~40점 떨어졌으면 이것을 실수! 라고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 그건 실수였어 라고 생각하게 되면 다음 시험에 그만큼 회복이 안되면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고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도저히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없게 되고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까지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자괴감에 빠져 자신을 심적으로 자학한다.

매우-_- 비추....적인 상태이다.


그저 깨끗하게 떨어진 지금이 내 실력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단 3~4점이 올라도 즐겁다.

그리고 남은 기간동안 차곡차곡 올라가면 된다.


나 역시 미리 깨끗하게 승복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심적부담이 조금은 덜했다.


물론 나 역시 아무리 저렇게 생각한다해도 실제로는 점수가 기대하는 만큼 안올라서 초조했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초조해하다간 모든 것을 잃고만다.

이 때 강력하게 처방을 한 것이 재수결심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ㅁ-;;;



이 방법은 독이 될수도 있고 약이 될수도 있으니

혹시나 나처럼 생각하려는 사람들은 잘 선택하길 바라며;; 또 이건 가족들의 분위기 조성도

많이 필요하다 -ㅁ-;;





10월 끝의 한 일주일은 약 한달 반 정도했던 공부기간동안 틀렸던 것을 다시 모조리 복습을 했다.

그리고...제일 간떨리는...혹은 포기하고 마는.. 마지막 일주일.




난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의 정말 탁월한 선택 한가지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과서를 집어 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엔 8절을 한권씩 풀까 수능 기출을 돌릴까 아니면 교과서를 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8절을 돌리다가 개망한 -_- 9월의 씁쓸한 기억은 나를 교과서와 수능 기출로 몰았고..


난 교과서를 선택했다.



왜? 수능 기출은 이미 분석-_-을 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수능 기출을 분석하지 않았다........(파문)



물론 8년간 수능기출 모음해서 2번씩은 풀었던 거 같다. 수학은 고3 1학기때 2번을 풀었다

(풀기만했지 오르비에서 강조하는 \"분석\"은 안했다)


근데 그 문제가 그 문제고 특히 문제집마다 몇 년도 수능 문제 몇 년도 수능 문제 계속 나와서

뻔히 아는 문제들이 되놓으니까 분석해봤자 별 소득이 없을 거 같았다;;;

더구나 이미 한 번 푼 문제는 다시 풀기를 욜ㄹㄹ라 시러하던 내 성격이 한 몫도 했다;

특히 수능 기출 분석 중에서도 젤 중요시하던 언어!

난 수능 기출 문제를 볼때 마다 드는 생각은 참 문제가 깔끔하다였고 이번 수능도

깔끔하겠지?란 생각을 해서 깔끔한 문제에 맞게 생각을 하자.라고 결심한 정도.

그것이 수능 기출에서 얻은 정도였다.

이미 나온 지문이 나올 가능성도 없고

이미 나온 문학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없다. -_-

요즘은 오르비에서 많이 말해서 그런가 수능 기출을 막 주제분석하고 문제분석하고

한 지문에 30분 이상을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처럼 받들어 지는데;;

꼭 안그래도 잘나올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냥 지문 100% 다 이해하면 됐지 뭘;;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나 비문학점수가 어중간하거나 기복이 심한 사람, 안되는 사람은 꼭 수능 기출이 아니라도 좋으니

자신이 푸는 모든 지문을 30분씩 들이더라도 철저하게 분석하기를 바란다.

원래 그렇게 하면 언어실력이 많이 는다.-_-;

결과적으로,.....난 과감히 수능 기출을 포기했다.

수학은 분석을 할려해도 이미 답과 풀이방식을 다 외워버려서 분석을 할려해도

할수가 없었다;;

사탐도 마찬가지.

영어는 뭐 이예 신경안썼고 문법외에는....

아무튼 그렇게 수능 기출을 포기하고 잡은 교과서.



특히 사탐.


언어와 영어는 딱히 볼게 없으니 볼만한 건 사탐교과서와

정석의 설명 부분이었다.

사탐교과서를 하루에 한권씩 꼼꼼~~~~하게 다시 읽었다.

교과서 토씨하나, 그림하나, 학습문제 하나 빼놓지 않고 모조리 중얼중얼 입을 움직여가면서

읽었다.

국사교과서는 상권의 조선시대 문화..그리고 반촌민촌이 나오는 부분을 시간이 급해

넘어갔었는데;;아이러니하게 거기서 틀렸다 -ㅁ-;;;


어쨌든 사탐교과서를 나름대로 읽으면서

수학은 지금까지 틀린문제. 그리고 정석의 설명 부분..이론 부분만 주욱 읽어나갔다.

언어는 해커 고전 영역을 풀려다 -ㅁ- 귀찮아서 안풀고 띵까 띵까 놀았으며...

영어는 문법을 하루에 조금씩 다시 보았다.

그리고 혹시나해서 수능 영단어를 처음으로-_-;;; 보았다.




수능 이틀전은 거의 뭐 재수할건데 설렁설렁 치지 머~~ 하면서 놀면서 보냈다.

대장금도 +_+ 보고, 예전 과외쌤 두 분이 함께 수능 잘치라고 케이크 사와서

반나절 놀고... 또 친척 몇몇이, 사촌동생 육촌동생도 잘치라고 방문해서 또 놀고~

뭐 그렇게 보냈다...

근데 왜 다들 찹쌀떡이나 일본화과-_-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난 싫은데 ㅠㅡㅠ

사촌오빠가 준 초코렛 박스 외엔 전부 엄마와 할머니 뱃속으로 들어가버렸다 ㅠㅡㅠ

이걸 읽으시는 어르신들은 아무리 찹쌀떡이 좋다좋다해도  신세대 입맛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도록 하소서..-_-








내가 너무 풀어져있어서  아빠가 열을 받아서 한번은 또 싸울뻔했다 -ㅁ-;; 수능 이틀전에.

아빠는 내가 1초라도 그래도 더 공부하길 바랬나보다..그때 한다고 뭐 변하는게 있을랴마는..

어쨌든 그 정도로 내가 풀어져있긴 했었다 -ㅁ-;;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