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GG [29281] · MS 2003 · 쪽지

2004-07-29 04: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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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수생활] <별첨#6> 내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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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 책상은 무엇인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거의 포스트잇이 사면에 유리테이프가 예쁘게 발라진채로

책상을 포장(?)했다고 해도 옳을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더 가관이었다.

포스트잇 한장 한장마다 내가 생각하는 각오와, 혹은 시간표,

어느 당시의 내 심정이 적힌 글로 가득하였다.

가끔씩가다는 매우 유치한 시도 한줄씩 적혀있고는 했다.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어느날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데 공부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안되고,

집중력이 엄청나게 떨어지더라.

거의 미칠정도로 집중을 못하고 수업을 마치고 나니 엄청나게 후회스러웠다.

안그래도 수업량이 부족한 녀석인데, 그렇게 수업을 놓치면 어떡하냐 라는 생각이들자

수없는 자책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集 中





한자로 쓴 이 두글자는 큼지막하게 포스트잇을 채웠고,

그것은 내 눈에 잘 띄이는 책상 우측 상단에 붙여졌다.

그게 나의 포스트잇 붙이기 놀이(?)의 시발점이었다.

자습시간이든, 수업시간이든 집중이 안되면

나도 모르게 그 포스트잇으로 눈이 향했다.

\'아 맞다;; 난 저 G랄을 하면서까지 집중을 하려했던 녀석인데,

지금 이렇게 해찰하고 있으면 안되잖아!

저걸 붙일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자!\'





내 사고회로가 단순한 것일까.

막상 저렇게 집중이 쓰여진 종이를 보면 어느새 나는 집중을 하려고

노력이나마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집중력을 잃은 시간을 많이 지켜낼 수 있었다.







이 효과에 심취해서였을까,

만약 내가 모의고사를 잘 본 날은 어김없이 그 날저녁에 붙은 포스트 잇에는

\' 자만하지말자.

모의고사 한번 잘봤다고 니 실력이 만땅인거 아니거든?

그냥 깝치지 말고 공부해라. ㄱㅇㅈ아-_-+\'




모의고사 본 다음날 아침, 이 포스트잇을 보게 되면

느긋했던 마음가짐 따위는 싹 사라지고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나곤 했다.




포스트잇에는 거의 욕 가깝게 쓰여 있었다.

그만큼 나는 나에게 엄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엄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느긋해질 준비가 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잘해도 못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가지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절대 자만심을 가지지는 않으려했다.

그런 스스로의 생각들에 비례해서 내 책상은 포스트잇으로 가득 찼었고..

그것들은 나의 제 2의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포스트잇도 장기 집권을 하지 못했다

책상의 넓이는 한정되어있었고, 붙일 생각은 많았다.

그래서, 만약 내가 지켜진다고 생각했던 부분의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은

가차없이 다음 손님을 위해서 떼어졌다.




애들은 나더러 꼴값이라고 했다.

유치하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락없이 유치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의 생활을 잡아주는 선생님임에는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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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로 여행 다녀올께요 \' \' /

더운 여름 건강히 보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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