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생의 푸념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3325861
오늘 서울 최고기온이 23도였다고 합니다.
자주 가는 카페에 들러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는데 유난히 서늘하더니,
가을이 완연해지고 있는 걸까요.
여러분들도 이 서늘함이 푸르게 가슴팍에 스미는 느낌에
저처럼 기분이 싱숭생숭하신가요.
수능만 다섯 번째를 맞는 저는 하루 아침에 기분 좋게 시원해진 공기가 이젠 그리 달갑지도 않지만, 올 한 해 제가 밟아온 발자취를 돌이켜보며 이내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펜을 쥐러 가곤 합니다.
.
다섯 번.
이리도 깊게 파야했던 우물이었던가
친구들은 바쁘게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제대하고
밤을 새며 미래를 준비하고 밤을 새며 추억을 새길동안
저는 남들의 시선 속에서 헤엄치는 일도 벅차
늘 숨고 참고 웃음 대신 우울감을 목구멍에 쑤셔넣고 살아왔습니다.
.
.
원서.
삼수때는 연고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사설 컨설턴트와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세 개의 의대를 넣고 광탈한 게 큰 전환점이었어요.
사수.
돈을 벌어야 겠다.
독재학원 수학 조교를 하고
거기서 나름의 인정을 받으며
두 건의 과외도 잡혀, 돈도 벌고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주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그러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장애물.
난독증
활자를 읽으면 숨이 막혔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생각이 나질 않아서.
4번째 수능.
이상하게 꼬이던 생각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학습되었던 무력함
평소보다 훨씬 낮은 점수
사랑.
밑바닥까지 추락한 내게
손을 놓지 않던 저희 부모님
추악한 나의 내면까지도
이해해주던 최고의 친구
같이 수능을 친
여동생을 데리러 가신 부모님 대신
수고했다며 나를 토닥여준
현관문 앞
우리집 강아지
.
무너지기엔 젊고
이겨내기엔 어린 나이
.
처음 입학한 대학교
새로이 만난 인연과
조금은 더 커진 내 세상
부산을 떠나 상경하고
수험비용이 죄송해
부모님 몰래 시작한 알바
.
떨어져보니
힘들어보니
사랑한다는 말
보고싶다는 말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쉽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수능이 코 앞에 왔네요.
복잡하고 거대한 삶의 흐름 속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끝은 아름다울까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사랑받고
아프고 견뎌내고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저라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찰나의 순간들이 이 서늘한 공기에 담겨 있는것 같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수능은 큰 시험이더군요.
그 자체가 가진 고됨,
그리고 현실적인 영향력을 넘어
삶에 대한 태도와 부모님의 사랑, 헌신을
가장 크게 일깨워주는
어느 가을 하루의 축복이었습니다.
떨고, 불안해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그에 못지않게
천천히, 꾹꾹,
남은 시간을 눌러 담아 행복하게 살아보십시오.
아직까지 놓지 않은 이 공부의 의미에 대하여
내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내가 살아갈 , 걸어갈 길에 대하여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생각하며
미친 입시의 시간임과 동시에
찬란하고 깊어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하셨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건승하십시오.
0 XDK (+51)
-
11
-
10
-
10
-
10
-
10
-
상위1퍼센트인가요
-
이시간에
-
불면증.. 4
원하는 기상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일어나버렸다
-
잘까 4
흠
-
안자면 큰일날듯 1
옯붕이들 ㅂㅂ
-
2차 얼버잠 2
이젠 진짜 ㅃㅃ
-
동서연고. 1
무요.. 왜요.. 혼잣말이에요..
-
너무졸린데..
-
다시 했을 때 메디컬 가능성 얼마나 보시나요?
-
잘때가된건가 5
슬슬
-
발 300 10
손도 많이 큼
-
꾸준히 햇으면 꽤나 올렷을거 같은데 오랜만에 하려니 계속 같은 곳에서...
-
ㅅ..ㅂ 요즘에도 한달에 한번은 뛰다가 무조건 삐는 것 같다
-
키작은 사람이 6
큰 사람보단 끌림
-
마스터 등반 시작
-
응..
-
재밋는건같이해요
-
귀가 ㅇㅈ 2
사실 아까 퇴근하면서 찍었어요
-
키작으면 좋은점 4
애들이 귀엽다고함 헤헤
-
ㅋㅋ 난 작년에 2
공부하는거에도 기출이 잇엇음.한국 기출만 봤을 때2008년도부터 2023년도 기출된...
-
새르비 화력 테스트 18
유동인구 10명 넘을까?
-
팩트는 0
마이 베스또 프렌드들은 몇시간째 디코를 하며 롤을 하고 잇다는거임.지금도 디코에...
-
굿모닝 1
ㄱㅁㄴ
-
에휴이
-
오르비 굿밤 2
전 자러감
-
서버 어머같네요 0
ㅎㅎ
-
맞팔 구합니다 3
현역학생입니다 물리러에요
-
오르비언중에 맘에안드는사람있으면 잘 안오게된다
-
ㅇㅂㄱ 1
수업가야겠군
-
연구원인데 떼잉,,삼각함수랑 수열을 훨 잘함 지로함에 비하면
-
ㅇㅈ 13
새벽이니까 다행일듯 내 손임 펑~~
-
학벌딸 치고 싶어서 인거 같음 그냥 병신 한남 자존감 밑바닥 루저새끼라 뭐라도 하나...
-
안 맞게 공부를 하고 잇음 ㅋㅋ,,내 공부 이론대로 하는 공부가 좀 상당히 피곤함....
-
내 차단리스트 1
없음뇨
-
응.. 부러워..
-
침대에서 자면서 망상함
-
지로함 6
평가원에선 잘 모르겟는데 (어렵게 안 내서), N제같은거 보면 되게 재밋는 문제...
-
무슨 이미 의대 붙은 것마냥 의대 성적 되면 의대를 갈까 설대를 갈까? 의대 가면...
-
수강 신청 0
막 20학점씩 신청 해놓고 나중에 빼는 방법 좋나요? 예상대로 안될 때가 많으니...
-
기출 좋앗던거 3
241122 (개 잘 만든문제)121130 (함수의 증가속도, 아주 중요한 관점)...
-
국회증언법이랑 양곡법 이런거 비판하는 내용있으면 너무 그렇지??..
-
롤의정리 4
롤은 재밌다
-
공군 질받 9
암거나 ㄱㄱ
-
잘자용 16
배가 고파져서 블아 ost 158번 그레고리오 피아노 버전을 들으면서 이만 자야겠오요
-
성대바꿔
-
롤할사람 4
모집ㅂ중
잘가요 ♥
올초, 겨울에 좋은말 많이해주셔서 감사했어요...ㅠㅠ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ㅠㅠ
제가 좋아하는 책 ‘오자이르’(파울로 코엘료)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나는 전부를 얻었다.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모욕당했지만 꿋꿋이 내 길을 나아갈 때 나는 내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저는 이 글에 굉장히 공감을 많이 해요. 꿋꿋이 나아가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하시길 바랍니다.
오 저도 파울로 코엘료 책들 인생책들인데 ㅎㅎㅎ 반갑네요
너무좋은구절이군요
멋있어요!! 같이 힘내서 마지막 수능 대애박 나고 뜹시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리 꼭 성공합시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파이팅!
멋져용
저랑 비슷하신거같은데 파이팅..!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하찮은 신파극류 영화보다 이게 훨씬 구구절절하고 공감되고 슬프다
진짜 너무 공감되고 전글들도 봤는데
정말 생각이 너무 멋지신분 같네요 ㅜㅜ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실 수 있는 만큼
최선 다하셔서 올해 꼭 잘되셨음 좋겠어요!! 파이팅
의대 만이 길은 아닙니다. 다른일을 하면서 꿈이 생길수 있고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일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수능이 끝난후에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던 경험자로서 응원합니다.
글을 굉장히 잘쓰시네
다리를 굉장히 잘떠시네
95 힘내자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큰 감동 받고 갑니다. 전역 후 수험생활하면서 점점 흐려지던 목표를 다시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이 정도의 글솜씨는 5수의 힘인가요 멋있으십니다 꼭 성공하시길
진짜 너무 멋있는말이예요 꼭 성공하실겁니다
저는 결과가 어떻든 님처럼 저를 발전시켰던 1년이 됐으면 좋겠네요
안되는 꿈을 잡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해보시길